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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선 못 보는 고요한 다이빙...숨 한 모금에 86m 신기록

해암도 2021. 8. 9. 05:18

공기통 없이 잠수하는 프리다이빙
김정아, 딘스블루홀서 아시아 기록

새로운 도전 즐기려는 젊은층 몰려
“수영 못해도 가능, 물공포 사라져”

 

 

숨을 고르고, 머릿속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5분. 그리고 한 번의 호흡. 김정아 선수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김 선수가 잠수한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은 수심 202m. 그 절반 가까운 86m를 3분25초에 왕복했다. 무호흡 잠수, 이 스포츠를 프리다이빙이라고 부른다.

프리다이빙 대회의 윔블던 격인 2021년 '버티컬 블루' 대회가 열린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에서 김정아 선수가 잠수하고 있다. 김 선수는 이렇게 바이핀을 신고 벌인 CWTB 종목에서 86m 잠수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사진 Daan Verhoeven]

김정아 선수가 지난 7월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에서 열린 2021년 '버티컬 블루' 대회에서 바이핀을 신고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다. 김 선수는 이 CWTB 종목 86m 잠수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사진 Daan Verhoeven]

 


김 선수는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이 ‘버티컬 블루’ 대회에서 86m 프리다이빙(핀을 이용하는 CWTB 종목)으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중국 루원제의 83m 3m 경신했다. 한창 떠들썩한 도쿄 올림픽과 달리, 조용히 전해진 소식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스포츠인 프리다이빙에서, 그야말로 고요하게 기록을 세웠다”며 “기록도 기록이지만, 물속에서 가장 순수한 나를 다시 만나고 왔다는 게 너무 가슴 떨린다”고 말했다.

단 한 모금의 숨. 그 숨에서 바닷물을 헤쳐 최대한 밑으로 내려갈 돌파력을, 그러면서 어디까지 내려갈지 가늠할 판단력을, 그리고 몸을 솟구쳐 수면에서 하늘을 다시 볼 추진력을 얻어야 한다. 깊은 물 속 다이빙이라는 점은 같지만, 스쿠버다이빙과 다르다. 공기통이 없다. 그래서 프리(free)다.

지난 7월 2021년 '버티컬 블루' 대회가 열린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에서 김정아씨가 프리다이빙 뒤 기뻐하고 있다. 딘스블루홀은 깊이가 202m에 이른다. [사진 Daan Verhoeven]

 


# 5m건, 100m건 저마다의 깊이가 중요


프리다이빙이 인기를 얻고 있다. 1992년 설립된 프리다이빙 전문 국제단체인 AIDA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프리다이빙 대회 수는 2016년 3건에서 2019 33건으로 급증했다. 프리다이빙 강사 양성 코스도 같은 기간 5건에서 29건으로 늘었다. AIDA 등록 선수도 늘었다. 2016 36명이었는데, 2020 240명이다. 프리다이빙 인구가 3040 위주에서 20대로 확장하면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설영석(38) AIDA 코리아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각종 스포츠 활동이 제한된 2020년에 대회 수가 뚝 떨어지긴 했지만, 3년 전부터 2030이 주류로 바뀌는 모양새”라고 밝혔다.

경기도 가평의 아시아 최고 수심(26m) 다이빙 풀 K-26에서 한 다이버가 훈련 중이다. [사진 오경환]

 

 

인스타그램에서 #프리다이빙 게시물 수는 478000개, #freediving 수는 259만개다. 다이빙 풀도 속속 생겼다. 2018년 경기도 가평에 26m로 아시아 최고 수심인 K-26이 생기는 등 전국 다이빙 풀은 20여 개에 이른다. 경기도 용인에는 수심 35m 다이빙 풀이 공사 중이다. 김정아 선수는 국내 여자 프리다이빙 1위다. AIDA 홈페이지는 프리다이빙 8개 종목 중 7개에서 국내 1위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프리다이빙에 대해 들어봤다.


Q : 입수 전 5분간 눈 감고 심호흡을 하던데.

A : 프리다이빙은 멘탈 스포츠다. 욕심을 버린다. 생각을 비운다. 지금 단 한 번의 다이빙에 집중한다. 초급이나 고급이나 모든 프리다이버들은 마음부터 가다듬고 입수를 한다. 심호흡은 신체를 이완시키기 위함이다.


Q : 입수 직전에 볼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숨 쉰다.

A : 최대한 많은 공기를 갖고 내려가기 위한 기술로, 패킹(packing)이라고 한다. 고급 단계에서 쓰며,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Q : 40m 지점에서 몸을 안 움직여도 내려가더라.

A : 프리폴(free-fall), 자유 낙하다. 일정 수심에 도달하면 저절로 몸이 하강한다. 프리폴은 프리다이빙의 꽃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이때도 끊임없이 이퀄라이징을 한다.

김정아 선수가 지난 7월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에서 열린 '버티컬 블루' 대회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다. 핀 없이 줄을 잡고 하강하는 이 종목은 FIM이다. [사진 Daan Verhoeven]

 


프리다이빙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이퀄라이징(압력 평형)이다. 고막과 달팽이관 사이의 ‘중이’가 수압에 짓눌리지 않게 하는 기술이다. ‘프렌젤’(혀로 입천장을 밀어 압력을 높임)이나 ‘마우스필’(볼로 입안의 압력을 높임)을 많이 쓴다.

프리다이빙을 접한 지 갓 1년 된 박로사(30·광주광역시 서구)씨는 “처음에는 힘들지만, 집중해야 이퀄라이징이 된다. 그래야 연주하듯 내 몸을 다룰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씨가 덧붙인 말은 의외였다. “난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프리다이빙 3년 차인 이용혜(53·대구 동구)씨도 “난 맥주병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박씨는 “물 공포증이 있었는데, 프리다이빙으로 극복했다”고 밝혔다.

김 선수는 “수영은 물에 뜨는 게, 프리다이빙은 잠수가 목적이라 차이가 있다”며 “물 공포증은 수영장에서 차츰 깊이를 늘려 극복하는 사례를 종종 봤다”고 설명했다.

프리다이빙 대회의 윔블던 격인 2021년 '버티컬 블루'가 열린 바하마의 딘스블루홀은 깊이가 202m에 이른다. [사진 Alex St. Jean]

 


Q : 버티컬 블루 대회가 코로나19 속에서 치러졌다.

A : 버티컬 블루는 프리다이빙의 윔블던(테니스 메이저대회)으로 부른다. 격리와 방역 등 조심히 치러졌다. 국제대회는 AIDA CMAS에서 주로 주최하는데, 이번 대회는 CMAS 대회다. 내 86m 기록은 기존 AIDA 기록인 83m를 깬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AIDA 기록보다 높아야 국가기록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12개의 세계기록, 52개의 국가기록이 나왔다. 내 기록은 세계기록 95m 9m 차이다.


# 미지에 대한 공포 적어져 2030 관심
프리다이빙은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메시지로 종종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프리다이버 나탈리아 몰차노바의 실화를 다룬 ‘원 브레스’가 개봉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영화는 뤼크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1988)’다. 세계 최초로 100m 잠수에 성공한 프리다이버 자크 마욜(프랑스)이 제작의 바탕이 됐다. 달빛 출렁이는 짙푸른 바다에서, 돌고래와 주인공의 교감을 드러내는 이 영화 포스터는 카페와 호프집의 벽을 장식하기도 했다.

노진호(37) PADI 인스트럭터는 “프리다이버라면 ‘그랑블루’와 ‘원 브레스’는 꼭 봐야 할 영화”라며 “누군가에게 프리다이빙은 모든 걸 다 버려도 해야만 하는 스포츠라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프리다이빙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 선수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말한다.


Q : 프리다이빙은 진입 장벽이 높은가.

A : 나 같이 깊이를 목표로 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물놀이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운동 삼아 취미로 하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스포츠다. 프리다이버는 저마다의 깊이가 마음속에 있다. 몇 년 전 한 대회에서 세이프티 다이버(안전 요원)를 한 적이 있는데, 일본 다이버가 17m 다이빙을 하고 나오더니 동료들과 환호성을 지르고 얼싸안더라. 일본은 '그랑블루'에 다이버들이 나올 정도로 아시아에서 강국인데, 의외였고 인상적이었다.


이용혜씨는 “난 26m까지 들어가 봤지만, 깊이보다 물속에서 안전하게 더 오래 있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2030이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덜해졌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소셜미디어(SNS)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미지에 대한 공포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제주도 바다에서 한 프리다이버가 바닥을 찍고 상승하고 있다. [사진 오경환]

 


프리다이버에게는 ‘버디’가 있다. 파트너지만,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벗’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이들에겐 5m건, 100m건 깊이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있고, 내가 있고, 버디가 있다. 어쩌면 프리다이빙의 ‘프리’는, 자유 의지를 뜻할지도 모른다.

 

종목도 많고, 단체도 많고

 

프리다이빙에는 다양한 종목이 있다. 수영장 종목으로는 숨 참는 시간을 겨루는 ‘스태틱’(STA)과 핀을 신고 잠영하는 ‘다이내믹’(DYN, 바이핀 사용 땐 DYNB), 핀 없이 잠영하는 ‘다이내믹노핀’(DNF)이 있다. 해양 종목으로는 핀을 신고 최대 수심까지 내려간 뒤 핀을 차며 상승하는 ‘콘스턴트웨이트’(CWT, 바이핀 사용 땐 CWTB)와 핀 없이 맨몸으로 상승하는 ‘콘스턴트웨이트노핀’(CNF), 핀 없이 줄을 잡고 하강하는 ‘프리이머전’(FIM) 등이 있다.

프리다이빙 대회의 윔블던 격인 2021년 '버티컬 블루'가 열린 바하마의 딘스블루홀 앞에서 김정아 선수가 가 모노핀을 들고 있다. 모노핀을 착용하고 벌인 CWT 종목에서 김 선수는 85m까지 잠수했다. [사진 Go Hayakata]

 

 

김정아 선수가 지난달 21일 바하마 딘스블루홀의 버티컬 블루 대회에서 86m 잠수 기록을 세울 때의 종목은 CWTB로, CWT 중에서도 두 개의 핀(바이핀)을 사용한다. 이번 버티컬 블루 대회에서 최대 수심 기록은 131m. 러시아의 알렉세이 몰카노프가 CWT 종목에서 세웠다. 남성 선수가 여성 선수보다 잠수를 더 깊게 하지만,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설영석 AIDA 코리아 회장은 "한국 남성 선수들도 연습 때 100m 넘는 프리다이빙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고 밝혔다.

관련 단체도 많다. 프리다이빙만 관리하는 비영리 국제 단체인 AIDA, 수중에서 활동하는 모든 스포츠, 레포츠 영역을 다루는 CMAS, 스쿠버다이빙 단체로, 2016년부터 프리다이빙을 보급하는 PADI, 역시 스쿠버다이빙 단체로 출발했지만, 2014년에 프리다이빙 종목을 런칭한 RAID,이 RAID의 전신 격으로 스쿠버 단체이면서 2011년에 프리다이빙도 섭렵하게 되는 SSI 등이 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입력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