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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트하면 퇴장, 관중이 파울볼 잡아도 아웃… 이런 야구 봤나요?

해암도 2022. 8. 3. 08:39

[스포츠 NOW]
3시간 넘는 지루한 야구는 가라, 미국서 뜨거운 인기 ‘바나나볼’
대학독립리그 소속팀이 시작
‘사바나 바나나스’ 경기마다 매진
지난 3월 7개 도시 투어 돌기도

 

야구의 법칙을 뒤집어버렸다 - 사바나 바나나스의 맬러카이 미첼(가운데)이 지난 5월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바나나볼 게임을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쇼를 펼치며 공중제비를 돌고 있다. 대학 야구선수 출신인 그는 바나나스에서 바나나볼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바나나볼은 구단주 제시 콜이 전통적인 야구 규칙에서 팬들이 싫어하는 부분을 모두 없앤 룰로 경기를 펼친다. 기존 야구보다 더 빠른 경기 진행이 특징이며, 역동적이고 팬 친화적이어서 큰 인기를 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파울 볼을 관중이 직접 잡자 심판이 아웃을 외친다. 볼넷을 골라낸 타자가 걸어가지 않고 전력 질주해 1루를 밟더니 다음 베이스로 내달린다. 그동안 야수들이 부리나케 몰려들어 허겁지겁 볼을 돌린다. 2시간 타이머가 멈추자 그대로 경기가 끝나 버린다.

 

이 야구 같지만, 야구 같지 않은 게임은 ‘바나나볼’. 미국 조지아주의 인구 15만 도시인 사바나를 연고로 하는 대학독립리그 소속팀 ‘사바나 바나나스’가 시작한 게임인데, 매 경기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군더더기 야구 아웃!

 

올 시즌 메이저리그 한 경기 평균 시간은 3시간 7분. 리그가 스피드업에 안간힘을 쓰지만, 여전히 길고 지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1분 안에 뭐든 가능한 세상에서 야구가 점점 외면당하는 이유다. 2016년 2월 바나나스를 창단한 대학 투수 출신 제시 콜 구단주는 “야구가 너무 길고, 느리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팬들을 위해 그들이 싫어하는 부분은 과감히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나나볼은 경기 시간이 딱 2시간이다. 투수와 타자 대결에서 시간을 끌거나 정면승부를 피하는 건 모두 금지했다. 한 번 타석에 선 타자가 배터박스에서 벗어나면 스트라이크를 한 개 먹고, 번트를 시도하면 무조건 퇴장당한다. 포수와 코치의 마운드 방문도 절대 사절이다.

 

그러면서 타자가 모든 플레이에서 전력 질주하도록 했다. 폭투나 패스트볼로 공이 뒤로 빠지면 볼 카운트에 관계없이 ‘1루 도루’를 감행할 수 있다. 또 볼넷을 고를 경우 야수 9명 전원이 공을 릴레이해 잡을 때까지 베이스를 돌 수 있다. 보통 2루까지 가는데, 송구 실수가 나오면 볼넷 하나로 홈까지 들어오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기존 야구에선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 관중은 경기장을 떠나버린다. 바나나볼에선 그럴 일이 없다. 홀당 성적으로 승부를 가리는 골프 매치플레이처럼, 해당 이닝에 점수를 더 많이 낸 팀이 1점만 얻는 방식이다. 한 이닝에서 큰 점수를 내줘도 1점만 내주고, 다음 이닝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바나나볼에선 팬도 경기의 주인공이다. 관중이 “플레이 볼”이라 외치면서 경기가 시작된다. 파울 볼을 관중이 노바운드로 직접 잡아도 아웃이다. 팬들조차 눈을 다른 곳에 돌릴 틈이 없다.

 

◇팬 퍼스트, 우리한테 배워라

 

바나나스의 경기를 보면 미국의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를 떠올리게 된다. 경기 전후로는 각종 쇼가 펼쳐진다. 노란 턱시도를 입은 콜 구단주와 선수들이 몸을 흔들고, 득점할 때도 선수들이 군무를 펼친다.

 

심판들도 삼진을 선언한 뒤 춤을 춘다.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도 이닝 중간 중간마다 열린다. 뉴욕타임스는 “당신이 야구에 관심이 있든 없든, 바나나스는 당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했다.

 

이런 재미 때문인지 바나나볼이 열릴 때마다 4000석 규모 홈 구장 그레이슨 스타디움이 꽉 들어찬다. 이달 말부터 열리는 6경기는 지난 5월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모두 매진됐다. 지난 3월에는 미국 7개 도시에서 ‘월드 투어’라는 이름으로 바나나볼 14경기가 성황리에 열렸다.

 

구단 틱톡 팔로어는 약 290만명으로, 뉴욕 양키스의 3배가 넘는다. MLB닷컴은 “(취소표를 사려는) 대기자 명단에 5만명이 이름을 올렸다”며 “올해 1000명 넘는 선수가 입단을 문의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ESPN+는 팀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바나나랜드’를 곧 방영할 예정이다.

 

이 팀에는 바나나볼 전문 선수가 아닌 일반 선수들도 있다. 대학 선수들이 학기를 마치고 여름에 이 팀 소속으로 ‘코스탈 플레인 리그(CPL)’라는 독립리그에 출전한다. 그런데 이 선수들도 경기 중 춤을 추거나 직접 자기소개를 하고, 관중석에 달려들어 하이파이브를 한다.

 

팀 1루 코치는 야구 경험이 없는 힙합 댄서로 선수들에게 춤을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성적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16년과 2021년 리그 챔피언을 차지했고, 지난달 MLB 드래프트에서 총 11명이 지명을 받았다.

 

콜 구단주는 이러한 실험이 젊은 팬층을 야구에 끌어들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미 현지 스포츠 매체들도 인기 하락에 직면한 MLB가 바나나스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ESPN은 “몸값 수백만 달러 선수가 뛰는 최고의 리그에 이를 그대로 적용한다는 건 비현실적이지만, 한계점에 도달한 MLB가 뭔가 배우고 과감한 변화에 나설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