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누나 랜디 저커버그. 한ㆍ미의 가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기에 마스크 착용은 사진 촬영 동안엔 하지 않았다. 우상조 기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페이스북은 없다.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아니라, 그 친누나 랜디 얘기다.
1982년생인 랜디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심리학과 졸업 뒤 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다 마크의 요청으로 페이스북에 합류했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페이스북을 오늘날의 거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키워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뒤 독립했다.
자기 일을 찾기 위해서다. 그 일 중 하나가 한국과 관련이 깊다. 코인보다 핫하다는 대체불가토큰(NFTㆍNon Fungible Token)부터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 세계), 대중문화와 기술을 접목하는 프로젝트까지, 한국의 이즈미디어라는 기업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번주 사외이사 선임을 위해 방한한 그를 8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이즈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NFT·메타버스·문화 사업차 방한
“한국, 세계 몇 안되는 흥미로운 국가”
랜디저커버그와 한국의 인연은 꽤 깊다. 그가 기자에게 던진 첫 농담이 “난 노래방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미국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것 같다”였을 정도. 한국에 오면 꼭 먹는 게 있냐고 물었더니 눈을 반짝이며 “당연히 빙수!”라고 외친 뒤 “아, 치맥도 빠뜨리면 섭섭하다”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그룹은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 자신의 저서 한국어 번역본인 『픽 쓰리(Pick Three)』에 사인을 하면서는 “내가 고를 세 가지(Pick Three)는 빙수와 NFT, 그리고 BTS”라고 적었다.
랜디저커버그의 방한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엔 ‘한국(Korea)’이라는 항목이 따로 생성되어 있다. 2017년 한국의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과의 만남부터, 이번 방문에서 탑승한 자율주행 골프 카트 등의 사진을 “와우, 한국 대단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올렸다. 페이스북엔 최근 한국계 골프선수인 미셸 위, 이지혜 선수와 라운딩하며 찍은 셀카 사진을 올려뒀다.
랜디 저커버그의 인스타그램 피드. '한국(Korea)' 항목이 따로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그는 “한국은 대중문화와 기술 두 가지가 모두 앞서가고, 그 둘의 접목이 활발하다는 점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몇 안 되는 흥미로운 국가”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쌓은 나의 전략 마케팅 경험과 훌륭한 케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문화와 기술에 애착이 강하다. 실리콘밸리에서 경력을 쌓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오페라ㆍ뮤지컬 재능을 살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기술과 문화의 접목에서 나오는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셈이다. 그는 이즈미디어의 사외이사 겸 전략 고문을 맡고, 더불어 메타버스와 NFT와 관련한 SPV(특수목적기업)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랜디 저커버그의 활기가 느껴지는 다양한 표정들. 우상조 기자
남동생에 대해 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경제 외신을 종합하면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초기 성장기였던 2004년 “누나, 쓸만한 사람이 너무 없어”라며 랜디에게 SOS를 쳤다고 한다. 당시 마케팅 기업 오길비에서 창창한 커리어를 쌓고 있던 랜디는 “반년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합류했다가 2011년까지 일했다.
마크 저커버그의 친누나인 삶은 어떤가.
“마크와 함께 일한 시간은 놀랍고 즐거웠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면서 기술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체험한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남동생 관련 질문이 좀 지겹겠다.
“(웃으며) 사실, 남자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여성이 정의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 또는 오빠, 혹은 남동생이나 남편으로 나를 정의하기보다는스스로의 노력과 성취로 자신을 정의하는 여성이 늘어나길 바란다.
랜디 저커버그 인터뷰 하이라이트. "이번 방한이 네 번째이고, 이즈미디어의 사외이사로 일하게 됐으며 빙수를 좋아한다"는 요지다. 에너지가 넘치고 밝디 밝은 캐릭터의 여성 기업가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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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창업가들 지원을 많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실리콘 밸리에 처음 갔을 때, 여성이 너무 없어서 놀랐다. 하버드대 다녔을 땐 반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다들 어디 간 걸까? 미국 내 스타트업 투자 중 단 5%만이 여성 창업가에게 돌아간다는 통계도 있다. 내 이름은 사실 남자 이름인데, 그래서 e메일을 쓰거나 할 때 상대가 나를 남자라고 생각해서 차별을 하지 않는 일도 많았다. 씁쓸한 현실이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국에선 요즘 젠더 갈등이 이슈다.
“어느 세상, 어느 시대이건 갈등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상은 젠더 이슈에 있어서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떠나기 시작한 기차를 뛰어서 잡아탈지, 아니면 놓치고 플랫폼에 외롭게 남아 불만만 터뜨릴 지는 여러분의 몫이다.”
랜디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미셸 위, 이지혜 선수와 함께 라운딩한 직후다.
여성 창업가들이 가져야할 태도는 뭘까.
“적어도 기술 분야는 모두에게 새롭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는 환경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NFT만 해도 남녀노소를 통틀어 새로운 개념 아닌가. 이런 새로운 혁신의 물결에 빨리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이들을 돕는 것이 내 중요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즉석에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후렴구를 열창하는 랜디 저커버그.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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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물결에 뛰어드는 건 랜디저커버그 본인의 특장점이다. 그는 모두가 NFT의 뜻을 구글링하고 있을 때, 먼저 NFT를 만들어봤다. 이날도 그는 사진기자가 이즈미디어 사옥의 거대 세계지도 앞에서 포즈를 주문하자, 뮤지컬 배우이기도 했던 장점을 살려 쇼맨십을 발휘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서는 “저기, 이거 NFT로 만들어볼까?”라고 파트너들에게 즉석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NFT나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엔 곧 모두가 가상 자산을 갖는 시대가 될 것이고 이는 남녀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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