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준석 돌풍은 비교 안되는 10년 전 ‘안철수 현상’

해암도 2021. 6. 8. 21:14

오세훈에 지고 피눈물 흘려..,마스크로 표정 감추고 지지연설


그때 난 정치를 몰랐고 나이브했다

내가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흔적이 남았으면

실수는 많은데, 후회 같은 감정 소비는 하지 않아

이준석 당 대표 돼도 ‘합치겠다’는 약속 지킬 것

김종인은 ‘멘토’ 아니었고 그때 5분~10분 만난 게 전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서울 아현시장에 있는 주점에서 만났다. 그는 발 편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최보식의언론TV 캡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왜 안 대표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난리지요?

“정치 경륜이 굉장히 오래돼 생각이 많을 겁니다.”

 

-김종인의 눈에서는 보면 미흡한 점이 많겠지요. 정치 시작 전에 ’멘토‘ 역할 하다가 틀어지면서 악감정이 남아있는 것인지?

“사실관계를 말하면, 카이스트 교수로 있다가 서울대 교수로 옮긴 지 두 달 됐을 때입니다. 어르신 네 분이 저를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 만났습니다. 그 중 한 분이 김종인 위원장이었는데 대뜸 ‘이번 총선에 출마하라’는 겁니다. 그때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약 5~10분 만남이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만남은 그게 전부?

“언론에 ‘멘토’로 나오는데, 김종인 위원장도 ‘그 사람 멘토 아니다’고 분명하게 말했고 저도 그랬고 당사자 두 명이 다 부인하는데 ’멘토‘가 사실인 양 됐습니다.”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겠군요. 제가 듣기로 지난 대선 때 ’제 3 지대‘ 제안을 했는데 수락하지 않아 감정이 생겼다고 하는데?

“제가 수락은 했습니다.”

 

-조건에서 안 맞았나 보군요.

“김 위원장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나 봅니다. 그분은 어떤 발언을 하실 때 전혀 다른 목적으로 발언하는 일도 있으니‥.”

 

-그렇지요.

“저는 마음 편하게 생각합니다. 정치에서는 서로 대립을 하더라도 제 3자 심판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민이 바라보고 판단하는 겁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심판‘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내가 앞에 있는 사람을 모욕만 주면 이긴다고 착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심판인 국민이 ’욕 들어도 싸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저 사람은 욕 들으면 억울한데 욕한 사람이 너무 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설전(舌戰)에 대한 판단은 국민 몫이니, 제게 험한 말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판단하시겠지’하고 듣습니다.”

 

-서울시장 경선에서 지고 오세훈 유보 유세를 도왔을 때 본인 마음은 어땠습니까?

“하하하‥”

 

-그래도 국민의힘에서 야유나 조롱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뒤에서 그랬을 수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며칠은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정말 피눈물이 나더라고요. 마음속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

“그렇지요. 제가 바랐던 것은 야권의 서울시장 승리였거든요. 그걸 이루기 위해 몸을 던진 거고‥, 마스크 도움을 초반에는 받았습니다. 이렇게 쓰고 피눈물을 감추고 지지연설을 했습니다. 제가 인간이라서요, 저도 완전히 로봇은 아니기에.”

 

-최근 큰 선거에서 연달아 몇 번 졌지요. 본인을 가장 절망시켰던 패배는?

“선거에 나가 본 사람은 다 알지만, 모든 선거의 패배가 다 아픕니다. 경중은 없습니다. 한편으로 감사하게도 38석의 당도 국민이 만들어준 성과도 맛봤고‥.”

 

-한때는 ’현상‘ 수식어 붙은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나가 보지도 못하고 후보경선에서 떨어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말씀 물어보시려고? 하하하”

 

-정치적으로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어떤 나라를, 어떤 사회를 만들겠다 는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다시 기대를 모을 수있지 않겠습니까.”

 

-요번에?

”그런데 생각이 다르다면 지금보다 더 사람들이 떠날 수도 있겠고요.“

 

-피눈물을 흘리면서 유세를 돕는 모습에 안철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을 겁니다. 동정이라면 이상하겠지만, 안쓰럽다는 감정은‥

”그렇게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고요. 또 하나 민주당의 ’양념질‘, 여론조사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중견 언론인들이 ‘2012년에 잘 안 돕다가 이번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서 평가한다’는 식으로 많이 썼는데‥.”

 

-저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실은 2012년 (문재인 후보) 지원유세를 마흔 번도 더 했습니다.’

 

-선거 전에 떠나버린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공동유세도 네 번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그때는 좋았으니까, 수요일 대선인데 그전 일요일에 전화를 했지요. ‘만약 승리하면 연합정부라든지 얘기가 나올 텐데 저는 백의종군 선언하고 도왔으니 그냥 멀리 떠나겠다’고 하니,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저쪽에서? 문재인 후보와 직접 통화했나요?

”예. 제가 가는 외국의 전화번호까지 알려줬습니다. 투표일 아침에 투표하고서, 이는 신문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날 저녁 6시 투표 마감까지 기다렸다가 떠났습니다. 그걸 완전히 왜곡해 제가 안 도와줘서 졌다고 합니다. 세상에 선거 안 도와줘 진 사람이 인류역사상· 민주주의 역사상 존재합니까. 투표도 안 하고 외국으로 도망쳐 투표의 악영향을 끼쳤다는 겁니다. 이들은 여론을 조작하는 부류이지만, 사실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중견 언론인들조차 역사적 사실이고 신문 검색해보면 다 나와 있는 사실을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증거를 보여주겠습니다.”

 

그는 휴대폰에 저장해놓은 자료를 보여줬다.

 

-눈도 어두운 사람에게 증거 자료가 되겠습니까(웃음)?

“제가 어느 지역에 유세했다는 게 다 나와 있습니다. 미국에 간 것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본인이 쓴 책이 있습니다. 대선 끝나고 2013년에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거기에 본인이 썼습니다. ‘선거 당일에 출국하는 것도 안 후보가 사전에 저에게 연락해줬고 필요한 경우에 연락할 채널도 알려줬습니다. 특히 제가 승리하는 경우 공동정부나 연립정부 구상 같은 예상되는 민감한 논란의 중심에 그가 서게 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대선이 있는 2017년에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대담집을 낸 겁니다. 질문자가 문에게 ‘그때 안 의원이 미국에 안 가고 선거운동을 했더라면 아쉬움을 표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라고 묻습니다. 제가 선거운동을 안 했다는 거죠. 그러자 문은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알 수는 없죠’라고 답합니다. 질문자가 ‘왜 안 붙잡았습니까, 단일화해놓고 미국에 가버리는 사람이 어딨느냐?’고 하니, 문은 ‘제가 그 사람이 아니니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사람 몫이죠’라고 답합니다. 가짜 뉴스의 발원지는 바로 본인(문재인)입니다.”

 

-저걸 보면 문재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됩니까? 우리 표현으로 하면 인간 같지 않다는‥.

“하하하‥, 이와 관련해 한번 얘기한 적 있습니다. 지난 대선 토론회를 광주에서 했을 때 이 얘기가 나와 ‘동물도 은혜를 아는데 짐승만도 못하다’ 그랬습니다. 하하. 제가 정치하면서 가장 강하게 한 말입니다.”

 

-요즘 ‘이준석 돌풍’을 보면 솔직히 어떤 느낌이 있지요?

“이 정도로 변화의 열망이 크구나. 10년 정도 됐습니다만‥”

 

-10년 전에는 ‘이준석 돌풍’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안철수 현상’이라고 했지요. 당시 제가 눈치없이 안철수 비판 칼럼을 썼지요. '나이브한 사람‘이라고. 그러자 독자들의 항의가 많았지요.

 

“그런가요? 아니 왜?”

-그때 안철수는 건드리면 안 되는 영역이었으니까. 당시 본인 모습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한국 정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고 여러 어려움을 돌파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지 이렇게 복잡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한 ’나이브하다‘는 게 맞지요?

“그 말씀이 맞았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는 것은 안 보이지요. 제 나름으로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했고 세상을 바꾸려는 마음은 진심이었고요. 세상에 태어나 죽고 나서도 살아있었다는 흔적이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왔거든요.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제가 세상에 나서 살다가 죽고 나면 존재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만약에 두 세상이 별로 차이가 없으면 허망하다는 생각이 나서‥”

 

-과거에는 훌륭한 벤처사업가였지요. 당시 인터뷰에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지요. 정치에 뛰어든 순간 ‘이 양반이 밑천도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할 만합니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진심은 지금도 똑같고요. 세상에 제 이름을 남기겠다는 허망한 생각은 없고요. 죽고 나면 이름을 남겨본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오히려 세상을 조금 더 바꾸면 좋겠다는 것인데‥”

 

-정치에 뛰어들 때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모든 사람이 추앙했는데, 10년 만에 이제 그 좋던 시절이 다 가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제 역량이 부족해서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일반 국민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패거리 정치, 우리 편이면 살인자도 감싸줘야 하고 상대편이면 이순신 장군도 나쁘게 만들어야 하고, 이기고 나면 왕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저도 이 세 가지를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갈수록 본인의 인기·지지도가 모래 빠지듯 한 느낌이 있지 않나요?

“그건 모든 정치인들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떤 행사에서 토니 블레어 전 총리를 우연히 봤습니다. 처음 영국 총리가 됐을 때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합니다. 본인 말로는 자기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뭘 갖고 오는데 결정을 못하겠더래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세월이 10년쯤 흘러 영국의 어떤 사안을 갖고 금방 확신에 차서 알 수 있었는데, 인기가 땅바닥이어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이게 정치인의 숙명이구나‥”

 

-본인을 돌아봤습니까?

“예, 처음에는 기대는 있고 지지율은 높지만 아는 게 없지 않습니까. 경험하면서 시행착오, 실수를 하며 배워나가면서 실력은 올라가지만 수업료로 인기가 떨어지는 거죠.”

 

-정치를 해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실수는 어떤 겁니까?

“실수는 많은데,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타입으로 사느냐면 잘못된 일들을 돌아보고 후회하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고, 다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안 하려면 내가 여기서 무얼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본인의 결정 중에서 되돌리고 싶은 결정은?

“그런 결정은 없습니다. 양면이 있는 거니까요. 그 때문에 실패하고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양보 같은 것도 지금은 ‘내가 미쳤지 왜 그랬나’하는 생각 안 듭니까?

”그때는 정치인이 아니었고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는 서울대 교수였고, 그 뒤 1년간 서울대 교수였으니,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네. 진짜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또 오해를 하시더라구요. 저는 진짜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면서 왜 정치했습니까?

“서울시장 출마도 안 한 사람이 불출마 선언을 한 거 아닙니까. 다음날 사람들 비난이 쏟아질 걸 예상하고 감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을 들뜨게 해놓고 이랬으니 혼날 각오를 했는데, 제 생각과 전혀 반대로 대선 후보로‥”

 

-그런 기분은 어떤 건가요? 산울림 노래에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지’라는 구절이 있지요.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릎팍도사’ 출연을 했지 않습니까. 1년 전부터 계속 출연해달라고 괴롭히기에 한번 나가주면 그칠 걸로 봤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좋아하는 수준은 대선 때보다 더 높았습니다. 전 국민들이 좋아했으니까요. 그때도 저는 들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버렸습니다. 출연 요청이 하도 많아서‥.”

 

-본인이 언론 노출을 즐기는 것 같더군요. 20년 전 인터뷰할 때 당시 안철수 소장의 관련 기사를 천장까지 쌓이더군요. 그렇게 자주 언론에 노출되기를 원했던 거 아닌가요?

“그건 CEO가 된 다음입니다. 회사를 알리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할 때는 그렇지 않고요. 어린 나이에 언론에 노출돼 지내오면서, 저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어요. 아무리 바깥에서 저를 과대평가하더라도 저는 그 정도의 사람은 아닌데 자기 위치를 잡고, 저를 과소평가하고 별거 아니라고 해도 예전보다 나는 발전한 사람이니까, 자기중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들었습니다. 명성이라는 것이 허망한 것이거든요.”

 

-정치를 해보니 적성에 맞습니까”

‘저는 적성에 맞아서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일이 재미있어하는 것은 아마추어고요, 재미없어도 해야 될 일이어서 하면 그건 프로입니다. 저는 프로지요.“

 

-언제부터 프로가 된 겁니까?

“저는 시작 때부터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시장 보선 끝나면 국민의힘과 합치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는데, 선거 끝나고도 그동안 왜 안 되고 있죠?
“국민의힘 사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준비돼있습니다. 협상에서 힘든 장애가 없었습니다.”

 

-현재 여론조사를 보면 이준석 당대표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 ’이준석이 되면 못 합친다‘는 말이 나오는 데 맞나요?

“아닙니다. 저는 두 가지 말씀 드릴께요. 저는 약속해놓고 어긴 적 없습니다. 손해나도 지켜왔습니다. 어리석은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켜왔으니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입니다. 통합 목적은 정권교체에 있지, 누가 대표가 되든 그전에 멈췄던 협상이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준석의 과거 공격적인 발언이나 바른미래당 시절 유승민계와 사이가 안 좋아서, 통합은 물 건너갔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 당 대표는 당내 경선 관리자일뿐만 아니라 야권 전체에 흩어져있는 후보자들을 모아서 어떤 형태로든 단일 대선 후보를 뽑아야 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됩니다. 지금 후보로 떠오른 사람들이 잘 할 수있을까 기대반 우려반입니다. 다 극복하고 통합해야만 정권교체가 가능하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라든지 옛날 발언 같은 것이 정권교체보다 뭐가 더 중요합니까.”

 

 

 

 최보식 편집인 webmaster@bosik.kr   조선일보    입력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