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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시인은 “비열하게 보이게 찍어달라”고 했다. 수상작이 16쪽에 달하는, 실패를 다룬 시인 터라 활짝 웃는 건 민망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요?” 제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전화에 황병승(43) 시인의 첫 반응은 이랬다. 수상 통보를 하는 쪽이 당황할 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황병승. 그는 요즘 한국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2005년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는 2000년대 한국시의 전위성을 대표하는 기념비로 여겨졌다. 미래파 논쟁 등 문단 담론의 핵심에 그가 있었다.
그러니 이 ‘문제적 시인’의 수상은 놀랄 일은 아니다. 되레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의아해하는 건 어쩌면 그에게 조금은 야박했던 문단의 분위기 탓이었을 터다. 미래파를 서정시의 전복을 꾀하는 일군으로 여겨온 곱지 않은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것도 이유였다.
“문단의 주목과 관심이 글을 써나가는 데 때로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 정반대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에 따르는 역차별도 무시할 수 없어요.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셈이죠.”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동료 강정 시인과 내기를 했을까. 상을 받으면 상금에서 100만원을 준다고. “강정한테 전화 오면 안 받을 거에요.”(웃음)
사실 이 ‘문제적 시인’은 꽤 까다로운 취재원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 직접 얘기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에 인터뷰를 꺼려왔다. 몇 차례 거절도 당했다. 문예지의 좌담에 나선 적도 없고, 산문도 쓰지 않았다. 시 외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봉쇄돼 있었다. 신비주의로 여겨질 만큼.
“신비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고, 개인사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지 않을 뿐이죠. 습작시절,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시인의 설명을 듣고 싶지도, 시인의 개인사를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시인에 대해 알고 나면 오히려 시가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요.”
이해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시인이 답안을 내주면 의미가 고정돼 버리기 때문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시가 어디 그렇게 녹록한가. 따라가기에 숨이 차고(김행숙 시인), 격렬한 독서가 필요(이장욱 시인)할 만큼 그의 시는 힘이 세다.
그 치열함을 위해 그는 자신을 들볶는다. “나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를 쓸 때 그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힌다.
“결벽증이 생기는 듯해요. 한 구절을 계속 읽으면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있고, 한 가지 생각을 붙잡고 반복적으로 생각에 접근하거든요.”
고생하는 건 몸이다. 첫 시집을 쓸 때다. 고시원에 틀어박혀 12시간을 앉아서 내리 시만 썼다. 그때는 시를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써야 했다.
“나는 즐거운 데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생겼어요. 너무 심한 두통에 시달렸죠. 뇌졸중을 앓는 줄 알았을 정도니까. 어느 날 계단을 올라가다 마비증상이 오기도 했어요. 글을 쉬니까 좀 나아지더군요.”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속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문학과 가까워졌죠.”
그렇게 시작된 시인으로서 그의 궤적은 한국 시의 영토를 넓혀 왔다. 그의 시는 난해하다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내일은 프로’를 비롯해 올 5월 나온 시집 『육체쇼와 전집』에 실린 근작은 조금 달라졌다는 평가다. 예전에 보였던 치열한 뜨거움이 가신 듯하지만 화자의 깊이가 깊어지며 ‘인생’이 들어가 있다는 중평이다. 본심 심사위원인 김사인 시인은 “황병승이 새로운 시기를 건너는 듯하다”고 했다.
“생활고에 치이다 보니 시에만 집중할 수 없었죠.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소재로부터 벗어나 생활과 나 자신에 집중하려고 노력한 영향도 있을 겁니다.”
두드러진 변화는 화법이다. 3인칭이던 화법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여러 인물이 등장했던 기존의 작품과 달리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3인칭 화자로 시를 쓰는 데 싫증이 나기도 했고 내밀한 자기고백이 하고 싶기도 했다”는 게 이유다.
올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내일은 프로’도 그렇다. 소설을 쓰는 화자를 통해 자신의 실패한 생활을 글로 옮기는 데 실패하는 참담한 상황을 그려낸 이 작품에서도 1인칭 화자는 독자를 시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수상작이 실린 세 번째 시집이 나올 때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왔고 슬럼프가 이어진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수상 소감이 더 와 닿는다.
“폭염 속에서 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물을 먹었고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물 위에 올라와 폭염 속에서 물을 바라보고 있다. 묘한 감정이다.”
지친 목을 축였으니 그는 다시 치열해질 것이다. 그의 정의대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안겨주는, 여전히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인 시’를 쓰면서.
'내일은 프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빛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다리 위에서, 보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다리 아래서,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괴로워…… 그러게 말입니다.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에서, 당신들이 수시로 드나들 이 페이지에서, 페이지가 너덜거리도록 당신들과 만나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네. 이거 이거, 실패를 보여주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란 말인가. 괴롭습니다, 괴로워요……” 라고 말이지요
찬비가 얼굴을 때리는 새벽, 나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죽은 할머니에게라도 할아버지에게라도
거리의 부랑자들과 매춘부들에게라도
웃거나 울지 않으면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술집에서 만난 보이와 건달 녀석에게라도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눌러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찬비를 맞으며
삼일 만에 귀가했을 때
집안은 어두웠고 여자는 침울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했지요
지난달에도 지지난달에도
우리는 약속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철사로 꽁꽁 묶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석고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석고가 부서져 날리는 새벽
(하략)
하현옥 기자 중앙 2013.09.24
◆황병승=1970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석사 수료. 2003년 ‘파라21’로 등단.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육체쇼와 전집』. 박인환문학상 수상.
내일은 프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빛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다리 위에서, 보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다리 아래서,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괴로워…… 그러게 말입니다.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에서, 당신들이 수시로 드나들 이 페이지에서, 페이지가 너덜거리도록 당신들과 만나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네. 이거 이거, 실패를 보여주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란 말인가. 괴롭습니다, 괴로워요……” 라고 말이지요
*
찬비가 얼굴을 때리는 새벽,
나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죽은 할머니에게라도 할아버지에게라도
거리의 부랑자들과 매춘부들에게라도
웃거나 울지 않으면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술집에서 만난 보이와 건달 녀석에게라도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눌러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찬비를 맞으며
삼일 만에 귀가했을 때
집안은 어두웠고 여자는 침울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했지요
지난달에도 지지난달에도
우리는 약속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철사로 꽁꽁 묶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석고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석고가 부서져 날리는 새벽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살구를 한번도 사다 준 적이 없지…… 당신은 살구를 한 번도 사 온 적이 없어…… 어째서,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살구가 당신의 마음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당신은 살구 대신 복숭아를 사오곤 했지, 나는 복숭아 알러지가 있는데…… 언제나 당신뿐이라고, 언제나 당신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마음속에…… 어째서, 나의 간절한 살구가 열매 맺지 못했을까……”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지요
“나쁜 새끼 같으니라고!”
나쁜 새끼는 나뿐인 새끼, 나밖에 모르는 새끼, 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살구 때문에, 살구 하나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말아…… 살구는 내가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해온 이유이고 목적이고 전부였으니까…… 살구 때문에 나는 당신과 함께 지내는 내내 괴로웠고…… 살구 하나 때문에 당신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으며…… 살구 때문에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한동안이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살구 때문에, 살구 하나 때문에……”
여자는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
세탁기하곤 말이 안 통하니까
이봐 피츠,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셔?
세탁소
어디에서?
어딘가에서
깨끗한 옷 좋아해?
금세 더러워질 테지
나쁜 짓 많이 했어?
살인 빼놓고
부모님은 뭐라셔?
뭘 뭐라셔
하긴 세탁부들은 대개 말이 없지
세탁기하곤 말이 안 통하니까
너도 다를 건 없어
뭐라고?
이봐 피츠! 그러니까 내 말은 소가 쓰러질 때까지 투우는 계속되지 않겠냐는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알아, 우린 언젠가 창에 찔린 소처럼 쓰러지고 말겠지
웃기시네
웃기시네라니, 누가 누구한테?!
차라리 머리통을 세탁기에 처넣고 말지
그럼 내가 스팀다리미로 문질러줄게
내 머릴?
네 머릴
빳빳하게?
빳빳하게
현찰처럼?
기념우표처럼
서랍 속에라도 넣어두게?
그래, 금고 깊숙이
와아…… 피츠는 갑자기 혼자가 되어버리겠군!
*
갑자기, 나는 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골목 끝으로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피츠 피츠…… 나는 왜 불현듯 지난 가을에 적어두었던 메모가 떠올랐을까요
*
차와 간식이 없는 세상에서
여자는 도시 사람답지 않게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내가 좁은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끄적거리고 있을 때면
여자는 차와 간식이 담긴 쟁반을 건네며 덜떨어진 미소를 짓고는 했었지요
나는 그때마다 다짐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두더지처럼 생긴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살아 있는 동안 아름답고 근사한 것을 만들자
죽는 순간까지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아
연연하고 고려하자
그러나 이제는 두 번 다시 그녀의 두더지 같은 얼굴을 볼 수 없겠지요
그녀가 건네주던 따뜻한 차와 간식도 더 이상 받아먹을 수 없을 것이고
그녀의 순박한 말투와 웃음소리도 더는 들을 수 없겠지요
아 아름답고 근사한 것은 무엇이며
벽면 가득 붙어있는 저 메모 쪼가리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이봐 피츠,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어?
이 길 끝에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전당포도?
전당포도
스낵바도?
스낵바도
잠자리도?
잠자리도
맙소사, 우린 완전히 길을 잃었어
우린 완전히 새로운 길 위에 있지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어
하지만 우린 더 멀리 가야해
우린 곧 쓰러지고 말겠지
창에 찔린 소처럼 말이야?
나는 지금이 너무 무서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꿈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또다시 피를 흘려야겠지
우린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우린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야
아무도 우릴 뒤쫓지 않아
우리가 전부 해치웠으니까
아무도 우릴 막아서지 않아
우리가 악몽의 주인이니까!
나는 지금이 너무 두려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우린 곧 죽고 말겠지
우린 지금 태어나고 있어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
아무도 원해서 태어나지 않아
제발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부디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기를……
*
피츠 피츠……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거리를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에 젖은 후줄근한 옷차림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자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소설, 소설만을 생각하며 나는 달리기 시작했지요
또다시 실패를 보여주는 데 실패하고 말지라도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마지막으로 한 잔 더, 마시며 소설을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술집을 향해
*
쿵쾅 쿵쾅 쿵쾅 쿵쾅
나는 술집의 나무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갔지요
쿵쾅 쿵쾅 쿵쾅 쿵쾅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계단은 끝없이 이어졌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자는 잘생긴 코지
좋은 군인은 모두 좋은 코를 가지고 있어
너는 네 엄마를 닮았으니
최악의 코를 가진 불쌍한 녀석이 되겠지
좋은 군인은 나 하나로 족하다!
아버지의 목소리……
나는 계단 아래 보기 좋게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피……
코피가 흘렀지요
나는 손등으로 코피를 닦으며 술집 문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머릿속의 구상은 온데간데없이 날아갔고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여자가 떠난 텅 빈 집은
또 얼마나 춥고 불쾌할까
……그래요, 아버지
좋은 군인은 기품이 있죠
군대의 기품은 계급이니까
칼라collar가 더럽게 빳빳하죠
*
앞으로의 인생은 둘째 치고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나를 가끔 나무 위에 매달아 ‘주셨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인데……
나는 나무 위에 몇 시간씩 매달린 채로 나의 지나온 행적과 앞으로의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려 했지만, 까마귀들이 날아와 미친 듯이 울어댔고, 어떤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으며, 또 어떤 날은 날벌레들이 콧구멍 속을 바쁘게 들락거리는가 하면, 또 어떤 조용한 날엔 거미들이 얼굴에 흰 줄을 치기도 했지요
반성이나 앞으로의 인생은 둘째 치고 내가, 여기, 왜 매달려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떤 비참한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던 거지요
*
벙어리는 침묵과 절름발이는 목발과
나는 술집 계단 아래 거꾸로 처박힌 채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타이피스트를 부탁해야지
머릿속의 구상과 잠꼬대와 헛소리를 정확하고 빠르게,
열정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타이피스트!
기계와도 같은 타이피스트를…… 에이전시, 타이피스트
에이전시라니, 타이피스트라니……
나는 계속해서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절뚝거리는 다리로 술집의 나무계단을 올라섰습니다
내일은 프로
내일은 프로
중얼거리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