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마음훈련이 뇌 구조를 바꾼다

해암도 2018. 1. 17. 16:01

[스페셜 리포트] 과학으로 본 명상의 효과

최근 과학적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는 분야, 명상.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마음챙김'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그 효능이 각광받고 있다.
실제 마음훈련을 하다보면 뇌의 구조에서부터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는데…  

2006년 1월 초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주요 언론들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세계 최첨단과학학회의 하나인 '신경과학회(The Society for Neuroscience)'의 2005년 정례 학술발표회에서 티베트불교의 승왕 달라이라마가 기조연설을 했다. 강연의 연제는 '뇌의 가소성'이었으며 명상 수련을 하면 뇌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요지였다. 신경과학회 학술대회에 불교지도자가 초빙되어 특별강연을 했다는 것이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은 1993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의 대체의학 연구소(OAM)에서 명상의 의학적 연구를 위해 공식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한 이후부터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명상의 과학적 연구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는 한 지표로서 2003년 8월 3일자 타임지는 표지기사로 '명상의 과학'이란 내용을 다루었고, 뉴스위크지는 2005년 9월 특별호로 '마음을 챙겨야 건강하다'를 표제로 삼았다. 2014년 2월 3일자 타임지는 커버스토리를 '마음챙김 혁명'으로 했고, 2015년 10월 미국심리학회지의 하나인 아메리칸 사이콜로지스트(American Psycholosist)는 '마음챙김이 치료가 된 시대'라는 제목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제 초기 불교 수행법인 마음챙김 명상이 세상을 변혁시키고,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다스리는 주류의 치료법이 된 것이다.


2009년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의대 거머 교수는 미국 심리치료가의 40% 이상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불교의 마음수행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음챙김과 관계 있는 연구 논문이 매년 1000편 이상 보고되고 있다. 마음챙김에 바탕을 둔 수행법은 MBSR, MBCT, DBT, ACT, MBRE 등의 이름으로 각종 정신장애자의 심리치료와 각종 만성질환자의 치료에 새로운 치료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명상으로 몸을 바꿀 수 있다? 명상을 하면 뇌가 바뀐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의학계에선 명상을 각종 질병치료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지아 조선일보 기자

좌우 전두피질의 비밀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기록(fMRI) 장치가 개발되어 명상이나 이완, 또는 일반적인 휴식 상태에서 일어나는 두뇌활동의 신비를 실시간으로 밝힐 수 있게 되었다. fMRI 장치는 특정한 순간 뇌의 여러 부위로 혈액이 흘러가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순간순간 어떤 특정 뇌 부위가 활동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최근 하버드대 의대 벤슨 박사는 집중명상에 수반되는 이완반응이란 고전적 개념을 더욱 넓혀 본격적인 명상 단계에 이르면 '안정과 동요'라는 서로 모순적 상태가 동시적으로 뇌 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fMRI 연구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안정동요 현상은 명상 도중 통찰이 일어날 때 나타나는데 다시 말해 과거부터 지속되어 오던 정신적 또는 정서적 타성이 깨뜨려지는 순간 나타난다는 것이다. 타성을 깨뜨리는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데는 일산화질소라는 기체성 물질이 매개한다. 벤슨 박사는 통찰이 발생되면, 즉 뇌의 전반적 활동성은 감소되어 조용해지지만 혈압·심장박동·호흡의 조정과 관련 있는 뇌 부위의 활동성과, 주의집중과 공간·시간개념이나 의사결정의 조정과 관련 있는 뇌 부위의 활동성은 오히려 증가한다고 했다.


이처럼 명상하는 동안 평소 머리를 아프게 해오던 난제가 풀리는 통찰적 상황(brakeout)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뇌 부위 활동은 줄어들지만(잡념이 줄어든다는 뜻), 주의나 각성 담당의 뇌 부위나 평화나 이완감을 일으키는 부교감 신경계의 작용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동성은 오히려 증가한다. 즉 한쪽은 안정, 또 다른 쪽은 활성을 동시에 보이는 이른바 '안정동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은 선(禪)에서 말하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의 상태일 때 일어나는 뇌 활동의 특징적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휴식할 때와 명상할 때 정서를 자극하는 소리를 들려주고 fMRI로 뇌의 반응을 살폈다. 명상 초보자(일반인)는 별 차이가 없지만, 명상 수행자는 크게 차이가 난다.

위스콘신대학의 데이비슨 박사는 fMRI와 EEG를 사용하여 감정을 지배하는 뇌 부위를 확인하려 하였다. 즉 사람들이 불안이나 분노나 우울과 같은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 활성을 보이는 뇌 부위는 뇌의 '편도체'와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심한 경계반응을 보이는 '우측 전전두피질'이라는 것이 관찰되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의 감정이 즐겁고 낙천적이고 열정에 차 있고 기력이 넘치는 긍정적 감정 상태일 때는 평소 조용하던 좌측 전전두피질이 갑자기 활기를 띤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데이비슨 박사는 좌우 전전두피질의 기저수준 활동성을 알아봄에 따라 한 개인의 전형적 기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좌우 전두피질의 활동 비율을 알아보면 매일매일의 기분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른쪽 반구 전두피질의 활동성 쪽으로 기울어지면 불행과 고민이 많아지고, 왼쪽 반구 전두피질의 활동성 쪽으로 기울어지면 행복해지고 열정에 찬다고 했다. 데이비슨 박사는 극단적으로 오른쪽 전전두 쪽으로 활동성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비교적 소수이지만 임상적으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이고, 반대로 왼쪽 전전두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낙천성을 보이는 매우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티베트불교 스님으로 분자생물학 박사인 메튜 리카르라는 스님은 인도와 네팔에서 명상을 30년 이상 수련하였는데 몸에서 광채가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스님을 뵙기만 해도 저절로 행복감을 느낀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스님을 '행복한 게쉐(happy gesche)'라고 불렀다. 이 스님이 자비 명상을 하고 있을 때 fMRI로 뇌 영상을 촬영해 보면 왼쪽 전전두엽의 활성이 오른쪽 부위에 비해 99.7%가 더 우세하다고 한다. '행복한 게쉐' 스님의 좌측 전전두엽의 압도적 활동 우세성은 수십 년간 해온 명상수행 덕분이다.


그밖에 적게는 1만시간에서 많게는 5만5000시간 정도 명상수행을 해온 175명의 티베트 승려를 fMRI로 뇌 영상을 촬영한 데이비슨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좌측 전전두엽의 활동이 우측 전전두엽에 비해 우세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명상수행을 하면 뇌반구의 활동성을 우측 우세성에서 좌측 우세성으로 바꾸어놓아 열정적이고 낙천적이며 행복한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한편 전문 수행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짧게는 두 달(8주)에서 많게는 1년 정도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면 좌측 전전두엽의 기능이 우측 전전두엽에 비해 우세해지고 우울감이 행복감으로 바뀐다는 연구가 선보이고 있다. 예컨대 법관·언론인과 같은 지식인을 대상으로 하루 40분씩 짧게는 60일, 길게는 1년 정도 마음챙김 명상을 하게 했더니 자비심과 행복감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해부학적으로 0.10~0.20㎜ 정도 더 두꺼워졌고, 스트레스가 감소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사고가 명료해지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잘 흔들리지 않고, 주의 초점을 잘 유지할 수 있게 되어 보다 행복해졌다고 하버드대학 심리학자인 사라 라자 박사 등이 보고하고 있다.

8주면 바꿀 수 있다


마음챙김을 커버기사로 다룬 타임지 2014년 2월 3일자.

카밧진과 데이비슨은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즉 MBSR을 스트레스가 심한 한 생명공학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3시간씩 두 달간 실시하게 했다. 수행에 참가한 피험자들은 그전에 명상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어떤 마음수행에도 참여한 적이 없는 초심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동시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2개월간의 수행이 끝나자 오른쪽 반구로부터 왼쪽 반구의 우세성으로 옮겨갔고 동시에 이들의 기분도 개선되었고 하는 일에 보다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또 하나의 유익한 발견은 마음챙김 명상이 면역기능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즉 이 명상을 한 사람들은 독감바이러스 주사를 받고 난 후 혈액 속의 독감항체의 양을 측정했을 때 면역체계가 보다 강화되었다. 감정의 결정점이 왼쪽 반구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사람일수록 면역 측정치가 더 많이 상승했다.


최근의 뇌과학에서는 마음을 훈련하면 뇌가 바뀐다는 '신경가소성'이라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성인의 뇌는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뇌세포가 병이나 사고로 한번 죽으면 회복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마음훈련을 하면 뇌가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훈련에는 특별한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런 마음훈련을 조금씩 실천해나가다 보면 점진적으로 뇌의 기능이 달라지고 마침내는 뇌의 구조까지 달라진다. 이렇게 뇌가 긍정적으로 변화됨에 따라 어두운 마음이 점차 밝은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삶이란 순간의 연속이다. 순간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감각, 감정, 생각이 일어날 때 뇌 속에서 각각의 심리기능을 담당하는 신경회로가 작동된다. 이런 신경회로가 계속 되풀이하여 작동하면 회로 간의 소통이 좋아지고 시냅스라는 신경 접합 부위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세포체의 밀도가 증가되어 뇌피질이 더 두꺼워진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뇌가 바로 우리가 바라는 건강한 뇌인 것이다. 현대 뇌과학은 마음이 바뀌면 뇌가 바뀌고 또한 뇌가 바뀌면 마음이 바뀐다는, 마음과 뇌 사이의 쌍방적 관계를 믿고 있다. 이런 쌍방적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몇 가지 두드러진 예를 들어보자.


첫째, 바쁘게 활동하는 뇌 부위에는 보다 많은 양의 산소와 포도당이 요구되기 때문에 많은 양의 혈액이 공급된다.


둘째, 매일 규칙적으로 이완 훈련을 하는 사람은 스트레스 반응을 낮추고 탄력성을 증가시키는 유전자의 발현이 더 높아진다.


셋째, 활동하지 않는 신경연락망은 쇠퇴하여 소멸하고, 활동하는 신경연락망은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해 구조적으로 달라진다.


넷째, 동시에 같은 활동을 하는 뉴런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모여들어 특별한 신경망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예들이 마음을 훈련하면 뇌의 기능적·구조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주요 발견이다.



'마음챙김 명상' 전파하는 김정호 교수


"지금 여기, 내 감각에 집중하라"


쓸쓸한 세밑이었다. 아이돌 가수는 방 한편에서 스스로 생을 마쳤고, 10여년 만에 최악의 화재사고가 충북 제천에서 일어났다. 사선(死線)을 넘어 북의 병사들은 남으로 오는데, 국경 부근에선 불안한 소음이 계속이다. 우리의 마음은 안녕한 걸까.


지난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김정호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한국심리학회와 한국건강심리학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건강심리학회 산하 '마음챙김-긍정심리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마음챙김 명상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마음챙김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감소(MBSR) 프로그램을 만든 존 카밧진 매사추세츠대 명예교수. /이태훈 조선일보 기자

"우리의 의식공간 또는 정신자원의 용량은 매우 한정적이다. 욕구와 생각이 의식공간에 가득하면 그만큼 내가 지금 느끼는 감각엔 신경을 덜 쓴다. 제로섬 관계다.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욕구와 생각은 빠진다. 명상은 욕구와 생각을 내려놓고 감각, 즉 내 몸과 친해지는 거다. 이게 쉽지 않다. 북극곰 효과라고 있지 않나. '1분 동안 북극곰을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북극곰이 더 생각난다. 내 몸과 친해지면 마음챙김으로 오게 된다. 마음챙김은 내 몸을 보는 거다."


김 교수는 최근까지 인기를 끈 '힐링 열풍'과 마음명상은 좀 다르다고 설명했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물고기를 잡아줄 수도 있고, 잡는 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마음챙김은 마음과 관련한 일종의 기술이다. 기술을 배우려면 훈련을 해야 한다.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거다. 힐링은 다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거다. 순간의 위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2차 고통까지 가지 마라"


물론 김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다. 마음챙김 명상이나 긍정심리학으로 개인이 마음을 다스려봤자, 객관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회사의 정리해고로 실직한 사람이 긍정심리학에 심취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봤자 결국 한 개인의 정신승리 아니냔 얘기다. 김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공식이 있다. 고통은 1차 고통과 2차 고통의 총합이다. 2차 고통은 1차 고통에 저항을 곱한 값이다. 저항의 반대말은 수용이다. 실직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든 살면서 겪는 것들은 1차 고통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벗어날 수 없다. 그걸 놓치지 않고 끌고 가면 2차 고통이 된다. 부처님이 '잡아함경'에서 이런 말씀을 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첫 번째 화살은 누구나 맞는다. 두 번째 화살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쏘는 거다. 욕구와 생각을 멈추면 2차 고통까지 가지 않는다. '왜 실직했지?' '누구 때문이지?' 이건 저항이다. 실직을 했다 해도 1차 고통에서 끝내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개인이 일상에서 마음챙김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감각과 친해지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설거지를 하면서는 그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다. 샤워할 때는 샤워만 하는 거다. 스트레스 잘 받는 사람의 특징이 '반추'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원망, 내일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한 걱정을 끊임없이 반추한다. 이걸 멈춰야 한다. 샤워를 하다가 반추하는 걸 알아채면 지금 여기로 돌아오면 된다. 몸의 움직임, 물의 온도, 소리 같은 감각에 주의를 주면 욕구와 생각이 없어진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89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조선일보     입력 : 2018.01.17    장현갑 영남대 명예교수 편집=한승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