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비트코인 狂風 대처법

해암도 2017. 12. 9. 08:39

  

방현철 경제부 차장
방현철 경제부 차장
20세기 화폐 경제학의 대가인 고(故)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저서 '화폐 경제학' 첫머리에 '돌(石) 화폐 섬' 얘기를 꺼냈다. 남태평양의 야프(Yap)섬에선 바퀴 모양의 돌을 화폐로 사용했다. 크기가 클수록 가치가 큰데, 지름이 4m에 달하는 돌 화폐도 있었다. 그런데 이 섬에서 큰 부자로 알려진 집에는 대형 돌 화폐가 없었다. 먼 조상이 다른 섬에서 거대한 돌 화폐를 뗏목으로 싣고 오다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빠트렸다고 한다. 섬 주민들이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바다 밑에 있을 거대한 돌 화폐가 그 부잣집 소유라고 인정했다.

프리드먼은 돌 화폐 사례를 들어 화폐의 본질은 겉모양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했다. 또 그런 믿음은 누가 강요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프리드먼은 이코노미스트지(誌) 편집장이었던 월터 배젓의 '신용은 저절로 성장하는 힘이지 일부러 만들어 낼 수 없다'란 말을 인용해 설명했다.

지금 우리는 비트코인이란 새 가상화폐에 투자하겠다는 광풍(狂風)을 보고 있다. 연초 한 개에 100만원 수준이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20배 넘게 올라 최근 2400만원을 넘기도 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인터넷상에 코드로 존재할 뿐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야프섬 주민들이 바다에 빠진 돌 화폐를 만지거나 볼 수는 없어도 부잣집이 돌 화폐를 갖고 있다고 믿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과열로 인한 피해자를 막겠다며 비트코인 투자를 '투기'로 규정하고 틀어막을 기세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8일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가 투기 대상이 되는 현실"이라며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빅 브러더'가 돼서 비트코인 투기를 막겠다면 원인부터 정확히 찾아야 한다. 막무가내 규제하겠다고 나서면 투자자들은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예컨대 국내 비트코인 거래소를 막으면 인터넷상에서 해외 거래소를 찾아 비트코인을 살 것이다. 비트코인은 민간이 만들고 전 세계에서 거래되므로 한국 정부가 홀로 규제할 방법은 많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트코인 광풍의 원인을 기존 화폐와 투자 시스템에 대한 불신(不信)에서 찾았다. 비트코인의 가치를 믿고 기존 시스템을 믿지 않는 게 원인이라면 그에 맞는 대처법을 내놓아야 한다. 묻지마 투기도 바탕엔 맹목적인 믿음이 있다.

정부는 우선 과다하게 커진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이 왜 허상 (虛像)인지 알려야 한다. 갈 곳 없는 돈에 들러붙는 '투기 열망'을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로 바꿀 물꼬를 터줘야 한다. 주가 조작 세력을 몰아내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 증시가 더 좋은 투자처란 '믿음'을 줘야 한다. 재테크에 목마른 중산층의 재산 형성을 돕는 금융 상품도 늘려야 한다. 드러난 투기만 잡겠다는 식의 대증요법은 꺼내 들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     방현철 경제부 차장     입력 : 2017.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