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 없애고 다(多)시점 관찰 결과 그린 세잔… 세잔에서 영감받은 피카소, 입체주의 시대 열어
르네상스 이래 원근법에 근거한 그림이 지배했다. 하지만 폴 세잔의 그림으로
미술계는 원근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추상미술의 시대가 시작된다.
[세잔과 피카소가 보는 진실]
폴 세잔은 자기가 보는 형상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엑상프로방스에 틀어박혀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가까이는 테이블에 놓인 과일들을 보았고 멀리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보았다. 세잔의 회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미술에 있어서 ‘보는 법’은 르네상스시대 이래 원근법이 지배했다. 원근법은 실재하는 3차원의 세계를 2차원(평면)에 그럴 듯하게 표현하기 위한 기술이다. 가까운 것은 크고 선명하게, 먼 것은 작고 흐리게 그려 거리감·입체감을 주며, 풍경은 하나의 소실점을 통해 사라진다. 원근법으로 그려진 풍경은 진실(truth)이나 실재(reality)가 아니라 ‘환영(illusion)’이다. 원근법은 단 하나의 눈을 강요한다. 단지 한 장소, 한순간에만 존재하는 하나의 관찰자를 향해 현실의 모든 이미지가 정돈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두 눈을 가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두리번거리며 본다.
원근법 없애 추상미술에 영감 줘
세잔은 하나의 눈이 아니라 두 개의 눈으로 보는 세계가 진실이라고 믿었다. 두 눈으로 보는 세계를 평면에 그리려 했다.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계와 반대의 방식으로 보는 세계는 다르다. 세잔은 이 다름을 평면에 옮기면서 모더니즘의 문을 열고 현대회화의 아버지가 됐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잔은 처음으로 두 눈을 써서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했다. 세잔 덕에 화가들은 원근법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세잔의 발견은 입체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나아가 미래주의, 구조주의 그리고 마티스 이후의 장식미술, 추상미술에도 두루 영감을 줬다.
이중 시점으로 그려진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는 기하학적 원근법 관점에서 보면 과일들이 곧 쏟아져 내릴 듯 불안하다.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을 한 평면에 옮겼기 때문이다. 세잔은 그럴 듯하게 조작된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이 시각정보를 취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그렸다. 2차원을 3차원으로 착각하게 하는 기술을 버리고, 보다 많은 시각정보를 전달하려 힘썼다. 원근법에 익숙한 관객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세잔은 미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정신착란에서 오는 환상이다’고 쑥덕거렸다. 세잔은 “나는 바보들에게 인정받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세잔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물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외관이 아니라 기하학적 구조에 있다면서 ‘자연을 원통과 구체, 원추형으로 해석하라’고 했다. 인상파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외양에 진실이 있다고 봤으나 세잔은 그 밑바탕에 있는 본질적이고 변화하지 않는 구조, 기하학적 요소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은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세계를 창조적인 형식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잔의 위대함은 미술의 ‘자기 목적적인 성질’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후에 ‘형태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로 추앙받았다.
피카소가 “세잔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스승이다”고 했을 만큼 그는 세잔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1907년에 열린 세잔의 회고전은 피카소에게 충격을 줬다. 그는 세잔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서툰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미술가는 훔친다”던 피카소는 세잔을 훔쳤다. 그해에 그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인물을 조합해, 세잔의 방식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입체주의(cubism)의 효시가 됐다.
콜라주 첫 도입한 피카소·브라크
피카소와 브라크는 두 개의 시점이 아니라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을 평면에 펼쳐 보였다. 그림에서 사물의 환영은 거의 사라지고 사물의 파편(cube)만이 가득하게 된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루앙 대성당의 맞은편 카페에 앉아 성당을 제대로 보는 유일한 방법은 ‘일어나서 똑바로 걸어가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돈 다음, 돌아와 앉아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억, 지식과 함께 본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리고자 했다.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에 피카소와 브라크는 대상의 분석과 조립(재구성)에 열중한다. 회화가 사물을 재현하는 수단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순수회화’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고, 두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추상으로 들어가는 문까지 두드리기 시작했다. 미술을 이해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세잔이나 피카소 앞에서 넘어지는 것은 르네상스 이래 환영주의에 세뇌돼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안내로 익숙한 세상과 결별한 화가들은 낯선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게 된다.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캔버스에 그리는 데 어려움을 느낀 두 사람은 유포조각이나 벽지, 신문지, 담뱃갑 같은 일상적인, 대량생산된 물건을 캔버스에 붙이는 콜라주를 도입했다. 사람들은 이런 작업방식을 ‘종합적 입체주의’라고 불렀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실험은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막을 내렸으나 오늘날까지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은 작가는 드물다.
plus point
세잔 그림의 이론 근거 만든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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