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이문열은 소설 ‘변경’에서 라면의 맛에 경의를 표했다. 1960년대 초였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 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 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는 듯했다.”
농심이 만든 짜장 라면 ‘짜왕’이 최근 롯데마트를 비롯해 몇몇 매장에서 ‘신라면’보다 많이 팔린 것으로 보도되었다. 25년 라면 판매 1위의 아성을 부분적으로 허물어뜨린 것이다. “'짜왕'의 인기가 앞으로 계속될지 단정할 순 없지만 예상보다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농심 측은 밝혔다. 한 달 동안 90억원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김훈이 썼듯이 라면 앞에서는 우리 모두 평등하다. 남녀노소가 없고 갑부도 이 B급 먹거리를 먹지 않곤 못 배긴다. 아이들은 라면을 끓이면서 불과 물, 음식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라면은 간편한 식품 이전에 하나의 음식 혁명이었고 우리 삶이라는 드라마에 꼭 필요한 조역”(음식 칼럼니스트 박찬일)이다.
한국인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연간 73봉지다. 원산지 일본(1인당 43봉지)을 따돌리고 세계 1위. 50년 라면사(史)에 헌정하는 책 ‘라면이 없었더라면’(로도스)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속이 괴로운 날에 당기는 식사일 수도 있다. 알게 모르게 삶을 지탱해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