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직장인 윤경호(30)씨는 지난해 9월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한강시민공원 양화대교 부근에서 자전거를 타던 중 보행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분하는 연석에 앞바퀴가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윤씨는 오른쪽 광대뼈가 부러져 한 달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사고를 조사한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야간 주행 중 방향을 틀다 도로가에 설치한 연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라면서 “운전자가 헬멧을 쓰지 않아 하마터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다”고 말했다.
자전거는 ‘레저스포츠의 꽃’이다. 레저업계가 추산하는 국내 자전거 이용자는 1200만명에 이른다. 출퇴근용 또는 운동용으로 자전거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4대강을 중심으로 전국 주요 하천이 자전거 전용도로로 연결된 것도 자전거 붐에 일조했다. 관련 시장은 최근 5년새 두 배 가까이 커져 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도 함께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자전거 관련 사고 건수는 연 평균 8% 안팎의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자전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매년 300명 가까이 됐다. 인구 10만명 당 자전거 사고 사망자 비율은 0.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4명)의 1.5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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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산업의 성장 속도를 문화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 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안전장구를 제대로 갖추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5년간 자전거 사고 사망자 중 안전모(헬멧)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는 55.7%에 달했다. 사망 원인 1위가 머리 부상(73.4%)이다. 황규일 전국자전거연합회 사무처장은 “자전거 성능이 꾸준히 향상돼 평균 주행속도도 점점 빨라진다”면서 “헬멧을 착용해 머리를 보호하면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냥 자전거에 오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널 땐 반드시 내려서 끌고가야 하는데 실천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좌·우 회전시 수신호로 알리도록 한 규칙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권장 최고 속도(시속 20㎞)를 말하면 자전거 매니어들은 피식 웃고 만다. 황 처장은 “자전거를 탄 채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많은데,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어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부족한 것도 사고가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시의 경우 자전거도로 448.2㎞ 중 전용도로는 69.7㎞(15.5%)에 불과하다.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하는 도로가 325.6㎞(72.6%)에 이르고, 자전거와 차가 공유하는 도로도 52.9㎞(11.8%)나 된다. 정해준 서울지방경찰청 경위는 “자동차와 자전거, 보행자는 이동 속도가 서로 다르다. 이들이 도로를 공유하는 환경에서는 사고 위험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전거 도로의 울퉁불퉁한 노면을 고르게 하고 주행에 방해되는 구조물이나 불법 주·정차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4대강 유역 전용도로의 경우 라이더들을 위한 쉼터 확충, 사고가 났을 때 신속히 환자를 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또한 한국은 음주 자전거 운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문제다. 회사원 유창현(32)씨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 둔치를 달리다 보면 술을 파는 상인도 보이고, 만취 상태인 자전거 운전자도 보인다. 과속으로 질주하다 사고가 난 표시인 스프레이 흔적을 보면 섬뜩하다”고 말했다.
도로교통법 제50조 8항에는 ‘자전거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처벌규정이 없는 훈시 규정이다. 반면 일본은 자전거 음주운전시 5년 이하 징역과 100만엔(약 9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은 술에 취해 자전거를 몰다가 적발되면 벌금 부과는 물론, 심할 경우 자동차 면허를 취소하기도 한다.
한만정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 회장은 “국회에서 2년 넘게 계류 중인 자전거 음주운전 처벌 규정을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