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블라인드"를 아시나요? - [스마트폰용 '회사별 게시판' 앱에서 익명으로 회사 뒷담화]

해암도 2015. 1. 30. 07:07
  • 부장에게 깨진 金대리가 찾아간 곳은…

                          미생(未生)들의 해방구 '블라인드'가 뜨겁다


[스마트폰용 '회사별 게시판' 앱에서 익명으로 회사 뒷담화]

- 현대車부터 벤처까지 다양
출시 1년만에 107개社 활동, 직원 5~10% 모여야 허가
외부 사용자 끼지 못 하도록 회사 이메일로 인증·가입

- 소통 막힌 직장인들의 사랑방
"○○社는 공무원 분위기" "차장 4년차 연봉은 얼마?"
"몰아주기 이제 그만해라" 불만부터 정보까지 쏟아져

블라인드 앱에 가입한 기업 수 그래프

"A 벤처업체 CEO가 B사(A사가 인수한 회사) 직원들이 6시 칼퇴근하는 거 보고 열 받았다는데…."

"CEO 메시지에서는 회사 비전과 혁신을 실천한 사람을 인사를 통해 보상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예스맨과 보여주기식 성과 낸 사람이 승진하네, 헐."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스마트폰용 회사별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용이다. 블라인드는 벤처 기업인 팀블라인드가 개발한 프로그램. 네이버와 티켓몬스터 등에서 함께 일했던 문성욱(36)·정영준(37)씨가 회사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문 대표는 "네이버에 다닐 때 사내 인터넷망에 익명 게시판이 있었다. 굉장히 재밌고 진솔한 얘기가 많이 올라와 반응이 좋았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폐쇄해버려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되살려 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앱은 2013년 12월 출시됐고, 현재 107개 사의 게시판이 있다. 현대차, LG전자, CJ, KT,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으로 업종도 다양하다. 게시판 신청자가 해당 회사 전 직원의 5~10% 정도 될 경우에만 개설이 허가된다. 직원이 아닌 외부 사용자가 못 끼도록 회사 이메일을 통해 인증 과정도 거친다. 게시판을 쓸 때는 익명(匿名)을 보장하고 닉네임(필명·筆名)을 한 달에 최대 5차례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별의별 얘기가 다 올라온다.

◇회사 비판에서 생활 정보까지 각양각색

이 익명 '사랑방'에서는 주로 회사에 대한 불만과 관심사, 직장 문화나 생활 정보 등이 오간다.

"○○사 사내 분위기는 어때요?" "완전 공무원 분위기입니다."

"○○사 차장 4년 차 연봉은 얼마?" "6400(만원) 좀 안 되죠."

"말로는 창의성, 효율성 강조하면서 새마을운동 군대 마인드로 일 시키네. 창조 경영은 무슨."

"내용도 없는 사내 방송 보라고 1시간 일찍 출근을 강요하는 문화 너무 괴롭다. '사상(思想)' 세뇌 방송 보느라 아이들 챙기지도 못하고. 강제 시청한다고 달라질 거라 믿는 간부들은 순진한 건지 바보인지…."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내부 고발성 글도 종종 등장한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벌인 '항공기 회항(回航)' 사건 때도 대한항공 블라인드에 올라온 내용을 통해 사건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지난해 말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반대하면 사표 내는 걸로 간주하겠다"는 강요가 있었다는 글이 블라인드에 올라와 한동안 홍역을 치렀다.

민감한 내부 사안을 지적하는 글도 적지 않다.

"○○ 라인 공통점. 대놓고 받아먹는다. 물러나도 잘산다. 측근을 심어놓는다" "○○ 계열사가 상속세 절감하는 용도인 거 다 안다. 몰아주기 고마 해라" "(회장이) 지방 현장 가서 직원들 다 모이게 하고 손뼉 치는 행사 좀 하지 말자" 등이다. 한 벤처기업 임원은 "익명이라서 사실을 잘 모르면서 일단 올리고 보는 경우도 많더라"면서 "스트레스를 배설하는 하수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인사·홍보팀 직원이 블라인드에 일부러 가입해 문제가 될 만한 글을 검색하는 회사도 많다. 노골적으로 회사를 변호하는 글이 올라오면 "너 회사 프락치(첩자)지?"라는 댓글이 줄줄 달린다. 공교롭게도 삼성 계열사는 아직 블라인드를 시작한 곳이 없다.

◇소통 막힌 '미생'들의 감정 해소 창구

'블라인드 앱' 외에도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소통하는 SNS는 '컴퍼니'나 '꿀위키' 등도 있다. 직장 정보를 공유하는 '잡플래닛'과 미국의 '글라스도어'도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불합리와 부당함에 지친 '미생'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감정을 즉시 해소할 수 있도록 한 게 주효했다"고 지적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전에는 직장 생활에 대해 푸념이나 하소연을 하면 '정신 덜 차렸다'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가려고 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제는 공감하고 포용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이런 앱이 인기를 얻는 것"이라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하소연하는 내용도 점차 노골적으로 돼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위재 블로그 외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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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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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 kjhan@chosun.com           입력 : 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