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家事를 사업으로 만든 마사 스튜어트

해암도 2014. 12. 6. 10:55

살림의 女王 "경영도 살림" 


강한 브랜드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

우리 레시피로 요리했을 때  조언대로 정원에 수국 심었을 때
고객이 그로 인해 행복해야

"적응하고 변하고 진화하라… 배우지 않으면 인생은 끝난다"

'욕구 맞춤형' 라이프스타일  사업변화에 끝없이 적응하는게 우리의 길
잘살고 배우고 싶은 욕구를 따라간다

생활용품 홍수… 차별화 비결은 스스로도 원할만한 걸 만드는 게 모토
적절한 가격, 간소·우아한 디테일 중시


그녀는 여왕처럼 우아하고 당당하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옆에는 수행비서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여성 두 명이 마치 여왕벌을 호위하듯 따라 들어왔다. 하얀 셔츠에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굽이 6㎝가량 됨 직한 앵클부츠(목 부분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73세의 나이가 무색해 보였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는 얼굴에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줄곧 꼿꼿한 자세로 기자를 응시하며 내놓는 답변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녀는 요리, 바느질, 목공예, 집 안 꾸미기 같은 가사를 사업으로 만들어 매출 1억6000만달러(약 1800억원) 기업을 일궜다. 그녀는 요즘도 직접 요리하고 바느질하는 모습을 잡지와 TV 쇼를 통해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업계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TV조선이 주최한 '글로벌 리더스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녀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아테네가든에서 만났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를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녀는 우아하고 꼿꼿한 자세로 환하게 웃으며 “나는 하루에 20시간을 일한다. 여성 사업가로서 유리천장 따위를 생각할 시간은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를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녀는 우아하고 꼿꼿한 자세로 환하게 웃으며 “나는 하루에 20시간을 일한다. 여성 사업가로서 유리천장 따위를 생각할 시간은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이덕훈 기자
―언제부터 요리와 집안일, 실내장식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저는 6남매 가운데 장녀였어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요리하는 것,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는 것을 도와드렸죠. 덕분에 저는 제가 흥미를 가진 분야에서 일하는 방법을 아주 일찍부터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때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브로커로 일을 한 적도 있지 않나요?

"그건 제가 지금 하는 일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저는 무엇이 훌륭한 기업을 만드는지 배웠어요. 그 덕에 저는 훌륭하고, 강한 기업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그건 가계(家計)를 관리하는 것과 같아요. 그걸 기업에 적용한 겁니다."

―지금까지 경력에서 가장 결정적 순간으로는 무엇을 꼽겠습니까?

"첫째는 1982년 첫 번째 책(요리책 '엔터테이팅')을 내면서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때였습니다. 그 뒤로 저는 미국에서 10억달러 가치를 지닌 기업을 만들고 이끄는 최초 여성 기업인이 됐습니다. 또한 딸을 낳고, 두 명의 손녀를 본 것 역시 매우 결정적 순간입니다."

―책을 쓴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저는 출장 연회 서비스를 하고 있었어요. 요리를 직접 했지요. 그런데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일일이 기록해 놓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제가 하고 있고, 알고 있는 것들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에서 책을 썼어요. 그 뒤 저는 다양한 책을 쓰고 여러 사업에 손댔지만 모든 소재가 하나로 귀결돼요. 바로 '리빙(living)'이죠. 그게 바로 제 회사이기도 하고요."

―무엇이 당신의 사업을 뛰어난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입니다. 강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 레시피를 따라서 무언가를 요리했을 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당신이 우리 조언대로 정원에 수국(水菊)을 심었을 때 잘 자라야 하잖아요? 우리의 조언은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그로 인해 고객이 행복해야 합니다."

―1997년에 '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라는 회사를 세우셨죠. 잡지, 방송, 인터넷, 상품 판매를 아우르는 일종의 플랫폼 사업인데 당시로선 꽤 드문 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네. 당시에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총괄해서 하나로 합친 기업은 드물었어요. 지금은 많은 후발 주자가 따라 하고 있지만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사례로 다루기도 했죠."

―여러 사업 분야에서 어떻게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나요?

"우리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마사 스튜어트 리빙' 잡지에서 어떤 케이크를 만드는 법을 다뤘다고 쳐요. 그러면 방송에선 그 케이크 만드는 법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마사 스튜어트 상품부에선 그 케이크를 만들 때 어떤 특수한 종류의 프라이팬이나 요리 기구가 쓰였는지 소개하고 그걸 판매하는 거예요. 이러한 방식은 대단히 큰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에선 미디어가 리드를 하고 머천다이징이 따라가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매우 껄끄러운 질문이긴 하지만, 2004년에 복역한 적이 있으시죠(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식 부당 거래 혐의). 그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어떤 것을 얻었나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그 일은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그건 아주 오래전 일이고, 모두 지난 일이에요."

그녀는 지난 10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소규모 창업자 콘퍼런스 강연에서 감옥 생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됐고, 그것이 매우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알다시피 저는 2004년에 깊은 구멍에 빠졌고, 열 달간 그 구멍에 있었어요. 그 깊은 구멍은 전혀 즐겁지 않은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당신을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엿이나 먹으라죠. 그건 정말 못된 말이고, 아주 어리석어요. 그런 경험은 당신을 전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지 않아요. 그건 당신을 파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극단적으로 강인하고 건강한 사람이에요. 건강, 낙관성, 그리고 다가올 일에 대한 호기심이 그 어렵고 역겨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했어요."

마사 스튜어트 제국의 성장세는 2007년을 정점으로 크게 꺾였다. 지난해 마사 스튜어트 옴니미디어의 매출은 2007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올 3분기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줄어들었다. 매출 감소는 주로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잡지 출판 부문에서 발생했는데, 이 부문 매출은 18% 감소했다. 주가도 고전 중이다. 2005년 2월 35달러를 웃돌던 주가는 지난 2일 현재 4.18달러에 머물고 있다.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고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그건 우리의 광고 매출 감소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잡지 광고와 판매, 인쇄를 메리디스 코퍼레이션이란 회사에 아웃소싱했습니다. 그 회사는 '패밀리 서클'이나 '이팅웰' 같은 유명 잡지를 여럿 거느린, 그 분야에서 프리미엄급 회사예요. 조치를 취했으니 이제는 그 효과를 한번 기대해 봐야죠. 내년에 다시 한 번 결과를 질문해 줘요. 하하."

―하지만 출판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타개할 계획이신지요?

"우선 우리는 누구보다 빨리 디지털화했어요. 우리가 공급하는 잡지 콘텐츠는 모두 디지털화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독자 수는 줄어들지 않았어요. 꾸준히 매월 210만명 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건 기현상에 가까워요. 만약 어느 한순간 변화가 닥친다 해도 우리는 변화에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가 고객

―한국의 기업인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사업을 유지하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우리는 적응하고, 변화하고, 진화합니다(We adapt, we change, we evolve). 변화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게 우리가 취해야 할 유일한 행동 방식이에요. 다행히 라이프 스타일 사업은 모든 측면에 지속성이 있어요.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기를 원하고, 집을 멋지게 꾸미고, 아이들을 예쁘게 키우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하죠. 우리가 그러한 욕구에 제대로 부응하는 한 우리는 항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하고, 진화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런 예는 아주 많아요.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더 쉽고 간단한 것을 원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좀 더 간단하게, 좀 더 간단하게 만들라. 하지만 너무 간단하게는 하지 마라(Make it simple, make it simple, but not too simple)'고 했어요. 우리는 그 신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고, 명확하고, 효율적이어야 하지만, 멍청해져선 안 돼요. 우리는 우리의 우아함, 우리의 스타일을 지키지만, 사람들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진 않아요."

―'비즈니스에는 늘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고 하셨죠. 또 '잘 계산된 위험은 훌륭한 투자가 될 수 있지만,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기회는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회장님에게 가장 큰 위험과 기회는 언제였나요?

"기회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합니다. 한때 우편으로 꽃을 배달하는 사업을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곧 접었어요. 꽃이란 건 신선한 생선이나 마찬가지라서 며칠이 지나면 상하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가장 큰 성공은 홈 비즈니스(가구, 벽지, 페인트 등)였어요. 수억 명이 제품을 사 갔죠."

―회장님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기업이 고객의 마음에 브랜드를 심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고객이 당신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해요. 이건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구입한 새 차가 하루 만에 고장이 난다면 두 번 다시 그 회사의 차를 사지 않을 겁니다. 만약 당신이 산 접시가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와중에 깨져 버린다면 두 번 다시 그 접시 브랜드를 구매하지 않을 거고요. 반면에 당신이 구매한 접시를 보고, 친구나 이웃들이 '와, 그거 정말 예쁜 접시인데? 어디서 샀어?' 하고 칭찬을 해 준다면 당신은 다시금 그 브랜드를 이용하겠지요."

―어떻게 고객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가 고객이에요. 우리가 만드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집 안에 있는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이걸 정말 원할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고, 우리에게 효과가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제품으로 개발해요."

―사례를 든다면요?

"플란넬 시트(요 위에 까는 천)를 들 수 있지요. 그건 아주 따뜻해서 특히 겨울철에 좋습니다. 그걸 깔면 굳이 난방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요. 수백만 장 이상 팔렸는데, 우리는 그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그 제품을 정말 사랑했고, 원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받은 가장 귀중한 조언은 무엇입니까?

"브랜드에 집중하고, 당신이 만드는 제품을 브랜드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미리 래미네이트 처리가 돼 반짝반짝 불이 켜진 것 같은 효과가 있는 인조 크리스마스 트리를 판다고 칩시다. 가격을 3000달러로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얼마 팔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주 적절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다면 몇백만 개를 팔 수 있을 거예요. 침대보를 100달러에 팔면 그 판매량은 한정될 겁니다. 반면에 같은 제품을 49달러에 팔면 그것보다 몇십, 몇백 배를 더 판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사업의 아주 초창기에 배웠습니다."
마사 스튜어트가 제안한 비지니스 성공 법칙 10가지
가장 중요한 건 물건이 아닌 자기 만족감

―회장님이 소개하고 있는, 예를 들면 '베갯잇 만들기' 같은 가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지적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수공예품점에서 이미 만들어진 것을 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당신에게 자기 만족감을 줄 순 없어요. 저는 물건 자체보다 자기 만족감이라는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이걸 봐, 이건 내가 만든 거야!' 하는 그런 뿌듯함 말이죠. 그리고 제가 소개한 것들은 매우 검소한 방식이기도 해요. 오래돼서 쓸모없는 셔츠들이 예쁜 베개 커버가 될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들이 낡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무시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수많은 생활용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마사 스튜어트는 어떤 면에서 차별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간소하고, 우아하고, 디테일에 매우 많은 신경을 씁니다. 또 실용적이고, 다른 제품이 가지지 못하는 내구성도 갖고 있습니다."

―회장님과 같은 여성 기업인이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는 예전에 '마사 스튜어트의 아름다운 성공'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기업가가 되려는 남자와 여자 모두가 10가지의 간단한 조언을 따라서 그 꿈을 이루도록 쓴 것이죠. 또 저는 '아메리칸 메이드'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국의 많은 창업가를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소규모 창업가들이 사업 계획을 제출하면 심사 위원단 평가와 마사 스튜어트 쇼의 시청자와 잡지 구독자 투표를 통해 가장 우수한 이를 가리는 콘테스트 형식 프로그램이다. 우승자는 마사 스튜어트 잡지와 쇼에 소개되고, 이베이를 통해 제품을 판매할 기회를 얻게 된다. 3년째를 맞은 이 프로그램에서 올해는 미국 전통 염색 기법으로 천에 물을 들이는 사업가 롤랜드 리케츠가 '올해의 창업가'로 뽑혔다.

한국 음식 공부할 생각

―다음번에 어떤 일에 도전할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뉴욕에 마사 스튜어트 최초 커피 바를 열 계획이에요. 매우 기대되는 일이에요. 마사 스튜어트 카페라니, 하하."

―그 카페의 콘셉트는 뭔가요?

"실내장식은 매우 매력적이에요. 심플하고요. 검은색과 하얀색 대리석과 유리, 크롬으로 꾸밀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야단스럽지는 않아요. 또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의 멋진 컵을 비치할 것이고, 아주 맛있는 커피와 최상급의 페이스트리 빵을 제공할 겁니다."

―정말 많은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대체 하루에 몇 시간 일하시나요?

"대략 20시간요."

―잠을 자기는 하는 건가요?

"시계를 들고 재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아주아주 일을 많이 해요."

―회장님은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이다.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천직(天職)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에게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기꺼이 변화를 맞이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야 해요. 만약 당신이 불행하고, 비참하고, 일이나 삶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고 여겨진다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시도를 해 보세요. 저에겐 두 가지 모토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모토는 '변화하지 않으면, 그 순간 당신은 끝난다(You are through changing, you are through)'는 겁니다."

그녀가 앞으로 배우려고 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 음식이다. "저는 한국 음식에 매우 관심이 많아요. 정확히 말하면 발효 음식이요. 요즘 유행입니다. 아직 미국에서 한국 음식은 일본 음식만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해요. 하지만 저는 한국 음식을 조사하고 공부해 볼 생각이에요."

[마사 스튜어트는] 출장 연회 사업으로 출발… 요리책 인기 끌며 아줌마 스타로

잡지 발행·물건 판매 사업 확장, 주식 거래 문제로 징역 살기도

폴란드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뉴욕 바너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소형 증권사 브로커로 잠시 일하다 출장 연회 사업을 시작했다.

음식 솜씨가 입소문을 타고, 1982년 낸 요리책이 인기를 끌면서 아줌마 스타로 부상했고, 1990년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펴내면서 TV 쇼에도 출연하기 시작했다.

잡지와 TV쇼에 소개된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구상해 1997년 회사를 창업했고, 1999년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1996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들어가기도 했다.

2002년 보유 중이던 생명공학업체 주식을 내부자 정보로 매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 회사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증권사 직원 전화를 받고 판 것인데, 전화 통화 사실을 부인한 허위 진술 혐의와 사법 방해 등 4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5개월을 살았다. 증권 사기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1990년 이혼했다.

        오윤희 기자     조선   입력 : 2014.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