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 강조하는 이순자 前숙명여대 교수
50년 집밥 내공 송복·이인호 교수도 '이순자 집밥' 열혈팬
남편은 아웅산 테러로 숨진 김재익 前청와대 경제수석
사람 만드는 '따뜻한 밥상' 누룽지 한 그릇도 감사히 정갈하게 먹도록 가르쳐
밥 투정하는 손자에겐 "따로 주문 안 받아, 먹지마"
남자건 여자건 스스로 요리할 줄 알아야 품위 유지
"엄마! 나, 이 반찬 안 먹잖아."
어느 날 초대를 받아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순자(76)씨는 집주인 자녀의 투정을 들었다. 이씨를 놀라게 한 것은 아이 엄마의 반응이었다.
"응, 그래 잠깐만. 바로 다른 거 해줄게."
이씨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저러다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되려고….'
그날의 답답함은 평소 지론이던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했다.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정년 퇴임한 이씨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세 손자의 할머니다. 제2의 연구실처럼 아끼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여온 세월이 50년.
어느 날 초대를 받아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순자(76)씨는 집주인 자녀의 투정을 들었다. 이씨를 놀라게 한 것은 아이 엄마의 반응이었다.
"응, 그래 잠깐만. 바로 다른 거 해줄게."
이씨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저러다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되려고….'
그날의 답답함은 평소 지론이던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했다.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정년 퇴임한 이씨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세 손자의 할머니다. 제2의 연구실처럼 아끼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먹여온 세월이 50년.
'식탁에서의 교육이 전인 교육'이라고 믿는 그가 최근 음식 에세이집 '따뜻한 밥상'(청강문화산업대학교 출판부)을 펴냈다.
그가 차리는 집밥의 열렬한 팬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도 책 발간을 응원했다. "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품위는 밥상머리 교육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를 최근 서울 서빙고동 자택에서 만났다.
- 이순자 전 숙명여대 교수는 “손자들에게 삶의 지혜와 가르침이 담긴 밥을 만들어 먹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고 했다. 서울 서빙고동 자택 부엌에서. / 이태경 기자
"아무리 세상사가 바쁘게 돌아가도 누구나 먹는 일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요. 중요한 일이니 그에 걸맞은 관심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 잘사는 길이겠지요. 밥상은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공간이에요. 함께 먹는다는 공동의 경험, 사회생활의 기본을 배우게 되는 곳이지요. 직장 생활의 기본도 거슬러 올라가면 밥상에서 나와요. 나보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게 되니까요. 대가족이 없는 요즘, 다른 세대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법도 밥을 함께 먹으며 배울 수 있죠."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젓가락질부터 가르쳐야 해요. 어떤 분야건 기초 도구를 우아하게 쓸 줄 알아야죠. 식탁 매너는 사람의 격(格)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고요."
―가장 강조하는 점은.
"모든 음식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죠. 감사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고요. 둘째 며느리가 학교에 나가다 보니(서울대 법학과 이우영 교수) 제가 자주 두 손자 밥을 해줘요. 손자가 '난 이거 안 먹겠다'고 하면 '여기 식당 아니니까 따로 주문 안 받는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해요. 한 음식이 상에 오를 때까지 역사가 깊잖아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리법을 발전시켜온 사람들,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있고요. 그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눈앞의 음식이고, 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회인이 되는 거죠."
―일하는 엄마들이 갈수록 많아지는데 매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엄마 손맛을 강조하지만 엄마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부엌일을 여자만 하라는 것도 아니고요. 먹는다는 중요한 일에 남자건 여자건 정성을 들여야 하고, 어릴 때부터 그 점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엄마도 편해져요. 특히 남자아이들에게 '음식 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줘야 해요. 세수와 목욕을 혼자서 하는 것처럼 상도 혼자서 차릴 줄 알아야 성인이죠. 자신의 생활을 품위 있게 유지하려면 만들어 먹는 것부터 할 줄 알아야 해요. '여보 내 밥~' '엄마 밥 줘~' 이런 말 안 하는 어른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씨의 남편은 1983년 아웅산 테러 때 숨진 김재익(1938~1983)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이씨는 2010년 전 재산인 20억원을 부부의 모교인 서울대에 기부했다. 장남 김한회(51)씨는 미국에서 공학박사를 받고 엔지니어로 일하다 40대 중반에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됐다. 지금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차남 김승회(43)씨는 외국계 회사의 서울지사장이다. 이씨의 매운 가르침은 아들을 거쳐 손자대로 이어졌다. 밥상 예절이 생활 전반과 이어진다는 철학이 자연스럽게 가풍(家風)이 됐다. 음식을 대하는 기본예절,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엄하게 가르친다. 차남 김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밥이 맛없다"고 불평하면 "방에 들어가서 5분간 생각하고 나오라"고 '벌'을 준다.
- 이순자 전 교수가 평소에 차리는 밥상. 정성과 깔끔함이 잘 드러난다. / 청강문화산업대 출판부 제공
"식탁 차릴 때 아주 작은 일이라도 혼자서 완수하도록 맡겨요. '태인아(중학생인 둘째 손자), 오늘 저녁 웨이터 할래?'라고 물어보고 식탁보 깔기, 계란 삶기 등을 시켜요. 과정 중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모두가 맛없는 식사를 하게 되니 열심히 하라고요."
이씨는 "아이에게 음식 예절을 가르쳐주고, 자생력과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키우는 것은 국가적 자산을 늘리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크는 아이들은 활동 무대가 전 세계인 세대잖아요. 어느 나라 음식은 안 먹겠다고 한다면 경험의 폭과 시야의 넓이가 좁아질 수밖에 없죠. 음식은 문화의 집약이니까 문화를 이해하고 친해지고, 현지인들과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호감을 나누고 매너를 배워야죠. 세계화가 따로 있겠어요. 밥만 가리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속에 틀이 잡힌다고 봐요."
―책에서 '잘 먹을 줄 아는 주관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했는데. '먹는 주관'이 무엇인가.
"좋은 먹을거리가 지나치게 넘쳐나서 골치인 세상이잖아요.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살려면 스스로 가릴 줄 알아야 해요. 남들이 식도락을 즐긴다며 2시간씩 차를 몰고 가서 줄 서서 먹고 오는 걸 무작정 따라 하면 안 되죠. 식도락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분위기 좋게 먹는 것이지, 유행하는 음식점을 섭렵해나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주관 없는 과소비는 국가적으로도 낭비잖아요."
이씨는 "끼니를 때운다는 말이 제일 싫다"고 했다. "때우면 안 되죠. 섬겨야죠. 혼자서 누룽지 한 그릇을 먹더라도 정갈하게 차려 먹고 정리도 깔끔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분도 훨씬 좋지 않은가요. 삶의 질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존중하고 대접할 줄 알아야 올라가잖아요. 그것이 밥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요."

- 신정선

- 주말뉴스부 기자
- E-mail : violet@chosun.com
- 문화부에서 공연(연극·뮤지컬·무용)을 맡고 있다...
입력 : 201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