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올해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 '아이워치' 공개할 듯
구글, 안경형 컴퓨터 '구글글라스' 판매 눈앞
몸에 붙이는 컴퓨터를 넘어서 '몸 바깥의 뇌'가 될 가능성
"5년 안에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입는 컴퓨터)가 대중화된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ABI리서치는 최근 이런 분석을 내놨다. 손목시계나 안경 모양의 컴퓨터를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감이 잘 나지 않지만,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것 역시 불과 6년 전의 일이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듯 웨어러블 컴퓨터 역시 머지않아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분석이다. 웨어러블 컴퓨터는 옷이나 시계, 안경, 액세서리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를 뜻한다.
올해부터 웨어러블 컴퓨터가 속속 공개된다. 블룸버그는 올해 애플이 손목시계형 스마트 기기 '아이워치(iWatch·가칭)'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현재 100여명이 개발 작업에 착수했고, 관련 특허도 80건가량 보유한 상태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안경형 컴퓨터인 '구글글라스'를 쓰고 뉴욕 지하철을 타고, 패션쇼에도 참석하는 등 곳곳을 활보하고 있다. 최근 시제품을 테스트할 지원자를 모집하는 등 제품 판매를 눈앞에 두고있다.
-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왼쪽)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패션위크 행사에서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가 스마트 안경‘구글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 로이터
웨어러블 컴퓨터가 대중화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일단 두 손이 자유로워진다. 내 몸이 24시간 인터넷과 연결된다. 항상 눈앞에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모니터가 있다. 말하는 것은 곧바로 검색 명령이 된다.
단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몸에 붙인다는 수준을 넘어, 우리의 외뇌(外腦·몸 바깥의 뇌)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LG경제연구원 서기만 연구위원은 "구글글라스를 쓰면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서 "기기가 나를 대신해 학습하고 기억하면서, 언젠가는 내가 스스로 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외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어 번역기능이 있는 스마트 안경을 썼다고 상상해보자. 유럽여행을 가서 낯선 언어의 간판이나 책이 곧바로 한국어로 번역돼 눈앞에 뜬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로 말해도 안경이 실시간으로 번역해 전달한다. 상대의 대답 역시 한국어로 바꿔서 들려준다. 굳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스마트 기기 다 벗어놓으세요"라는 경고를 듣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떤 정보든 다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굳이 암기가 필요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전자기기에 우리의 기억을 의존하고 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고,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부에 의존한다. 지도를 찾아보지 않고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하는 것도 이젠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이 우리의 외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산업 지형도 변한다. 서 연구위원은 "암기 시장은 쇠퇴하고 창조적·예술적 활동을 강화해주는 교육시장은 번성할 것"이라면서 "동시통역처럼 기계로 대체 가능한 직종은 위기에 놓이겠지만 전문 번역가들은 인터넷에 저장될 원본 자료를 생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광고 시장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개개인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위치기반 기술도 좀 더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용자의 생활습관과 선호도를 파악, 개인화·맞춤화된 광고를 제공하는 업체도 늘어날 것이다. 동시에 이용자들의 광고에 대한 거부감도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제조업체들은 고성능 스펙 경쟁을 넘어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協業)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컴퓨터가 사람의 몸에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정확하게 기기를 조작하고, 사용자의 집중을 덜 요구하는 방향으로 웨어러블 컴퓨터가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의류·디자인 등 기술 외적인 분야와의 협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애플‘아이워치’가상 이미지. / ADR스튜디오 제공
- ‘웨어러블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조끼와 손목에 컴퓨터를 장착한 모습. / KAIST 제공
- ‘웨어러블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조끼와 손목에 컴퓨터를 장착한 모습. / KAIST 제공
애플이나 구글,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업체에도 웨어러블 컴퓨터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이미 전 세계 인구(71억명)에 육박하고 있고, 한때 우리의 삶을 뒤흔들었던 스마트폰 역시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선진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128%, 개발도상국도 89%에 달한다. 또 한 번 사람들의 삶을 뒤바꿀 혁신적인 제품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자사의 엑스박스(XBOX) 게임기 등과 연계되는 스마트안경을 개발 중이다.
일부 해외 IT매체들은 삼성전자가 '갤럭시워치'라는 이름의 스마트시계를 개발 중이라며, 음악·시계·이메일 등의 기능이 탑재된 시계 구동화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는 어떠한 웨어러블 제품의 개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에서 한 남 성이 디지털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써보고 있다. / 블룸버그
웨어러블 컴퓨터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도 많다. 구글 글라스나 아이워치 같은 경우 호기심은 충분히 끌 수 있지만, 24시간 몸에 부착하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장시간 착용에 따른 불쾌감과 신체적인 피로는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다. 전자제품은 오래 쓰면 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휴대전화로 장시간 통화하거나 게임을 십여 분 즐기고 나면 금세 뜨끈뜨끈해진다. 열이 나는 기기가 얼굴이나 손목에 찰싹 닿아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24시간 통신망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전자파에 대한 안정성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사회·문화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사진·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몰래카메라, 도청 등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글 글라스의 개념이 공개됐을 때 가장 먼저 제기됐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구글은 소리·불빛 등으로 상대가 촬영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웨어러블 컴퓨터의 확산과 더불어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상에 유포되는 동영상 콘텐츠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웨어러블 컴퓨터 착용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을 없애는 것도 과제다. 카메라가 툭 튀어나온 안경을 쓰고, 컴퓨터가 달린 옷을 입는 것은 아직 낯선 광경이다. 길거리에서 자신의 스마트 기기에 음성명령을 내리는 것도 아직은 민망한 일이다. ETRI 관계자는 “사회문화적 통념에 부합하는 형태로 웨어러블 컴퓨터를 개발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점차 컴퓨터에 매몰되면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상대방과 마주 앉은 채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보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컴퓨터가 몸의 일부가 되는 시대가 오면 이 같은 현상은 보다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컴퓨터가 나의 취향과 개성을 파악해, 알아서 추천하고 판단하는 날이 오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현재는 이용자가 “배고파”라고 했을 때, 주위의 맛있는 식당을 추천해주는 단계다. 나중엔 식당 방문 이력과 현재의 위치, 평소 식당을 검색했던 시간대 등을 분석해 “지금 이 식당에 가보는 건 어때요”라고 먼저 추천하는 단계로 진화할 것이다. 기기가 인간의 인지(認知)와 판단을 대신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
옷이나 시계·안경처럼 자유롭게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컴퓨터. 소형화·경량화를 비롯해 음성·동작 인식 등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구글이 선보인 안경형 컴퓨터 ‘구글글라스’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