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GI 호르몬을 잡아라! 몸이 달라진다]
외로움은 질병… 타인과 접점 늘리자
과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차라리 혼자가 편해요. 사람들한테 맞추는 건 너무 힘들어요.”
연말연시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으니 주변에 혼자 있는 이가 보인다. 말을 걸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애달프다.
요즘 ‘나 혼자 산다’는 이가 부쩍 늘었다. 통계상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다. ‘혼밥’ ‘혼술’을 안 해본 사람이 드물다. 가장 친한 친구로 스마트폰을 꼽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날 이해하는 가장 좋은 사물(thing)은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AI(인공지능) 서비스고, 이들과 함께라면 하루 종일 심심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쯤 되니 오래된 믿음에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기원전 3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는 여전히 유효한가?
외로움이 질병이 되는 시대
2018년 영국은 외로움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 발생 전이어서 국내에서는 사실 충격과 함께 반감을 느끼는 이도 많았다. “국가가 개인의 마음까지 관여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가 정말 외로움에 이토록 취약한가?” 외로움이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적 해결 대상이라는 데 동의하는 이가 많지는 않았다.
의학적으로 외로움이 치료 대상이 된 것은 오래전 일이 아니다. 산업화와 핵가족화를 거치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해, 최근에서야 국가가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규정되었다. 2023년 코로나19 종식 선언 이후 두어 달 만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선포했다. 사회적 고립이 뇌졸중, 심장병, 당뇨, 우울증, 불안, 자살 위험을 증가시켜 연간 87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고 추산했다.
개인적으로 외로움은 ‘현대의 역설’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계 맺기를 강요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혼밥, 혼술이 유행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질병으로 외로움이 다뤄질 만큼 우리는 여전히 끈끈한 공동체를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옥시토신 호르몬
사실 옥시토신은 질병으로까지 확산되는 외로움에 가장 좋은 치료제다. 인체에서 옥시토신은 외로움을 완화하고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첫째, 스트레스 반응을 차단한다.
외로움은 뇌에게는 ‘비상사태’라 할 만하다. 우리 몸은 혼자 남겨졌다는 불안감을 느끼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는데, 옥시토신은 이 코르티솔의 활동을 억제한다.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의 과도한 반응을 낮추어, 세상이 덜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둘째, 사회적 보상 회로를 다시 작동시킨다.
만성적인 외로움에 빠지면 뇌는 타인과의 만남을 즐거움이 아닌 ‘피곤한 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오류가 발생하는 셈이다. 옥시토신은 이 보상 회로를 수리해 준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고 신뢰를 느끼게 하여,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용기를 주고, 감정을 읽는 능력도 예민하게 만들어준다.
셋째, 질 높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흔히 아는 사람이 많은 사람들이 옥시토신 분비도 활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단 하나의 깊은 관계만 존재해도 옥시토신 샤워가 가능하다. 그 혹은 그녀와의 눈 맞춤, 가벼운 신체 접촉, 속 깊은 대화는 진정한 연결을 경험하게 하고 질 높은 상호작용도 가능하게 한다.
일상의 옥시토신 분비 트리거
사회생활, 특히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환자일지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몇 분만 나누다 보면 얼굴이 밝아지고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난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교감, 그리고 깊은 유대감을 느낄 때 깊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외로움이 해소될 때 느끼는 안전감과 평온함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요즘 흔히 말하는 ‘무해한 관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혈관이 확장돼 혈압이 떨어지고, 심박수도 안정된다. 통증에 대한 역치가 올라가 덜 예민해지고 근육의 긴장도 해소된다. 안정감을 느끼는 인체는 공격 모드에서 회복 및 성장 모드로 바뀌어 소화 운동을 활성화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속도를 끌어올린다.
타인과의 따뜻한 포옹, 손잡기, 마사지가 부담스럽다면 단 5초간의 셀프 포옹(self hug)도 괜찮다. 셀프 포옹은 나비 포옹으로도 불리는데,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시킨 상태에서 양쪽 팔뚝에 양손을 두고 나비가 날갯짓하듯이 좌우를 번갈아 살짝살짝 10~15번 정도 두드리는 것이다. 이런 부드러운 자극만 해도 감각 신경을 통해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반려동물과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는 안전하고 유대감이 있는 상태로 인지하고 옥시토신을 내보낸다. 누군가에게 베풂을 받기보다 먼저 나서서 친절을 베푸는 것도 우리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
새해에는 나를 더 사랑하자.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가장 먼저 관계 맺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외롭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빈 공간을 채워나가자. 옥시토신을 갈구하는 뇌를 위해 자신을 어루만지고, 자신을 알아주는 것 거기서부터 삶의 온기가 시작될 것이다.
안철우 연세대 의과대 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