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역사상 적에게 굴복한 대통령 없어
트럼프는 굴종적 협상의 대가
우리는 배신자가 돕는 독재자와 전쟁 중"
트럼프를 네로 황제이자 배신자로, 워싱턴 정가는 굽신거리는 신하들로 가득 찬 ‘네로의 궁정(宮庭)’으로, 일론 머스크는 ‘환각제에 취한 광대’로 묘사한 프랑스 상원의원의 연설이 유럽과 워싱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중도우파 정당인 호라이즌(Horizen) 소속인 클로드 말뤼레(Claude Malhuret) 상원의원(75)은 지난 4일 오전 프랑스 상원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정책의 전환이 유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8분 간의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워싱턴은 불장난을 좋아하는 황제와 복종적인 신하들, 케타민(원래 의료용 마취제이나, 환각제로 쓰임)에 취해 공무원 사회를 숙청하는 광대가 있는 네로의 궁정이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미국 공화당은 보복이 무서워 숨 죽이고, 민주당은 대선 패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뤼레 상원의원의 연설 동영상]
그의 연설 동영상은 한 인터넷 사용자에 의해 즉각 영어 자막이 붙여졌고, 미 월간지 애틀랜틱 몬슬리, 워싱턴 스펙테이터(Washington Spectator) 등의 미 언론 매체들이 웹사이트에서 영어로 번역된 그의 연설문 전문을 소개했다.
8분 여의 이 연설은 전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게 봤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 회장 출신인 말뤼레는 AFP통신에 많은 미국인이 갖는 우려와 분노를 전달했을 뿐이라며, 한 인터넷 사용자가 이를 즉시 영어로 번역해서 이렇게 미국에까지 퍼뜨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받은 많은 메시지들은 ‘어떻게 저기[미국]선 아무도 말 못하고, 프랑스 정치인이 이 얘기를 하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말뤼레는 “유럽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놓였으며, 미국의 방패는 사라지고, 우크라이나는 버려지고 러시아는 강해지고 있다”며 “협상의 왕이라는 트럼프는 굴종적인 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포획했으며, 역사상 어느 미국 대통령도 적에게 굴복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푸틴을 독재자로 지칭하며, “지금 우리는 배신자(traitorㆍ트럼프)가 지지하는 독재자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에서 다채로운 표현들(colorful expressions)을 사용했다. 그는 모욕이나 저주보다는 이런 식의 묘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말뤼레 연설의 요약.
유럽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방패는 사라져가고, 우크라이나는 버려지고 러시아는 강해지는 듯하다.
워싱턴은 이제 불장난 황제와 굽신거리는 신하들, 케타민에 취해 공무원 사회를 숙청하는 광대가 있는 네로 황제의 궁정처럼 보인다. 이는 자유 세계에게도 비극이지만, 무엇보다 미국에게 비극이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그와 동맹을 맺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즉, 그는 당신을 방어하지 않을 것이고, 적들에게 부과하는 것보다 더 높은 세금을 당신에게 부과할 것이고, 당신 영토를 빼앗겠다고 협박하면서 동시에 당신을 침략하는 독재자들을 지원할 것이란 메시지다. ‘협상의 왕’은 굴종적인 협상의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푸틴 앞에서 자신을 굴복시켜서 중국을 위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시진핑은 그의 아첨을 보면서 타이완 침공 준비에 속도를 올릴 것이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도 적에게 항복하거나, 동맹국에 맞서서 침략자를 지지한 적이 없다.어느 대통령도 미국 헌법을 짓밟고, 그렇게 많은 불법적인 행정 명령을 내리며, 그 명령을 막을 수 있는 판사들을 해고하고, 한번에 고위 군 수뇌부를 해임하고, 모든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키고, 소셜 미디어를 장악한 적이 없다. 이런 독재적(illiberal) 흐름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포획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그 헌법이 무너지는데 겨우 한 달과 3주, 그리고 이틀 걸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미국 민주주의의 힘을 믿지만, 트럼프는 고작 한 달 새에 1기 행정부 4년 동안 한 것보다 더 많은 해악을 미국에 끼쳤다.
우리는 지금 독재자와 싸우고 있지만, 지금은 배신자의 지원을 받는 독재자와 싸우고 있다. 8일 전,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마크롱의 등을 손으로 두드리던 그 순간, 유엔에선 미국이 러시아와 북한과 함께,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유럽 국가들에 반대 투표를 했다.
이틀 뒤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병역 기피자인 트럼프가 전쟁 영웅인 젤렌스키에게 도덕과 전략을 훈계하고 마치 하인 대하듯이 내쫓으며, 복종하든지 사임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오늘 밤(3월 4일), 그는 더 수치스럽게도 이미 약속된 무기 지원을 중단시켰다.
이런 배신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그것에 맞서 싸워야 한다. 착각하지 마라.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곧 유럽의 패배가 될 것이다. 그 다음 차례는 발트 3국, 조지아, 몰도바다.
푸틴의 목표는 유럽 대륙의 절반이 스탈린 수하에 들어갔던 얄타 회담 당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남반구 국가들은 이 전쟁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계속 유럽을 존중할지 아니면 유럽의 의지를 짓밟아도 되는지를 결정하려 들 것이다.
푸틴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80년 전에 구축한 세계 질서를 끝장내는 것이다. 그 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력을 통한 영토 획득의 금지였다
이 아이디어는 오늘날 유엔의 기초가 됐다. 그런데 오늘, 미국은 러시아와 북한의 침략자를 지지하고, 그들의 철수를 요구하는 유럽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다.
트럼프의 비전은 푸틴의 비전과 일치한다. 그 비전은 강대국들이 소국들의 운명을 결정하던 시절로의 회귀다. “그린란드, 파나마, 캐나다는 내 것이고, 우크라이나, 발트 국가들, 동유럽은 네 것이다. 타이완과 중국해는 중국 네 것이고.” 마러라고의 독재자들의 만찬에서 이는 ‘외교적 현실주의’로 불린다.
이제 우리는 홀로 남았다. 그러나 푸틴에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크렘린의 선전과 달리, 러시아는 힘든 상황에 처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자처한 러시아 군대는 3년 동안 인구가 3분의1에 불과한 국가에서 부스러기 땅만 손에 넣었다. 금리가 25%에 달하고, 외환과 금 보유고는 급락했다.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러시아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미국이 푸틴을 도와주는 것은 전쟁의 최대 전략적 실수다.
[트럼프의 정책 변환이 준] 충격은 강력했지만, 이로 인해 좋은 점은 유럽인들이 더 이상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뮌헨에서 하루 만에, 유럽인들은 우크라이나의 생존과 유럽의 미래가 이제 자신들에게 달려 있음을 깨달았고, 세 가지 중요한 임무를 알게 됐다.
첫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가속화하여 미국의 철수로 인한 공백을 메우고, 우크라이나가 어떤 협상에서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친(親)러시아적인 유럽 국가들을 우회해, 영국을 포함한 같은 뜻을 가진 국가들로만으로 연합을 구성해야 한다.
둘째, 유럽은 앞으로 평화협정이 납치된 어린이들과 포로들의 반환과 무조건적인 안전보장을 반드시 포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푸틴과의 협정이 얼마나 가치가 없었는지 알고 있다.
셋째이자 가장 긴급한 과제는, 유럽의 방어력을 재건하는 것이다. 유럽은 1945년 이후 미국의 핵무기에 의존해 방어를 소홀히 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방어력은 실질적으로 약화됐다. 오늘날의 민주 유럽 지도자들은 이 임무를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로 역사에 평가될 것이다.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이 3월 3일에 발표한 계획은 매우 좋은 출발점이며, 그 이상의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유럽이 군사 강국으로 돌아가려면 다시 산업 강국이 돼야 한다.
그러나 유럽의 진정한 재무장은 도덕적 재무장이다. 우리는 전쟁 피로감과 두려움, 푸틴의 추종자들, 극우ㆍ극좌의 반대에 맞서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이것이 대서양 동맹의 끝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젤렌스키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과 지난 한 달 동안의 미친 결정들은 결국 며칠 전, 미국에서도 반응을 일으켰다. 여론 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공화당 정치인들은 자신의 선거구에서 적대적인 유권자들을 만났다.
심지어 폭스 뉴스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주의자들이 행정부, 의회, 대법원, 소셜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선 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결국 승리했고, 이들이 다시 결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전선에서 결정되지만, 이는 또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미국인들, 유럽인들이 힘을 합쳐 공동 방위의 도구를 찾아내고, 유럽을 현재의 무기력에서 구해내 예전의 강력한 위치로 회복시키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물리쳤다. 우리 세대의 임무는 21세기 전체주의를 물리치는 것이다.
자유 우크라이나 만세! 민주적인 유럽 만세!
이철민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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