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탄핵소추… 원로 인터뷰] [8]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라는 정신입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끼리끼리의 ‘작은 우리’가 아니라 5000만이 하나라는 ‘큰 우리’ 정신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계엄, 탄핵 사태는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대한성공회 김성수(94) 주교는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우리’ 정신의 회복을 꼽았다. 김 주교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과 초대 관구장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 2000년 유산으로 물려받은 강화의 고향 땅을 기부해 발달장애인 재활공동체인 ‘우리 마을’을 설립했다. 지금도 ‘촌장(村長)’을 자처하며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성수 주교를 ‘우리 마을’에서 만났다.
-계엄과 탄핵 사태에 놀라셨지요?
“깜짝 놀랐지요. 저는 일제 때 태어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까지 전쟁도 세 번 겪었고 4·19, 5·16, 민주화까지 다 겪었지만 이번엔 깜짝 놀랐어요. 그건(계엄)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대통령이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대통령은 무엇을 잘못 생각했나요?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것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 무엇이 안 될 때에는 계속 연구하고 ‘왜 안 되나’ 생각하면서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연구하고 생각하는 게 정치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동안 여야는 극단적으로 대립했습니다.
“정치인들이 타협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옛날에는 장래 희망이 대통령이라는 어린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래서야 대통령 되겠다는 어린이가 있겠어요? 제가 처음 신부가 됐을 때 선배 신부들이 ‘설교할 때 교인들이 이렇게 변하면 좋겠다, 이런 설교 말고 스스로에게 하는 설교를 하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해요. 나 스스로도 변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변하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지요.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요.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상대의 장점을 보면서 배우고 자기의 장점은 살려야지요. 중요한 것은 앞으로 가려는 진보와 잡아당기는 보수가 균형을 이루고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서민들이 편안한 세상이 되지요. 진보 속에도 보수적인 면이 있어야 하고 보수 속에도 진보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현 제도는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도보다 사람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만드는 것은 사람이고, 폐기하는 것도 역시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지키고 안 지키는 건 사람의 문제이니까요. 얼마 전 한양원 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님 어록을 읽었어요. 거기에 ‘한 사람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한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집안의 무게가 달라지고, 사회의 무게가 달라지고, 시대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말씀이었어요. 우리는 지금 그런 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지도자의 역할은 어때야 할까요?
“저도 한 10년 교구장을 맡았어요. 교구장 일을 하다 보면 어디 가나 대접을 받아요. 그런데 거기에 취하면 안 돼요. 항상 내가 지금 왜 여기 왔고, 왜 이 자리에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건방져지려 하고, 그러다 문득 ‘어, 이건 아니구나’ 깨닫게 되지요. 지도자들은 그런 점을 늘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그런 점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함께 밥도 먹기 싫다고 할 정도로 분열이 심합니다.
“정말 밥도 먹기 싫다고 해요? 그러면 안 되는데. 한 가지 경험을 말씀드릴게요. 제가 교구장일 때 성공회가 운영하는 한센인 시설에 여러 번 갔어요. 하루는 거기 회장(신자 대표)이 ‘우리 집에서 점심 잡수시고 가세요’라고 해요. ‘네’ 하고 맛있게 한 그릇을 다 먹었어요. 그랬더니 회장님 눈빛이 달라졌어요. 일종의 시험이었던 거예요. 같이 밥을 먹고 나니 나를 대하는 눈빛이 달라진 거예요. 내가 하는 일에 반대하던 신부들도 같이 밥 한 끼 먹고 나면 (반대가) 다 없어졌어요. 서로 원수처럼 대하지 말고 같이 밥 먹으면서 서로를 대하는 눈빛도 좀 달라지면 좋겠어요.”
-평소 ‘우리’를 강조하시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왜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을까요. 그 짧은 기도문에 여섯 번이나 ‘우리’가 나오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우리’를 생각하게 된 것은 폐결핵을 앓았던 경험도 있어요. 청년기에 10년 동안 앓았는데 그때는 죽을병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만나기를 꺼렸어요. 외로운 시절을 보냈지요. 그러다가 신부가 돼서 당시 주교님의 권유로 발달장애인 학교를 만들었고, 이 시설을 만들면서 ‘우리 마을’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됐어요. 장애인만의 ‘우리’가 아니라 장애인, 비장애인 나누지 말고 하나가 되자는 뜻으로요. ‘5000만이 우리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가 예정돼 있습니다.
“차분하게 기다려야지요. 우리는 일제 36년도 기다렸는데요. 혼란스럽겠지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각자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면서요.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에겐 기다림이 제일 큰 무기 같아요.”
☞김성수 주교
인천 강화에서 1930년 태어났다. 배재중(6년제) 재학 시절 폐결핵이 발병해 10년 가까이 투병하면서 성공회 사제를 꿈꾸게 됐고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영국 유학 후 1974년 발달장애인 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설립해 교장을 역임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초대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이사장을 지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반부패국민연대 회장, 푸르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파라다이스상(사회봉사)·만해대상(평화)·민세상(사회통합) 등을 받았다. 상금은 대부분 ‘우리 마을’ 운영에 보태고 있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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