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노인들 영양제 의미 없다” 노년내과 의사 욕 먹을 소신

해암도 2024. 11. 29. 08:58

 노인분들에게 탄수화물은 가장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지방도 많이 먹어야 합니다. 

지난 22일 만난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저탄고지’와 ‘단백질 열풍’을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인에겐 젊은 성인과 다른 영양 기준이 적용된다는 의미일까.

김광준 교수는 내분비내과 전문의로 의사 생활을 하다가 2016년 노년내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8년간 경험한 노인 의료 현실은 어땠을까. 최근 유행처럼 번진 ‘저속노화’ 인기에 힘입어 노인의학이 주목 받고 있지만 그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노인 의료는 망한다”고 경고한다. 어떤 이유일까.


지난 22일 김광준 연세 세브란스 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중앙일보 상암사옥에서 VOICE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의료 수요는 점점 늘고 있는데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국내 노년내과가 있는 병원은 채 10곳이 안 된다. 온전히 운영 중인 병원은 연세 세브란스,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3곳 정도다. 그런데도 노인 환자들이 꼭 노년내과를 찾아가야 할 이유는 뭘까. 내과나 가정의학과에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걸까. 아이들이 아프면 소아과를 찾듯, 노인도 노년내과를 가야 하는 걸까. 김 교수는 “소아는 성인의 축소판이 아니듯, 노인은 단지 나이든 성인이 아니”라며 노년 내과의 필요성을 인터뷰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약을 달고 산다. 병원 두세 군데만 진료를 봐도 먹어야 할 약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각기 다른 처방을 통해 받은 약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약 충돌’을 관리하는 게 노년내과다. 김 교수는 “모든 노인 환자들에게서 약 충돌이 발생한다. 약은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훨씬 더 어렵다”고 했다. 이유는 뭘까. 또 약을 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뭘까.

최근 ‘저속노화’ 유행을 타고 노화를 막는 여러 건강식과 근감소증 예방 운동법 추천이 넘쳐 난다. 그 내용을 그대로 다 믿어도 될까. 진료 현장에서 김 교수 역시 환자들에게 이런 식단을 권하고 있을까. 김 교수는 지중해식 식단 등 ‘저속노화’ 식단을 권할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지, 의사가 식단 추천을 할 때 고려할 점은 무엇인지 등 노화 예방, 노인 환자 식단 구성에 관해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이밖에 김 교수는 근감소증 증상 중에서 세간에 잘못 알려진 내용도 상세하게 전했다.

김 교수는 장수의 첫 번째 비결로 유전자를 꼽았다. 하지만 이게 유전자가 좋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의미일까. 만약 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는 장수의 비결로 생활습관, 가족력, 유전자라는 세 가지 요소를 언급했다.

목차

1. 노인환자, 내과 말고 노년내과에 가야 하는 이유
2. 노년내과가 ‘3분 진료’ 못 벗어나는 이유
3. “약을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다” 왜?
4. “지중해식 식단, 자칫 공염불”, 그 세 가지 이유
5. 노인 근감소 예방, ‘저탄고지’가 위험한 이유
6. 노인 모두가 먹는 영양제, 경계해야 하는 이유
7. “장수 비결은 유전자” 의사가 이런 말 하면 욕먹는 이유

노인이 내과 말고 노년내과 가는 이유
노년내과가 필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병원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과목(科目)을 나눈다. 첫째, 증상·장기별 기준으로 내과·외과로 나눈다. 둘째, 연령별로 소아·성인으로 구분한다. 노인이 되면 여러 질환을 한꺼번에 겪게 된다. 개별 질환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장기나 증상만 보는 경우가 많다.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환자에게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치료와 약이 늘어난다. 모든 치료는 ‘양날의 검’이라, 환자는 포괄적인 관리를 못 받으면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정작 병을 더 얻는 경우도 있다. 병원 입장에선 진료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 명의 환자가 4~5명 환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포괄적인 관리를 위해 노년내과가 필요하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최수아

노년내과는 소아과에 반대되는 의미일까.
소아의 신체 기능이 ‘무(無)’에서 ‘유(有)’로 가는 과정이라면, 노인은 유(有)에서 무(無)로 가는 과정이다. 아예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인의 축소판이 소아가 아니듯, 노인은 단지 나이가 든 성인이 아니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최수아

가정의학과에서 노인 의료 해결할 순 없나.
‘의학’은 ‘과학’이지만, ‘의료’는 ‘문화’적 요소가 많다. 의학적으로 풀 수 없는 게 굉장히 많다. 노인 의료 측면에서 가정의학은 ‘주치의 제도’에 기반한 시스템이다. 가정의학 의료진은 주치의로서 알아야 할 지식을 교육받지만, 그 범위는 외래에 더 집중된다. 입원·중증 환자를 보는 관점과 지식이 조금은 다르다. 그래서 ‘노인 주치’ 측면에서 노년내과가 다뤄야 할 게 많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최수아

노인 주치 의료가 원활하지 않은 이유는.
주치의 제도를 위해 만들어진 가정의학과가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의료 현실상 주치의 제도가 필요 없는 상황이 됐다. 전문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도서 산간 지역은 다른 얘기지만, 가성비 측면에서 환자 유도가 안 되고, 의사에겐 동기 유발이 안 된다. 결국 주치의 제도가 정착하기 어렵다. 가정의학과 역할에 혼돈이 생기고, 노인의학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컨센서스(합의·consensus)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노년내과처럼 노년외과도 필요해질까.
안 만들 수가 없다. 노인에게 내과적 질환과 외과적 질환이 다르다. 마치 소아비뇨기과, 소아정형외과처럼 분과적으로 노인외과, 노인정형외과, 노인신경외과 다 나올 거라고 본다. 노인이기에 필요한 분과적 진료가 있다.

노년내과가 ‘3분 진료’ 못 벗어나는 이유
노년내과 진료 8년째다.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나.
우리나라 병원·의료시스템에서 노인의학이 추구하는 통합적, 전인적 서비스 제공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행위별 수가’를 근거로 진료하면, 수입이 늘어야 과가 유지되고, 사람을 뽑을 여력이 생기는데, 노인 의료는 그런 면에서 비효율의 극치다. 효율을 위해선 분업을 해야 하지만 노년내과는 분업이 아닌 통합을 해야 한다. 진료 시간이 늘어난다. 수익이 날 수가 없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그러다 보니 기형적 모델이 나온다. 나의 경우도 노인의학 본연의 통합 진료적 측면에서 노인 환자를 진료하기도 하지만, 원래 전공인 내분비내과적 질환 진료도 한다. 입원이 필요하지만 타과에 보내기 애매한 분을 진료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노년내과 진료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과(科)의 유지, 병원 요구,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환자를 맡는다. 온전한 의미의 노인 의료 서비스로 보기 어렵다.

노인 의료 수요 많아지면, 어쨌든 의사도 더 많이 필요할 텐데.
‘마이너스’ 과에 여러 분야를 잘 알고, 진료할 능력을 갖춘 의료진이 오겠나. 의사는 영역을 분리해야 그 일에 집중할 수 있지만 노년내과는 그러면 안 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돼야 한다. 공부를 진짜 많이 해서 타과 의료진과 일정 수준 이상 소통이 돼야 한다. 그런 노력엔 ‘워라밸’이나 경제적 보상, 명예 같은 동기 유발이 필요한데, 그런 게 없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3분 진료’ 대신 심층 진료를 해서 환자 부담금을 올려보자는 시범 사업을 한 적이 있다. 돈을 더 내는 거에 거부감이 드니 환자들도 원하지 않았다.


그래픽 신다은

김 교수는 “의료도 결국 소비자가 가치를 인정해야 하는 서비스”라며 “노인 진료비가 일반 진료비보다 더 낮은 상황에서 병원 전체 이익에 대한 고려 없이 의사가 소신껏 ‘10분 진료’를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갈등만 유발할 뿐”이라고 했다. 한때 이런 김 교수도 ‘10분 진료’를 성실히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10분 진료’를 하면) 진료실 밖에선 원무과 직원과 간호사들이 힘들어서 진짜 미치려고 해요.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진료실 밖은 ‘지옥’이었던 겁니다. 저는 몰랐어요. 환자가 오래 진료를 보면 기분이 풀려서 진료실을 나가니까…‘10분 진료’는 나의 개인적 욕심이지, 시스템에선 죄’라고 걸 뒤늦게 깨달았죠. 

‘결국 돈의 논리로만 노인 의료에 접근할 수밖에 없느냐’란 물음에 김 교수는 “돈 얘기를 안 하면 답이 안 나온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사보험에서 노인들이 의료비를 더 내는 걸 보장한다면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런 얘기는 없고 겉도는 이야기만 한다”며 “이대로 가다간 노인 의료가 망할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약을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어렵다” 왜?
노년내과에서 ‘약 충돌’을 관리한다. 
환자들이 먹는 약 개수가 늘어나면 충돌이 일어난다. 약을 빼줘야 한다. 약은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훨씬 어렵다. 약을 빼려면 왜 이 약을 썼는지, 그 약을 뺐을 때 문제가 없는지, 대체할 약은 뭔지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의사가 쓴 약을 뺄 땐, 책에 나온 내용만 갖고 빼는 게 아니라, 타 과에 대한 이해와 약을 처방한 의사 의중도 파악해야 한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예를 들어 전립선비대증을 앓는 노인에게 약을 처방했다고 치자. 근데 환자에게 배뇨 문제가 심하지 않고 그 약을 먹으면 어지럼증을 겪고 있다면, 그 약을 뺄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환자가 그 약을 먹은 건 탈모 방지 때문일 수 있다. 약을 빼면 탈모가 심해질 수 있다.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노력과 타 과와의 소통이 수반된다. 그게 다 비용인데, 보상은 없다. 시범사업에서 정량적 평가를 시도해봤지만, 적정 비용이 어떤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노인 ‘약 충돌’이 많은가.
거의 모든 환자에게 약 충돌이 발생한다. 가령 세 가지 과를 돌며 진료 받으면 처방 약이 과마다 다 다르다. 의료진도 다른 과에서 처방한 약을 살펴본다. 다만 문제는 그들의 시각으로 타 과 처방을 본다는 점이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바이올린을 보는 것과 지휘자가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보는 건 다르다. 이런 말 하면 “네가 뭔데 지휘자야?” “네가 뭔데 내가 쓴 약을 빼?”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약을 빼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진료하면 할수록 욕을 먹는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지중해식 식단, 자칫 공염불”…그 세 가지 이유
‘저속노화’ 각광 받으며 특정 운동이나 식단 추천도 쏟아진다.
노년내과, 노인의학, 노인 의료 인지도가 높아지며 방송 등에 출연해 대중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질환 측면에서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대중은 그걸 바라지 않는다. 고육지책이다. 의사들도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주목적이다 보니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100개 중에 10개만 다룬다. 근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환자, 환자 증상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라는 점이다. 환자 진료는 일반화가 될 수 없다. 근데 매체에선 너무 쉽게 일반화한다. 논리 비약이 생긴다. 이상한 해결책이 나온다. 하지만 또 대중은 그런 걸 원한다.

‘지중해식’ 등 저속 노화 식단, 현실적 어려움은 뭘까.
단계가 있다. 첫째 ‘그 환자의 문제가 식단 조절로 나아질 것인가’다. 둘째, 어떤 식단이 좋은지 찾아야 한다. 셋째, ‘그 식단을 실행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다. 예를 들어 지중해식 식단은 올리브 오일과 견과류, 채소, 과일 등에 적절한 탄수화물과 양질의 단백질이 섞여 있다. 당뇨, 비만 등 대사 질환에 좋다. 특히 지방 과다에 효과적이다. 실제로 학술적으로 입증도 됐다. 실제 효과도 있다. 다만, 이걸 유지하는 게 매우 어렵다. 또 식단 일부가 빠지면 조화가 깨진다. 반쪽짜리 식단이 되면, 실제 효과는 기대한 것의 10%도 안 된다. 굉장히 부유하거나, 개인 주방장이 있다면 지속 가능하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실제 환자들에게도 이런 식단 권하나.
환자에게 ‘지중해식 식단을 하세요’라고 권하면 세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그 지중해식을 그 환자에게 최적화해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할 시간이 없다. 오늘, 내일, 일주일, 한 달 치 식단을 상세히 설명 못 한다. 둘째, 권하는 의료진이 진짜 그 식단의 의미가 뭔지, 어떻게 권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 ‘공수표’다. 셋째, 식단은 지속 가능해야 하는데, 유지가 어렵다. 개별적인 코칭이 필요하다. 근데 그런 관리는 의사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아닌 게 따로 있다. 의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훨씬 중요한 경우도 있다. 결국 혼자 실천하는 게 어렵다면, 이건 ‘공염불’이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신다은

노인 근감소 예방, ‘저탄고지’가 위험한 이유
노년기 근육의 중요성 강조하지만, 그 조언이 보통 구체적이진 않다. 
‘근육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왜 중요한지, 어떻게 만들 건지 모른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세한 얘기는 진료 영역이다. 매체에선 그럴 수 없다. 대중이 관심 가질 만한 피상적인 얘기를 한다. 그게 또 기가 막히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단백질 바’, ‘단백질 음료’ 등과 연결돼 시장이 움직인다. 사실이 호도된다. 본질을 안 보려는 거다. (대중은)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한 근원적인 원인 파악과 노력, 해결책보단, 보약 한번 먹는 식의 쉽고 빠른 방법을 택하고 싶어한다. 모두의 책임이다.

근감소 막는 근력 운동 조언이 모두에게 해당 안 된다는 뜻인가.   
100명이면 100개의 솔루션이 필요하다. 근데 그렇게 얘기하면 남 얘기일 뿐이다. 그 과정을 조금 보완해서 설명하자면, 카테고리를 몇 가지 나눌 수 있다. ‘근육 많고, 지방 많은 사람’, ‘근육 많고 지방 적은 사람’, ‘근육 적고 지방 적은 사람’, ‘근육 적고 지방 많은 사람’ 등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근육이 많고, 지방이 많은 건 근감소증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근감소증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근육이 적어도 무조건 근감소증은 아닌 건가.
‘근육이 적으면 근감소증’이라고 보통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근육 양이 많아도 근육 기능이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면 근감소증으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뇌졸중’이다. 못 움직인다. 근육 양 외에 질적 요소 고려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근육 양으로 나눈 기준이 있고, 거기에 근력, 기능 등의 질적 요소를 더해 근감소증을 세분화한다. 다만 일반 노인과 노인 환자는 다르다. 일반 노인은 근육이 적고, 지방이 많은 게 일반적이다. 이들에겐 ‘저당식’, ‘단백질 섭취’가 적절할 수 있다. 다만 노인 ‘환자’의 경우 보통 근육이 적고, 지방도 적다. 완전히 다른 치료 방법을 택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저당식, 단백질 섭취를 해선 안된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이경은

근육 양이 적은 노인이라면, 그래도 단백질 섭취가 우선 아닌가.
근육은 열량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에너지(열량) 공급에 제일 좋은 건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 순이다. 지방을 먹어야 한다. 노인 환자분들은 먹는 지방량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적은 상태에서 아무리 단백질을 먹어도 소용없다. 열량으로 보면 단백질은 4kcal, 지방은 9kcal다. 지방이 열량은 두 배 높다. 또 단백질은 몸에 들어오면 해독을 해줘야 한다. 또 에너지를 쓴다. 반면 지방은 조금 먹어도 열량이 확 오르기 때문에 잘 섭취해야 한다. 그다음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만약 에너지 고갈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열량이 부족하면 근육을 갉아먹으며 열량을 내고 움직인다. 그럼 근육이 줄어든다. 그런 상황에서 운동까지 하면 당연히 효과가 없다.

노인 모두가 먹는 영양제, 경계해야 하는 이유
부족한 영양 보충 위해 영양제도 많이 먹는다.
영양제를 안 먹는 분을 거의 못 봤다. 근데 영양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식사가 해야 할 게 있다. 이걸 바꾸면 의미가 없다. 요즘 ‘단백질’만 강조한다. 말도 안 된다. 3대 필수 영양소 균형 섭취는 이유가 있는데도 단백질만 강조하는 건 ‘비만은 죄, 탄수화물은 적’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또 그게 쉽다. ‘탄수화물이 좋다’고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데, 노인들에겐 양질의 탄수화물만큼 중요한 게 없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약 40%가 당뇨병이니 탄수화물은 먹으면 안 돼’라는 인식이 노인들 머릿속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의료진도 이걸 다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단것 먹지 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당뇨병은 사실 당이 높은 병이 아니다. 당이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없어야 할 곳에 많아서 생긴 병이다. 당은 근육, 심장, 간, 뇌, 콩팥 등 필수 장기에 가장 중요한 영양분인데, 당이 원래 적어야 할 피 속에 당이 있기에 문제다. 이런 분들이 당 섭취를 안 하면 당이 더 떨어진다. 필요한 곳에 당을 보내줘야 한다.

어떻게 보내주나.
피 속에 있는 당을 필요한 곳으로 옮겨주는 게 인슐린이다. 근데 췌장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슐린의 양은 정해져 있다. 그럼 당을 제한할 게 아니라 인슐린을 외부에서 공급해줘야 한다. 그런데 당 조절을 위해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제한한다. 겉으로 봤을 땐 당이 안 들어오니 좋다. 근데 내 몸은 삭고 있다. 필수 장기들은 탄수화물이 없으면 ‘기름 없는 차’다. 맨날 피곤하다.

‘저탄고지’ 실천하는 어르신들도 많은가.
진짜 많다. 방송에서 그 얘길 하도 하니까. 다만 본인들에게 좋지 않은 걸 모른다. 물론 ‘지방이 많고, 근육 양이 어느 정도 되는’ 노인에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근데 그렇지 않은 노인들도 ‘저탄고지’ ‘단백질 올인’은 말이 안 된다. 의료진도 그걸 자세히 안 본다. 혈당 수치 좋아지면 진료 시간이 부족하니 환자를 돌려보낸다. 환자는 몸이 좋아진 줄 안다. 이런 일이 너무 많고 상업적으로 활용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장수 비결은 유전자” 의사가 이런 말 하면 욕먹는 이유 
장수의 첫 번째 비결로 ‘유전자’를 꼽았다.  
의사로서 진료를 통해 환자 상태가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은 정말 일부다. 진료하면 할수록 더 느낀다. 의사가 신적인 존재처럼 비치는 걸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환자가 손을 내밀면 의사가 도움을 줄 순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환자의 생활 방식 등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생활 습관이 있고, 그 기저엔 가족력이 있다. 또 더 들어가면 유전이 있다. 유전이 매우 중요하다. 뚱뚱하고 안 좋은 음식만 먹고, 운동도 안 해서 뱃살이 나온 사람인데, 당뇨병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건 유전이다. 뱃살 속 지방을 견뎌낼 역량이 좋고, 당뇨의 역치 값을 안 넘는 체질이다. 흔히 얘기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안 생긴다. 억울하게 췌장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당뇨병에 쉽게 걸린다. 타고난 능력을 잘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유전은 바꿀 수 없고, 최대한 미리 알아봐야 한다. 다만 비용도 많이 둔다. 또 유전적 특성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이미지크게보기
그래픽 조은재

유전자가 결정적 요소라면,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하나.
‘(나쁜) 유전자가 많으니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유전적 환경을 이해하고 나의 유전적 소인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보통 좋은 유전 소인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나쁜 건 서러워한다.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데 막상 하기는 싫다. ‘왜 나만 그래야 되지?’라고 생각하는데, 노력을 안 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시작하는 병이 너무 많다.


그래픽 최수아

 

에디터     김태호  이경은  조은재  신다은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