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목 경제 칼럼니스트(재무금융 박사)
심리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700쪽 넘는 역작으로 이름을 알린 미국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지난 3월 세상을 떴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여기저기 행동경제학 책인데, 이 분야 창시자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가만히 잘 서있다 남을 따라 무단횡단을 하고 구매할 생각이 전혀 없던 계산대 옆의 껌을 집어 든다. 그게 우리, 사람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정하는 기존 경제학과 달리 행동경제학은 이렇듯 매우 ‘인간적인(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연구를 한다.
카너먼이 생전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진 동시에 매우 싫어했던 인간의 결점은 무엇이었을까. 과잉 확신, 즉 과신이다. 인간 사회에 가장 큰 해를 끼치는 요소라고 했다. 과신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로 정의된다. 낙관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일상 속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쉬운 예로 거의 대부분의 운전자가 자신이 보통 운전자보다 안전운전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전쟁에서 순식간에 이길 것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자신감, 통계와는 동떨어진 높은 이익을 전망하는 최고경영자(CEO)의 편향된 생각 등도 과신에서 비롯한다.
CEO의 과신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자. 이 분야 연구로 유명해진 미국의 두 경제학자가 있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울리케 말멘디어와 메릴랜드대의 제프리 테이트 교수다. 미국 대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CEO일수록 남는 회삿돈을 이용해 과한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과신에 빠진 CEO는 또 보통 CEO에 비해 인수·합병을 할 가능성이 65%나 높다. 때로는 투자자들이 반대하는 합병을 해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린다. 한 개인인 CEO의 과신이 투자자·직원·협력사·(세금 걷는)정부 등 여럿에게 피해를 준다.
호기심이 많은 분은 경제학자들이 ‘과신’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궁금해 하실 거라 생각한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CEO가 본인 회사에 소위 ‘몰빵’ 개인투자를 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본인의 능력을 너무 믿는 나머지 자기 회사가 최고의 투자처라고 보고 분산투자를 꺼린다. 둘째로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언론 기사가 해당 CEO를 어떤 단어로 주로 묘사했는지를 보고 과신의 여부를 측정한다. 가령 한 경영자를 ‘자신감 넘치는’, ‘낙관적인’이라고 표현하는지 아니면 ‘보수적인’, ‘신중한’ 등으로 부르는지 분석해 ‘자신감’을 측정한다.
그런데 과신의 장점도 있을까? 행동경제학의 또 다른 대가인 데이비드 허슬라이퍼 어바인 소재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의 연구에 따르면 장점도 있다. 역시 화끈하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CEO일수록 연구·개발(R&D)과 같이 불확실성이 큰 프로젝트에 더 공격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CEO 대비 R&D 투자를 30%나 늘린다. 특허 출원 건수도 30%가량 증가하고, 특허의 질을 의미하는 특허 피(被)인용 횟수는 40% 넘게 상승한다. 이런 현상이 특허를 통한 혁신이 큰 산업군에서 주로 나타난다. 전기차에 만족하지 않고,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생각난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무리하게 내세운 뒤 결국 몰락했다. 미국 메디컬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모두 한때 승승장구했으나 지금은 감옥에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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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입력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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