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병원에서 한마디도 안 해주는 거죠?”
수화기를 뚫고 나오는 보호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스테이션(간호사 업무 공간)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지만 현실에서는 더 흔하다.
“주 보호자인 첫째 아드님에게 지난번 말씀드렸어요. 환자분 폐에 물이 많이 찼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전화로 설명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열심히 투석해서 잠깐 좋아지셨지만 워낙 고령이라 다시 폐가 안 좋아지신 거고요.”
수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이 부족했던 건지, 더 높은 사람을 찾았던 건지 결국 병원 부원장님까지 전화를 이어받았다.
“그래도 병원에서 다시 저한테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 아버지 어떡하실 거예요?”
환자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은 건지 우리야말로 묻고 싶었다.
“저희가 지난번에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시면 대학병원에 갈 수 있도록 진료의뢰서를 써드린다고 했지만 거절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환자분 연세가 아흔이 넘었고 몸무게가 40㎏ 안 돼서 기력이 없으세요. 일주일에 3~4번씩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오시는 것 자체가 힘드실 거고 낙상의 위험도 큽니다. 이곳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도 어렵고요.”
“그럼 여기서 치료를 못 해주겠다는 건가요?”
“대학병원이 싫으시면 투석이 가능한 요양병원이라도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라는 건가요? 그렇게는 못 합니다.”
보호자는 환자를 큰 병원으로 보내겠다며 진료의뢰서를 받아 갔지만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그것도 잠시, 환자는 한 달 만에 내가 일하는 병원으로 다시 왔다. “요양병원 입원비가 생각보다 부담스럽더라고요.” 보호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환자가 돌아온 것이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부터 이런 일은 정말 많이 겪었다.
환자들의 노후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두 가지다. 나는 부모님의 노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 한 가지, 내 노후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나는 부모님이 아프시면 잘해야지’ ‘부모님이 잘 키워주셨으니 병원비 걱정은 안 하시게끔 해야지’라는 생각은 늘 한다. 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처음에야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진상 보호자들을 보고 있으면 속상하지만 마냥 비난할 순 없다. 가족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를 나는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노후를 생각해 보자.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나는 너무 오래 살까봐 걱정이다.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2021년도 여자의 기대수명은 86.6세이다. 이 정도라면 내 기대수명이 100살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60대에 은퇴한 다음, 돈을 벌지 않고 40년 정도 더 살아야 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일단 은퇴하기 전에 노후자금을 열심히 모으는 수밖에. 그 환자는 본인의 노후자금을 열심히 모으지 않았던 것일까? 아마 그것보다는 자식을 부족함 없이 키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이도 젊은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매일 출근하면 마주하는 문제라 어쩔 수 없다. 간호사이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너무 빨리 알아서 가끔 피로감이 들 때도 있지만 늦게 안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부모님의 노후를 잘 보살피고 나의 노후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좋은 방법?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매일같이 고민하고 있지만 남들보다 먼저 정답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
박소진 간호사 조선일보 입력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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