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레스토랑 ‘모수’ 오너셰프 안성재
살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날을 맞게 되는 경우가 있다. 2004년 어느날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도로를 운전하던 24세 재미교포 청년은 거리에서 흰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봤다. 알고 보니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 College of Culinary Arts in Los Angeles)’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호기심에 곧바로 학교 투어를 하고 입학 설명까지 들은 그는 요리의 세계에 매료됐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드림 카’ 포르쉐 정비공이 되기 위해 자동차 정비 전문학교에 입학 수속을 마치고 다음 주 등교를 앞두고 있던 그는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입학 수속까지 한 정비 학교에 전화를 걸어 등록금을 환불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원래 예정돼 있던 정비 학교가 아니라, 구경 갔던 요리 학교에 입학했다.
최근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에서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은 ‘모수(MOSU)’의 안성재 셰프 이야기다. 서울에서 올해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모수와 2016년부터 7년째 별 세 개를 지키고 있는 ‘가온’밖에 없다. 모수는 올해 처음 미쉐린 2스타에서 3스타로 올라섰다.
10월 25일 모수에서 만난 안 셰프는 “돌이켜보면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한 번 내린 결정은 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밀고 나갔다. 그게 여기까지 온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요리 학교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조리대에 트러플이나 캐비아가 놓여 있고 다들 엄청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 셰프가 아주 멋있는 직업 같았다. 알고 보니 학교 측에서 예쁘게 포장한 모습을 보여준 거긴 했지만. 사실 요리사도 막노동이다.”
현실을 알고 후회하지 않았나.
”전혀. 정비 학교에 갈 결심을 하기 전까지 난 군인이었다. 학비를 벌려고 미군에 입대해 1년간 이라크 파병을 다녀왔다. 그래서 쉬운 일이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요리 학교에 입학해 보니 굉장히 일찍 진로를 결정한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을 따라잡아야 했고, 전문직 종사자가 되기 위해선 학교 공부 뿐 아니라 실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등교 첫날 주방 보조 직업을 구했다. 그랬더니 ‘첫날부터 일을 구한 친구가 있어’ 하면서 다들 손뼉 치고 칭찬해 주는 거다. ‘그래, 이렇게 꾸준히 가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재학 중에 미국에서 고급 일식당으로는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우라사와’에서도 일했는데.
”주방 보조 일을 한 곳이 캐주얼 레스토랑이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내가 원하는 게 이 방향이 맞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우라사와 직원 중 누가 셰프한테 맞고 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 셰프가 사무라이 같은 일본인인데, 엄청 엄격해서 버티기 힘들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말에 투지가 끓어올라 ‘그럼 내가 해 봐야지’ 생각했다. 처음엔 셰프가 ‘너 같이 규율(discipline) 없는 미국인은 안 받는다’고 거절했는데, 몇 번이고 찾아가 ‘난 한국인이고 군인 출신이다. 규율이 뭔지 안다’고 가까스로 설득했다. 처음 한 달은 월급도 안 받고 바닥 닦는 일부터 시작해 2년간 있었다.”
그러다 다시 프렌치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로 간 이유는 뭔가.
”(그곳 콘셉트에 따라) 머리를 빡빡 깎고 기모노를 입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그 무렵 프렌치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의 총괄 셰프 코리 리(Cory Lee)를 만나게 됐다. 그도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인인데, 내 고민을 얘기하니 그럼 자기 밑으로 오라고, 이런 요리를 만들 수 있으면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스카우트해 줬다. 그러다 코리 리가 (훗날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베누(Benu)’를 오픈할 때 함께 일하자고 해서 따라갔고, 몇 년간 일하다 모로코 레스토랑 ‘아지자(Aziza)’ 총괄 셰프로 옮겼다.”
일식에서 프렌치, 다시 모로코인가?
”베누에서 일할 당시 밤늦게 마치면 모로코 요리를 먹곤 했다. 스파이스 같은 향신료를 좋아하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베누를 나갈 때 사람들이 많이들 말렸다. 이제껏 해 왔던 커리어와 아무런 접점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접점이 있다면, 내가 그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뿐이다. 돌이켜보면 이성보다 마음에 따른 선택을 많이 했는데, 한 번 결정한 건 돌아보지 않고 밀고 나갔다.”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 ‘모수’를 차렸을 때 비로소 지금과 같은 (이노베이티브 한식) 콘셉트로 정착했다. 이유는.
”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 입맛, 생각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결과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맛있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중식당을 했다고 들었다. 유년기 기억과 다양한 경험이 요리에 다 반영되나.
”물론이다. 할머니가 이북 출신이다. 어린 시절에 종종 개성약과를 만드셨는데, 그때는 생강·계피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크고 나니 그 냄새가 너무 좋은 거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찌어찌 레시피를 찾았다. 지금도 후식은 커피와 함께 꼭 개성약과를 낸다. 10대 때 싼값에 사 먹을 수 있는 멕시칸 타코를 자주 먹었는데, 그 기억을 살려 모수 시그니처 메뉴인 ‘전복 타코’를 만들었다. 한식 재료인 전복에 콩을 끓여만든 유바를 튀겨 크리스피한 껍질을 만들고 거기에 (일식에 자주 쓰는) 감태와 시소(차조기)를 곁들인 건데, 나의 감성과 경험, 테크닉이 모두 녹아 있다. ‘모수’라는 이름도 어린 시절 코스모스밭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지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를 오픈한 지 8개월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그런데 2017년 한국으로 왔다. 엄청난 모험 아닌가.
”내가 꿈꾸는 방향대로 사업을 확장하고, 가족(아내와 두 자녀)이 더 안락한 생활을 하기 위해선 (물가가 살인적인 샌프란시스코보다) 서울이 나은 선택지로 보였다. 그간 자문을 했던 CJ제일제당으로부터 투자를 받게 된 것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때도 다들 미쳤다고 했다. 나쁜 선택이라고.”
자신의 요리 아이덴티티가 뭐라고 보나.
”스스로 내 음식에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싱가포르 손님이 개성약과를 먹어보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운 적이 있다. 어느 영국 손님은 튀김을 맛보고 피시앤드칩스가 생각난다고 했다. 고객이 느끼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게 무슨 한식이냐. 전통적인 게 아니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전통’이란 게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가. 전통도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도 세월이 가면 한식의 한 전통이 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어떤 요리를 지향하나.
”아주 단순하게 내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를 만들고 싶다. 내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이건 ‘궁극적인 목표’라기보다는 매일매일 추구하는 목표다.”
오윤희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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