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고명환 “창업 실패해도 경험치는 삶에 큰 힘”
“적게 가져도 나눌 수 있어야 경제적 자유 이룬 것”
“나를 만든 3000여권 책이 가장 큰 자산…토크쇼 맡고 싶어”
죽음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진다. 열심히 살았어도 한 줌 후회 없기란 드문 일. 그도 그랬다. 개그맨 고명환. 아니 지금은 잘나가는 국숫집과 갈빗집 사장이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더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
개그맨으로, 배우로서 잘나가던 때 뜻밖의 교통사고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반추한 지난 삶은 아쉬운 후회로 가득했다. 그리고 든 생각.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살았던 지난 삶이 아닌, 내가 만들어가는 새 삶을 살아야지.’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병실에서 늘 함께했던 책. 그는 이제 연매출 20억원을 올리는 요식업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뤘고,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도 들었다.
그가 요식업계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부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 쓴 신간 ‘이것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출간 40일 만에 10쇄를 찍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바뀐 그의 삶이 궁금했다. ‘독서광’ 고명환이 운영하는 서울 목동의 고깃집에서 그를 만났다.
“길어야 이틀”…시한부 판정이 바꾼 삶
-교통사고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드라마 ‘해신’을 찍고 전남 완도에서 돌아오던 길에 운전하던 매니저가 깜빡 졸면서 시속 190㎞로 앞 트럭을 들이받았다. 뇌출혈에, 뼈도 수백 군데가 부러지고 심장출혈도 컸다. 의사가 ‘길어야 이틀’이라 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회복했다. 삶을 다시 보게 됐다.
사고 ‘덕분’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서고 나니 지금까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 남에 이끌린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덤으로 사는 두 번째 삶은 내 의지대로 살자고 결심했다. 그때 만난 게 책이었다.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가 이제 3000권을 넘어섰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리스트를 만들었다. 수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씩 지워나가니 두 가지가 남았다. 글쓰기와 요리였다. 그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이다.”
‘장사의 신’으로 사는 법
-어떻게 사업의 길로 들어섰나?
“개그맨 생활을 하던 2002년 서울 청담동에서 감자탕집을 냈던 것을 포함해 교통사고 전에만 세 번을 창업했다가 모두 말아먹었다. 사고 후에도 닭가슴살 사업을 시작했는데 후배 개그맨과 사업 아이템이 겹치는 등 연이 닿지 않아 또 접었다. 네 번 망한 거다.
그런데 지금 하는 메밀국수와 고깃집은 확신이 있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찬 자신이었다. 집에서 반대도 있었지만 이미 마음이 서서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요식업에 다시 나선 것은 사실 책을 쓰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기계발서, 그것도 돈과 관련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니 돈도 필요했고, 들려줄 경험도 있어야 했다. 가게보다 출간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가게가 또 실패하더라도 책을 쓰고 강의나 외부활동을 하면 상충할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가게는 잘 되고 있다. 일산 국숫집과 목동 고깃집에서 연매출 20억원 정도 나온다. 내년 3월쯤이면 새 프랜차이즈를 하나 더 낼 거다. 두 곳의 메뉴를 합친 매장이 될 거다.
늘 그랬듯, 겨울엔 대부분 욕지도에서 머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내년 2월까지 욕지도에 머물거다. 이번엔 독서를 주제로 책을 한 권 쓸 생각이다.”
손자병법이 알려준 연매출 20억의 비밀
-4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책만 읽었지, 책이 알려주는 것을 따르지 않았다. 실패의 원인과 새로운 사업의 전략을 손자병법에서 찾았다. 장사도 손님과 경쟁업체와의 전쟁 아닌가. 전쟁에 나서면서 점검해야 하는 다섯 가지로 꼽은 손자의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을 따랐다.
도(道)는 가치이자 철학이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손님을 즐겁게 하자는 가치를 세웠다. 하늘의 때인 천(天)을 알기 위해 트렌드 책을 파며 연구했다. 지구 온난화, 고령화, 인구감소가 파악됐다. 길어지는 여름,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환경, 건강이 이슈가 되는 상황에 맞는 메뉴, 바로 메밀국수였다.”
그의 판단은 특히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을 때 더 빛이 났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정했던 영업시간 덕분에 영업제한 규제에 따른 매출 피해가 없었다.
“지(地)는 목, 입지다. 목도 목이지만, 보행 속도와 차량 속도도 핵심 점검 대상이었다. 가게를 지나는 사람의 속도, 차량 속도에 따라 업종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찾았다. 일산 국숫집과 목동 고깃집은 모두 그렇게 고른 자리다.
앞선 네 번의 실패는 모두 나 혼자 알아서 해보겠다며 저지른 일이었다. 메밀국수를 시작할 땐 달랐다. 내 옆엔 이미 50년 이상 음식 장사를 하셨던 엄마라는 ‘명장(名將)’이 있었다. 누나도 30년 내공이 쌓인 장수고. 내 옆에 관우와 장비가 있었으면서 그걸 몰랐다. 엄마, 누나와 함께 메밀을 배웠다.
장사에도 규율이 있다. 나는 사마천의 사기를 토대로 이윤을 얼마로 할지를 ‘법(法)’으로 세웠다. ‘3분의 1 이상을 가져가면 도적이란 소리를 들으며 끝이 좋지 않고 5분의 1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기의 구절을 따랐다. 면 장사는 특히 많이 남는다. 50% 마진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소신을 손님이 알아주는 거다.”
적어도 나눌 줄 알아야 돈으로부터 자유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떻게 얻나?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두 가지가 있다. 돈을 더 벌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는 상태거나, 돈을 더 갈망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자유를 얻는 거다.
이건 어려운 일일 수도,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가진 게 1만원이 전부라도 그중 1000원을 다른 이에게 나눠 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경제적 자유를 얻은 거다. 대부분 부자가 돼야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경제적 자유가 반드시 자산 크기와 연결되지는 않는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흔들리고 혼돈을 느낀다. 타인에게 마음을 써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돈을 갈구하지 않는 거다. 소유에 집착하면 오히려 마음이 고달파진다. 1억원이 전부인 사람이 10억원을 가지면 고민이 사라지고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0억원을 가지면 또 그 안에서 또다른 혼돈이 생긴다. 돈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은 게 이래서다.
그는 ‘무소유’ 법정스님과 류시화 시인의 일화를 전했다. “류시화 시인이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법정스님에게 주려고 얼마 안 되는 찻잔을 선물했다. 무소유를 실천하신 분이라 받기를 거절했지만 주는 사람 성의도 있고, 또 가격도 얼마 안 된다는 말에 받았다. 그런데 그날부터 스님은 기존 잔에 마실지, 선물 받은 잔에 차를 따를지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작은 찻잔 하나를 갖는 것에도 고민이 생길 수도 있다. 하물며 속세를 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오죽하겠나.”
나쁜 돈, 허망한 돈, 건강한 돈
-돈에도 성격이 있나?
“다 같은 돈이 아니다. 내가 보는 돈은 세 가지다. 먼저 나쁜 돈은 도박이나 사기 등 양심을 팔고, 남은 해치는 대가로 얻은 돈이다. 인간 생명에 유용하지 못한 것과 관련된 돈도 나쁜 돈이다. 그런 돈은 쉽게 벌지만, 쉽게 나가는 특징이 있다. 도박을 보자. 딴 돈으로 좋은 데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돈은 다시 도박판으로 들어간다. 한두 번 딴 돈이 결국 내가 가진 다른 돈까지 데리고 나간다.
뜻하지 않게 쉽게 버는 돈은 대체로 허망하다. 개그맨 시절 보통 행사를 맡으면 200만원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행사 요청이 들어왔다. 고액을 부르면 요청을 거둘 것 같아 1000만원을 불렀다. 그런데 뜻밖에 그 조건을 흔쾌히 받는 거다. 결국 5배나 많은 돈을 받았는데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게 쉽게 썼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해오던 200만원짜리 행사가 갑자기 시들해 보였다. 1000만원짜리 행사 한 번에 ‘고요함’이 깨졌다. 1년에 3억원을 벌었어도 통장에 잔고가 300만원뿐인 것을 나중에 알고서야 깨달았다. 허망한 돈도 있다는 것을.
적지만 땀 흘려 꾸준히 들어오는 돈은 건강한 돈이다. 건강한 돈은 삶에 즐거움을 주고 힘이 된다. 비록 적은 돈이라도 그런 돈은 계획을 세우게 한다. 돈을 불리기도 좋다.”
가장 큰 자산은 3000권 소장서…언젠간 토크쇼 진행 꿈
-본인의 가장 큰 자산은?
“꾸준히 책을 읽다 보니 어느덧 책장을 채운 책이 3000권 정도 된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이다. 독서하면서 책에 메모나 낙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다시 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책에 쓴 낙서를 다시 보는 즐거움도 크다.
인생 후반부엔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가볍게 술 한잔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그려본다.”
그래도 연예인 출신인데 방송을 완전히 접었을까 싶었다. 그는 요즘도 간간이 TV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토크쇼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요즘 최고 주가인 유재석씨를 가끔 만나면 내가 우스갯소리로 ‘누가 길게 가나 봅시다’라고 눙을 치는데, 그가 은퇴하는 날 토크쇼를 시작하고 싶다. 동기부여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책을 통해 계속 내공을 쌓고 싶다.”
연예계 데뷔가 6년 가까이 빠른 개그맨 유재석이 선배지만 둘이 나이가 같아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고 한다.
실패 경험도 힘
-예비 창업자에게 해 줄 조언은?
“창업 중에 요식업이 가장 흔하다. 그런데 제대로 준비해서 창업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회전율 정도는 최소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평일과 주말, 낮 시간대와 저녁 시간대에 가보고 회전율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2년 안에 문 닫는 바닥이 요식업종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에 관해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패해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실패가 주는 경험치도 엄청난 힘이다.”
전태훤 선임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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