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한줄명상]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나요?”
#풍경1
고(故) 정진석(1931~2021) 추기경은
원래 공학도였습니다.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다니다가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는 국민방위군에 소집됐고,
통신장교로 한국전쟁에서 복무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꿈은 처음에 과학자였다. 그런데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들이 과학자에 의해 발명된 것을 보고서 좌절했다. [중앙포토]
그는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였습니다.
서울대 공대에 입학했으니,
그는 한 발짝 성큼,
꿈에 다가가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전장에서 직접 체험한
전장의 참상은 그에게 큰 물음을 던졌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행군하던
전우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본다면
과연 어떨까요.
그는 한국전쟁에서 몇 번이나
그런 참상을 경험했습니다.
부대가 얼어붙은 남한강을 건널 때,
발밑의 얼음이 깨졌습니다.
줄지어 강을 건너던
행렬의 중간이 끊어졌습니다.
그게 정 추기경의 바로 뒤였습니다.
그의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부대원들이 물에 빠졌습니다.
겨울 강,
얼음물에 빠져 아우성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그는 하나도 빠짐없이 목격했습니다.
북한군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내려와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했다. [중앙포토]
#풍경2
서울 명동성당의 집무실에서 마주 앉은
정 추기경은 당시를 회상하며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그걸 봤어요.
그게 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산을 넘어 행군하다가
전우가 지뢰를 밟았습니다.
지뢰는 터졌고,
전우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역시 젊은 정 추기경의 바로 옆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또한 자신일 수 있었습니다.
지뢰를 밟는 사람이 자신일 수 있었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자신일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정말 간발(間髮)의 차이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때 그곳에서 죽은 사람은
나가 아니라 그였다는 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첫 주교인 노기남 대주교의 착좌식에서 복사를 맡은 어린 시절의 정진석 추기경(왼쪽 맨앞줄). [천주교 서울대교구]
“그것도 저일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저에게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때 절감했습니다.
내 생명이 나의 것이 아니구나.”
#풍경3
정 추기경께서
나의 생명이 내 것이 아니더란
대목을 말할 때,
저는 보았습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큼직한 자기 십자가를 말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백 년을 살기도 힘든 우리는
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삶은 영원하고,
죽음은 남의 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삶이 유한하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구나,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삶의 의미를 찾아야겠구나!
이걸 깨닫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한국전쟁 속에서 나의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고 했다. [중앙포토]
사도 바오로(바울)는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
전장에 서 있던 정 추기경도
그랬습니다.
그 역시
날마다 죽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런 죽음 끝에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정 추기경의 고백도
바오로의 고백과 무척 닮았습니다.
“나의 것인 줄만 알았던
내 생명이
나의 것이 아니구나.”
#풍경4
한국전쟁은 끝이 났고,
통신장교 정진석도 제대를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가 다시 서울대로
복학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삶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서울대 복학 대신
가톨릭 신학대에 들어갔습니다.
과학자의 삶이 아니라,
수도자의 삶을 택한 겁니다.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고 있다.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쟁 기간에 항상 기도했습니다.
내 삶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게 저에게는 가장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그가
사제의 길,
수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내 삶의 뜻을,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인간에게
그보다 큰 물음이
과연 있을까요.
그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습니다.
#풍경5
생전에도 사람들은
정 추기경을 향해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적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가톨릭 내부의 진보 진영에서
정치적 공세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글을 쓰는 수도자의 생활을 이어갔다.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간적 간격을 두고
여러 차례 인터뷰하며
가까이서 마주했던
정 추기경은 사실 달랐습니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정치적 잣대에 불과합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날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매년 한 권씩 책을 쓰는
그는 오히려 ‘수도자(修道者)’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정 추기경과의 인터뷰는
매번 각별했습니다.
제가 물음을 던질 때마다
추기경은 자신의 내면,
그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수도자의 눈으로
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의 답은 늘
울림이 있었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저의 귀에는
메아리로 맴돌곤 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신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한번은 제가 물었습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추기경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무슨 대화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구하는
대화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간절히 구하는 대화입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뭘 원하시나,
그걸 묻고 찾는 게 기도입니다.
그럴 때 하느님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기도할 때
왜 내가 원하는 걸
구하지 않고,
하느님이 원하는 걸
구해야 하느냐고 따집니다.
나를 위한 기도이지,
하느님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고
반박합니다.
정진석 추기경은 기도란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을이 지는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위로 새들이 날고 있다. 예수는 새벽에 갈릴리 호수 근처의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곤 했다. [중앙포토]
그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구하면
나의 에고만 강해지기 십상입니다.
반면 하느님이 원하는 걸 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조금씩, 또 조금씩
하느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걸 구하면
나의 마음을 따라가는 거고,
하느님이 원하는 걸 구하면
하느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마음을 따라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
다시 말해 신의 속성을
닮아가게 되겠지요..
그만큼 진리에 가까워지겠지요.
하느님이 지은
최초의 인류는
인간의 속성과 신의 속성이
서로 통했으니까요.
우리는 기도할 때 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걸 찾아야 한느 걸까. [중앙포토]
그걸 다시 회복하고자,
우리는 기도할 때 묻는 겁니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구하시는 것을 말입니다.
〈‘백성호의 한줄명상’은 매주 수요일 연재〉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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