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뇌에 임플란트를 심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하는 기술의 임상 시험이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임플란트는 심장 혈관을 확장하는 기구인 스텐트처럼 가느다란 그물망 모양의 금속이다. 그물망 곳곳에 뇌 신경 신호를 기록할 수 있는 전극들이 붙어 있어 신경 신호를 가슴팍에 이식된 장치를 통해 컴퓨터로 전송한다고 한다. 이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중증 신체 장애인이 생각만으로 스마트폰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뇌 임플란트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일론 머스크의 꿈은 더 원대하다. 물건들을 인터넷에 연결시키는 사물인터넷을 넘어 인체를 인터넷에 연결시키는 것이 그의 회사 뉴럴링크(Neuralink)의 목표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인류 지능을 압도하고 결국 컴퓨터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시대를 대비해, 뇌를 인공지능에 연결해야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스크의 생각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과도 일맥상통한다. 커즈와일은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생명이 시작된 후 세포가 등장하기까지 20억년이 걸렸으나 PC가 등장한 뒤 월드와이드웹이 만들어지는 데는 1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해 2020년대 말엔 컴퓨터 지능이 인간 지능과 같아질 것이며 2040년대 중반에는 인간 지능의 수십억 배 이상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술이 인간을 초월해 인류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되는 시기를 특이점(特異點·singularity)이라고 했다. 일종의 블랙홀이다. 특이점이 오면 뇌 모세혈관에 이식된 수십억 개의 나노봇이 인간 지능을 확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가 자연스레 합쳐지고 유전학·나노기술·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간은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뇌 임플란트 임상 시험이 성공해 상용화가 이뤄진다면 머스크가 구상하는 ‘인체인터넷(Internet of Bodies)’에 한 단계 근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머스크는 커즈와일의 예언을 가장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가 인터넷에 연결돼 수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갖게 된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뤼크 베송 감독 영화 ‘루시’는 주인공이 뇌를 100% 활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커즈와일이 말한 컴퓨터와 연결된 인간의 뇌 상태를 연상시키는 영화다. 주인공은 엄청난 속도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급기야 다른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이 영화는 허무맹랑한 액션 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뇌가 무한 확장하는 미래를 가정한다면 철학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이 사라지며 남긴 “나는 어디에나 있다(I am everywhere)”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만약 특이점이 온다면 3차원에 존재하는 육체는 무의미해지고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는 뜻인 것 같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SF 소설의 거장인 아서 클라크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중세 인류에게 비행 기술이 마술과 다를 게 없었던 것처럼, 현대 인류에게는 마술이자 속임수에 불과한 어떤 것이 미래에 과학 기술로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올해 74세인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는 2040년대 중반까지 생존해 불사(不死)를 이루려고 하지만, 그 전에 죽을 것에 대비해 생명 연장 회사에 냉동인간 신청을 했다고 한다. 어떤 미지의 기술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뇌에 임플란트를 심다 못해 뇌를 통째로 이식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뇌사 상태의 육체에 다른 사람의 뇌를 결합한다면 몸통에 뇌를 이식한 것인가, 뇌에 몸통을 이식한 것인가. 남의 몸에 나의 뇌를 이식해 새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사람은 뇌의 주인인 나인가, 몸의 주인인 그인가.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인류가 수천 년간 탐구해 온 철학을 뿌리째 흔들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국가를 재건한 아버지 세대의 인생을 격동 그 자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주산을 배우고 타자기와 컴퓨터를 거쳐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까지 쓰게 된 우리 세대 역시 만만찮은 속도를 견뎌왔다. 뇌에 임플란트를 심는다는 기사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 세대와 그 이후를 상상해 보지만 요령부득이다. 단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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