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치매로 기억 사라져도 행복감 남아... 뇌는 우리 말 잘 듣는다”

해암도 2022. 6. 12. 09:04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기억의 뇌과학’의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

 

오늘 일 내일 거의 잊어… 인생 대부분은 망각
기억 잃어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기쁨으로 살아
’인지적 비축분’ 풍부하면, 치매 있어도 정상 생활
기억력 손실 막는 최고 신약은 7~9시간 숙면
잊고싶은 기억, 노력하면 수정 삭제도 가능


'기억의 뇌과학'으로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가를 탐구한 리사 제노바(Lisa Genova).

 

전철 타고 신도림동 친구 집에 간다던 팔순의 아버지는 밤늦도록 경기도 어딘가를 배회했다. 애가 타서 전화할 때마다 다른 방향 전철을 갈아타고 점점 멀어져 갔다. 제발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자정이 다 돼서 5시간 만에 기적처럼 돌아온 당신의 손을 붙잡고,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다. 치매였다.

군데군데 하얗게 번진 염증과 가장자리 빈터가 선명한 아버지의 뇌를 보며 나는 순환선과 국철을 갈아타며 돌고 돌던 그 밤의 정처 없음과 공황에 가슴이 미어졌다. 친구들 부모님 중 다섯에 네 명이 치매니, 호들갑 떨 일도 아니었으나, 어느 시점에 ‘딸도 잊을 것’이라는 사실에 맥이 풀렸다.

230만 명이 본 미국의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의 TED 강연은 이렇게 시작한다.

85세 노인들 중에서 둘의 하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다. 당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를 돌보는 보호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리사 제노바가 쓴 책 ‘기억의 뇌과학’은 인간이 기억하고 망각할 때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탐구했다. 문장은 유익하고 정밀하며 관대했다. 예컨대 그는 시간의 힘을 견뎌낼 만큼 의미가 있는 기억만이 살아남는다고 쓰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자신의 할머니를 모티프로 쓴 리사 제노바의 첫 소설 '스틸 앨리스'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줄리앤 무어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치매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구멍 난 배에 물이 차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늦출 수는 있다고 했다.

평소 인생은 기억과 기분과 기대의 하모니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중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기억의 대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리사 제노바는 하버드대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억의 뇌과학’은 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망각의 고통’과 싸우는 여성을 그린 소설과 동명의 영화 ‘스틸 앨리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인터뷰 답신은 ‘아버지의 치매’를 접한 다음 날 도착했다. 모든 답변이 사려 깊고 적절했다.

-‘스틸 앨리스’는 당신 인생에서 어떤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오스카 시상식 날 매튜 맥커너히가 ‘스틸 앨리스’의 줄리앤 무어라고 여우주연상 수상자를 호명하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해요. 세 아이 다음으로, 제가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유산입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요?

“기억은 신경망 형태로 머릿속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입니다. 제 할머니는 2002년에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를 떠올리면 저의 뇌는 시각피질에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청각 피질에 있는 할머니의 웃음소리를, 후각 피질에 있는 할머니의 그린 페퍼 양파볶음 향을 활성화합니다.

MRI 스캐너에 들어간 사람에게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아 말 그대로 ‘뇌를 뒤지는’ 모습이 관찰되죠. 처음에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뇌 여기저기가 활성화돼요. 기억한다는 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야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억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요?

“기억이 없으면 내가 당신과 인터뷰했다는 사실도 내일이면 잊히겠죠. 정보와 경험을 간직할 수 없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평생 낯선 얼굴로 남을 겁니다. 기억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잊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오늘 저녁 퇴근길에 마트에서 화장지를 사 올 수 있어요. 옷을 입고, 양치질하고, 지금처럼 글을 읽고, 테니스를 치고, 운전하는 일에도 기억이 필요합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억을 사용하며, 그 후에도 기억 프로세스는 바쁘게 일합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날들 중 뇌에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보관되는 분량은 대략 어느 정도죠?

“오늘 경험한 대부분을 내일 잊습니다. 1년 동안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날은 10일 내외입니다. 가까운 과거도 기억에 저장되는 분량은 3%가 채 되지 않죠. 결국 인생 대부분을 잊어버린다는 얘기죠.”

우리나라 65세 노인 중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열 명 중 한 명, 이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해 2024년이면 10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고령사회에 이르면서 한국은 점점 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습니다. 어떤 질병입니까?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시냅스에 찌꺼기를 형성하면서 시작되는 신경 변성 질환입니다.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침착되어 급변점에 도달하기까지 15~2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죠. 그 후에는 분자가 연쇄반응(Molecular cascade)을 일으켜 신경섬유 엉킴, 신경염증, 세포 사멸, 그리고 임상 증상을 유발해요.”

-단순 건망증과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알츠하이머병은 해마라는 뇌의 한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해마는 새로운 저장 기억을 형성하는 데 꼭 필요한 구조지요. 그래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같은 이야기나 질문을 반복합니다. 최초 증상은 주로 오늘 있었던 조금 전 일이나, 다른 사람이 몇 분 전에 말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열쇠를 손에 들고서도 찾았다면 건망증입니다. 열쇠를 냉장고에서 발견하고 잠시 동안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의문이 들었다면 아니죠.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면서 60년 전 등굣길 일은 기억해내곤 합니다.”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인가요?

“병이 더 진행되면 전두엽과 전두피질의 신경 회로가 손상돼서 논리적인 생각, 계획, 문제 해결 능력에 장애가 발생합니다. 그다음은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와 변연계가 끈적끈적해져서 슬픔, 분노, 욕구를 절제하는 게 어려워져요.

가장 마음 아픈 단계는 오래된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회로가 망가지는 겁니다. 이 회로에는 모든 정보가 담긴 의미 기억, 개인의 역사가 간직된 일화 기억이 있어요. 저희 할머니도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제가 누구인지 더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병이 소뇌를 침범하는 단계에 이르면 신체 균형과 협응력이 손상되고, 음식을 씹고 삼키거나 호흡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극초기 증상에서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8~10년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순간이 잊히더라도, 그것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억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리사 제노바.

 

-노인들은 기억을 잃는 것보다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퇴행해서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지우는 일을 걱정합니다. 왜 종종 순한 사람조차 치매에 걸리면 가족을 의심하고 성격이 고약해지는 걸까요?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치매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들이라는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종일 내 집에 머물면서 내 통장을 살펴보고 내 음식을 먹는다고 상상하면, 그 사람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마음이 이해가 가죠. 이 남자는 누구지? 내 통장을 갖고 뭘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테니까요.

말했듯이 증상은 끝내 전두피질에서 편도체까지 영향을 미쳐요. 뇌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감정을 더는 제어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아기들의 감정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생각해 보세요. 아기는 전두엽이 편도체를 제어할 만큼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상태죠. 요는 치매 환자들이 성격이 고약해지는 게 아니에요. 침식당한 뇌가 감정 폭발과 제어를 감당하지 못할 뿐이죠.”

-실제 뇌는 치매에 걸렸지만, 일상에서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던 수녀들의 사례가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그 이유는 이 수녀들의 ‘인지적 비축분(Cognitive Reserve)’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시냅스가 더 많았다는 뜻이죠. 정규 교육 수준이 높고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우수하고,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에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인지 예비용량이 더 높습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신경세포 연결이 풍부하죠. 일부 시냅스가 손상된다고 해도 추가분의 백업 신경세포 연결이 많으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기도 합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낱말 퀴즈를 많이 풀고 레드 와인을 마시는 습관은 기억력 유지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요.

“낱말 퀴즈나 레드 와인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낮춘다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낯선 환경을 경험하고 피아노, 외국어, 글쓰기 등의 과제를 배우는 일이 인지적 비축분에 도움을 줍니다. 새로운 신경세포 연결이 생성되면 치매 진단을 받아도 뇌의 기능을 보호할 수 있어요.”

해마는 기억을 하나로 묶는다. 기억을 직조하는 직공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 단위 즉 신경 네트워크는 적절한 자극을 받으면 기억이라는 형태로 경험된다.

 

-부모가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면 자식의 발병 우려는 어느 정도입니까?

“진단사례의 98%를 보면 물려받은 유전자와 생활 방식이 맞물려서 유발됩니다. 생활 방식을 조절하면 발병 우려를 현저하게 낮출 수 있어요. 불량한 수면 습관, 건강하지 않은 식사, 운동 부족, 스트레스가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을 높입니다. 급성 스트레스는 기억을 방해하고 만성 스트레스는 해마를 쪼그라들게 하죠.

반대로 올바른 수면 위생, 건강한 지중해식 식단, 규칙적인 운동, 마음 수련과 요가 수련은 치매 예방에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심장병과 심장마비 위험도 놀라운 수준으로 낮출 수 있어요.”

리사 제노바는 알츠하이머병의 발병가능성을 현저히 낮출 수 있는 신약을 소개했다. 그것은 바로 잠이라는 약이다.

밤에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신경세포는 가장 중요한 청소 임무를 수행한다. 아밀로이드의 처리다. 또한 잠은 새롭게 부호화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저장 버튼을 누른 역할도 한다. 임상적으로 매일 7~9시간 숙면과 함께 20분 정도의 파워 낮잠은 기억력 향상에 획기적인 도움을 준다고 했다.

나아가 잘 기억하려면 불필요한 걸 잊어야 한다. 잘 기억하는 것만큼 잘 잊는 것도 축복이라고.

-주로 어떤 것들이 기억되고 어떤 것들이 사라집니까?

“뇌 활동의 기본 설정값은 부주의입니다. 부주의한 뇌는 멍하니 있고 딴생각하고 지금껏 하던 일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해요. 의식의 배후에는 끊임없이 생각들이 흐르고 있지요.

뇌는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도록 진화했어요.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할지 신경 써서 골라야 합니다. 먹구름에만 초점을 맞추면 햇살이 눈 부신 순간이 와도 알아차리기 힘들어요.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거든요.”

-생애 마지막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 극장은 어떤 장면을 인출해 내나요?

“뇌는 감정을 자극하고 예측을 벗어난 경험을 기가 막히게 가져옵니다. 첫 키스, 대학 졸업식 날, 자녀의 탄생 같은 주요 장면들… 이런 일화 기억의 사건들은 대개 15~30세에 몰려있어요. 첫사랑, 첫 직장 등 첫 경험이 가장 많기 때문이죠. 긍정적인 사람의 기억 극장은 웃음과 경외로 편집돼 있고, 부정적인 사람의 기억 극장은 비극의 이미지로 플레이되겠지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 노인을 연기한 김혜자.

 

-기억과 행복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나쁜 기억을 잊고 싶은 욕망이 큽니다. 부정적 기억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많은 사람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반복 재생하면서 고통을 겪습니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성폭력, 교통사고, 참전 경험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릅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이죠. 원치 않는 기억의 일부분, 특히 경험의 감정적 측면이 활성화되는 걸 막아서 기억이 희미해지게 할 수 있어요.

기억을 재설계할 수도 있어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부분적으로 떠올려서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세 기억을 탈락시키는 거죠. 목표는 사건 당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 온건하고 중화된 버전으로 바꾸는 겁니다. 기억 수정은 주로 숙련된 심리치료사가 진행합니다만, 노력하면 개인도 가능해요. 떠올린 후 바꿔서 다시 저장하거나 삭제 버튼을 누를 수 있어요.”

-뇌에 “잊어버려, 담아두지 마, 흘려보내”라는 명령이 정말 효과가 있나요? 뇌는 우리 말을 잘 듣습니까?

“네. 그런 명령은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훈련이 필요하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뇌는 우리가 집중하는 일을 기억하고 재활성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기억을 재활성화시키는 순간, 그 느낌을 알아차려야 해요. 그리고 인지력을 동원해 뇌에 멈추라고 명령하면 뇌는 그렇게 실행합니다.

명상 수련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는 기술이 있어요. 원치 않는 기억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뇌가 다른 생각을 더는 하지 못하게 제어하죠. 그다음, 부정적인 생각을 더 긍정적인 생각이나 만트라로 바꾸는 연습을 합니다.”

숙면과 명상은 기억력 향상에 일등공신이다.

 

-잊고 싶은 나쁜 기억은 소환하고, 기억하고 싶은 좋은 추억은 잊는 불균형 때문에 오늘의 기분과 내일의 기대가 흐려지곤 합니다. 어떻게 조화를 찾을까요?

“무엇보다 무심코 나쁜 기억을 강화하는 습관을 멀리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행운, 기적 같은 기회를 계속 발굴하고 되뇌어 보세요. 혼자 있을 때라도 큰소리를 내어 감사를 표현하면, 뇌가 사실로 인지해서 기쁨과 만족감을 불러오지요.”

-최고의 언어학자였던 저의 스승은 말년에 글을 쓰려해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괴로워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은 반드시 나빠지나요?

“단어가 혀끝에 맴도는 설단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죠. 뇌의 처리 속도가 느려지니까요. 단서 없이 떠올리는 자유 회상 능력은 떨어져도, 전에 있던 사람과 사건을 떠올리는 재인 기억은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뇌의 처리 속도는 삼십 대부터 떨어지지만, 다행히 나이가 들수록 기억에 장밋빛 필터를 끼울 수 있어요. 좋은 일은 자주 떠올리고 나쁜 일은 잊는 지혜가 생깁니다.

기억과 망각, 뇌와 마음에 관한 다정한 안내서 '기억의 뇌과학'.

 

-첼리스트 요요마가 근육 기억으로 수만 개의 음표를 저장했지만, 택시에 첼로를 두고 내렸다는 일화는 묘한 안도감을 주더군요. 이 에피소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미래 기억은 나중에 해야 할 일에 사용되는 기억입니다. 뇌의 ‘해야 할 일 목록’이라 할 수 있죠. 이 기억은 쉽게 꺼져요. 얼마나 똑똑하든, 일의 경중이 어떠하든 간에, 모든 인간의 미래 계획 기억은 신뢰성이 낮습니다.”

-기억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그냥 외는 것보다 소리 내 묻고 답하면 훨씬 더 잘 기억됩니다. 공간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왜 여기 왔는지 기억이 안 나면 이전 장소로 돌아가세요. 무엇보다 집중하세요. 대화하면서 스마트폰 채팅을 하고 넷플릭스를 보면 뇌가 기억을 만들 수 없어요. 뇌는 의미를 좋아하니, 의미를 부여한 후 충분히 반복하세요.”

-현대인들은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때문에 암기력이 바닥을 친다고 자책하죠. 기억하려고 뇌를 다그치지 않고 검색 기능을 계속 사용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고 기기에 저장한다고 해도 기억력은 약화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지식에 의존하는 대신 저는 무엇이든 검색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검색을 활용하면 좀 더 많은 걸 배우게 되죠. 만약 ‘스틸 앨리스’에 출연한 여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경우, 검색해서 궁금증을 해결하면 뇌가 다른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재의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기억하고 싶은 청년, 더 빨리 기억하고 싶은 중년,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노년에게, 각각 기억과 망각에 유용한 힌트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연령대에 동일한 조언을 드립니다. 밤에 7~9시간 잠을 푹 자고, 뇌 건강에 좋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운동하고, 만성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을 낮춰 주는 명상을 하세요.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은 평생 학습해야 합니다. 과거로 플래시백 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에 머무르는 연습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연습을 하세요.”

"치매를 예방하고 싶으면 오늘 밤 푹 자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85세 이후 우리 모두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혹은 보호자 둘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했어요. 위로가 되는 것은 당신의 할머니 그리고 친구 그렉과의 일화였습니다. 할머니는 모든 가족을 잊었고, 딸조차 자신이 집안에 들인 노숙자로 알았지만, 스스로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느꼈다는 것. 저널리스트였던 그렉은 알파벳을 잊고, 젖은 옷을 입고 올 정도로 모든 일상 기억을 잊었지만, 여전히 유머 감각이 풍부했다는 것. 당신은 이 사실로 무엇을 전하고 싶었습니까?

“손녀이자 친구로서, 그리고 ‘스틸 앨리스’를 쓰기 위한 자료 조사로 알츠하이머 환자 27명을 알아가면서 저는 깨달았어요. 인간의 감정과 유대감은 알츠하이머병이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병의 후기에 접어든 사람도 여전히 사랑, 외로움, 기쁨, 슬픔, 분노, 평온함 등 인간의 모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더군요.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았다고 해도 삶은 계속됩니다. 기억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예민해집니다. 만일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이 아버지께 전해드린 감정은 기억하실 겁니다. 내 친구 그렉의 기억은 엉망이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듯이요.

알고보면 인간은 평범하고 당연한 일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데, 실은 평범하고 당연한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나날을 보냅니다. 정작 인생의 매 순간을 기억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기억은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이러니를 받아들여야 해요. 기억을 소중히 여기되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는 말라는 거죠.”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치매가 걱정된다면 건강하게 먹고 열심히 배우고 푹 자세요. 그러나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은 자신의 기억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겁니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kimjisu@chosunbiz.com   입력202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