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국 불교 정신적 지도자..."깨진 그릇 쳐다본다고 다시 붙나, 그냥 잊어라"

해암도 2022. 5. 4. 08:46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만난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


마음 편안히 내려놓으려면
산처럼 중심 잡을 때는 잡고
구름처럼 자유롭게 생각해야

깨달음은 말로 이룰수 없어
물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려면
본인이 직접 마시는 수밖에

尹 당선인 만나 건넨 조언은
정치보복 그만…악순환일 뿐
외국서 보면 한국 나쁜줄 알아



한국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가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스님은 "삶은 산처럼 중심을 잡되 생각은 흰 구름처럼 흘러가게 놓아두라"고 말했다. [이충우 기자]

 

삼보종찰 경남 양산 통도사에 오르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이 있다. '소나무들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길'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를 거쳐야 한다. 푸르른 아름드리 노송들이 누군가 붓으로 그려 놓은 듯 자연스럽게 늘어서 있는 길이다. 그 길 끝에 통도사가 있고, 언덕을 한참 오르면 서운암이 나온다.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을 며칠 앞둔 지난 2일 한국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性坡) 대종사(83)를 친견했다. 대종사는 차담을 나누고, 포행을 하는 내내 우문현답으로 취재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감회가 어떠신지.

▷연연(年年)이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데 뭐 특별한 소감이 있는가. 단지 이런 바람이 있지. 연등을 법등(法燈)이라고 하잖아. 부처님의 법이 온 세상을 밝혀서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코로나19로 대중들이 고통을 겪었는데 위로의 말씀을 한마디 하신다면.

▷내가 위로한다고 효과가 있겠나. 내가 전지전능한 존재도 아니고. 위로하는 방법은 대중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지 않겠나. 그래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있어. 코로나 치료제보다 더 좋은 약이 잊어버리는 약이야. 잊어버리면 돼.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려야 해. 옛이야기에 이런 게 있어. 어떤 사람이 시루를 사서 짊어지고 가다가 떨어뜨렸어. 시루가 박살이 났는데 그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가는 거라. 지켜보던 사람들이 시루가 깨졌는데 왜 그냥 가냐고 하니까, 그 사람 답이 '시루는 이미 깨졌는데 돌아보면 뭐하냐'고 해. 맞는 말이야. 돌아본다고 깨진 시루가 붙나.

작업실에서 서예 작업을 하고 있는 성파 대종사. 스님은 글씨, 공예, 염색,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 능한 뛰어난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충우 기자]

 

 

―불자들에게 '여래의 덕성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법어를 내리셨는데.

▷법어를 정해 놓고 하는 건 없어. 그때 그때 그냥 나와. 불경에는 청탁이 없어. 불경을 보면 다 좋으니까. (대종사는 이번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부처님은 구세의 덕과 무연대비를 갖추고 있어 중생의 고통이 있을 때는 구세대비로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며 "대비를 베풀수록 구세의 덕화는 더욱 넓어지고 나눌수록 이타적 덕행은 깊어지니, 삼독에 갇혀 자기를 잃지 말고 본래부터 지닌 여래의 덕성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종정에 취임하신 소감은.

▷아이고, 무슨…. 중 노릇이나 올바르게 하면 됐지, 주지니 방장이니 종정 같은 자리는 생각도 못 했어.

―종단을 어떻게 이끄실 생각이신지.

▷종정이 돼서 종단 일에 신경 안 쓰면 안 되는데. 뭘 바꾸겠다는 건 없어. 단지 종단이 안정되게 잘됐으면 좋겠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사람 다 모여 있고, 김씨 이씨 박씨 다 모여 있는 집단이 승가 집단이야. 그러다 보니 화합이 우선일 수밖에 없어.

―외람되지만 묻겠습니다. 왜 출가를 하셨나요.

▷아직도 내가 왜 출가했는지 확실히 모르겠어. 출가 생각은 소년 시절부터 했어. 실행은 그다음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전쟁이 나서 낙동강까지 인민군에 점령됐어. 내가 살던 합천에도 인민군이 들어왔고, 사람 죽는 것도 보고 그랬지. 이웃 마을 학교는 불에 타버렸고,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인민군이 주둔했어. 할 수 없이 서당에 가서 명심보감부터 사서삼경까지 배웠어. 그런데 궁금한 거라. 사람의 마음이 어떨 때 밝고 어떨 때 어두운지, 사람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물어도 아무도 대답을 못 해. 그래서 출가를 했나봐. 문장으로만 뭔가 추구하고 싶지 않았어. 언외유지(言外有智)라는 말이 있는데. 문장 밖에 뜻이 있다는 말이지. 심층적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어. 집을 나와 강원도 쪽 절을 순력하다가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뵙고 스물한 살 가을 사미계를 받았지.

―그래서 진리를 만나셨나요.

▷깨달음은 말로 해서 되는 게 아니야. 깨달음이라는 게 진리가 뭔지 아는 건데, 말로 할 수 없어. 물을 마시는데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는 마신 사람만 알아. 본인이 알아야 하는 거지, 이야기 한다고 아는 건 아니야.

―그럼 깨우침이란 무엇인지요.

▷나는 도를 깨쳤다 안 깨쳤다 이런 말 안 해. 나 역시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에게 지시적이거나 교육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 나부터 모르는데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나. 남을 헤아려 보려면 나부터 측량해야 해.

―대중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말하기 힘든데 질문에 답을 안 하면 기자에게 미안하니까 한 가지 이야기 해줄게. 백운(白雲)이 아무리 왔다가 가도 청산(靑山)은 원래 안 움직여. 흰 구름은 저절로 왔다가 갈 뿐이지. 구름이 온다 해서 산이 구름한테 넘어지나, 구름이 간다고 해서 산이 슬퍼하나. 우리 인간들은 청산과 백운을 다 가지고 있어. 청산은 중심이고 백운은 사유야. 생각이지. 청산과 같은 중심을 잡고 백운과 같은 생각을 하면 돼. 내가 집에선 주인이지만, 나가면 객이잖아. 주인과 객이 따로 없는 거야. 중심을 잡을 때는 잡고, 구름 같은 생각을 해야 할 때는 하고 그러면 되지 뭐.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으신데.

▷출생은 다른 데서 했지만 통도사에서 승려로 다시 태어났어. 여기서 자라고 죽는 거라. 그런데 여기에 살다 보니까 전통문화의 보고에 싸여 있는 거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지. 전통문화가 저절로 온몸에 배인 거지. 배고파 보면 음식이 꿀맛이 되듯, 다른 데 나가 보면 여기 전통문화가 얼마나 보물인지 알게 돼. (통도사는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보유한 불보종찰(佛寶宗刹)이다. 절 전체가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통도사와 함께 부처님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法寶)종찰 해인사, 16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종찰 송광사를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예술 활동을 해오셨는데 그것도 하나의 수행인가요.

▷특별히 수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천지 사방이 다 가르침이지. 마음에 드는 작업을 한 적은 없어. 늘 잘 안 돼서 계단만 한 칸 한 칸 올라갔지. 나는 작업을 두서없이 해.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안 되면 놔뒀다가 다시 하고 그래. 일부러 특별한 작업을 찾아서 특별하게 안 해. 그래도 할 때마다 다른 게 나와. '일일신(日日新)'이라는 말처럼 날마다 새로워.

나는 예술가라기보다 혹글, 혹서, 혹화, 혹선을 했어. 간혹 글 쓰고, 간혹 그림을 그리고, 간혹 참선을 했다는 말이야. (성파 대종사의 예술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의 글씨를 '성파체'로 칭하며 마음과 붓과 종이가 하나 되는 경지를 아는 당대 최고 수준의 서예가라고 평한다. 대종사가 이룬 16만 도자대장경, 옻칠과 천연염색, 민화와 전통 한지 복원, 각종 공예, 전통 옹기 수집과 된장·간장 담그기 등은 우리 전통의 삶과 예술을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린 위대한 구도 행각이다.)

―호국불교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호국불교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야. 고려 항몽 때나 조선 임진왜란 때 불교가 국가의 운명과 함께한 거지. 더 큰 살생을 막기 위해 불교가 나선 거야. 불법을 어겼으니 옳다고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그 당시로는 옳은 거지. 존재를 말살 당하면 안 됐으니까.

―평소 정치에는 관심이 있으신지.

▷정치 이런 데는 관심이 없어. 나는 반장, 동장도 해본 일이 없는데 정치를 어떻게 알겠어. 그저 한 사람의 국민으로 정치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은 있지. 지난번 윤석열 당선인을 만났을때 정치 보복은 악순환이라는 말을 했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을 하면 어떻게 해. 외국인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한국에는 나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할 거 아냐.

―첨단 문명 시대에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종교는 첨단이고 아니고가 없어. 지금의 이 첨단 문명도 시작일 뿐이야. 첨단은 앞으로도 계속 있는 거야. 시간은 늘 현재가 기점이라 지금을 첨단이라 하지만 오늘의 첨단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야. 물질이나 현상에는 변화가 있지만 진리는 변함이 없어. 진리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어. 인간들이 말로 지정할 뿐이지.

―죽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죽음은 죽음이지 뭐야. 사람들은 각기 해석에 따라 다르게 말하겠지만 죽음은 죽음일 뿐이야.

▶▶ 종정 성파 대종사는…

1939년 경남 합천 해인사 인근에서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조봉주(曺鳳周). 성파(性坡)는 법명이고, 법호는 중봉(中峰)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서당에 들어가 유교 경전을 배웠다. 유교를 공부하던 도중 출가를 결심했다.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스승으로 1960년 사미계를, 1970년 구족계를 받았다. 중앙종회 의원, 통도사 주지, 원효학원·영축학원 이사장을 역임했고 2014년 종단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다. 2018년부터는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을 맡아왔다.

허연 문화선임기자(praha@mk.co.kr)   입력20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