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병상 인터뷰
삶의 끝… ‘누구를 도왔나, 얼마나 배웠나’ 남아
마지막 쿼터… 좋았던 시간만 떠올라
세상의 기반은 튼튼한 우정… 숫자는 환상
타인을 위해 내가 잘하는 것에 최선 다해야
손주들에게 쓴 편지, 마지막 저서로 출간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 핸디가 손주들을 위해 쓴 이 자애롭고 ‘공적인’ 서간문을 책으로 읽게 된 건 행운이었다. 내가 ‘황홀’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용서해 주시길.
우리는 복식 호흡을 위해 인류 보편의 지식인 ‘고전’을 읽고, 피부 호흡을 위해 당대의 날 것인 ‘에세이’를 취한다. 탁월한 베스트셀러를 읽으면… 양쪽의 언어를 동시에 섭취한 것처럼 산뜻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찰스 핸디의 책이 그랬다. 그가 쓰는 언어는 활어처럼 펄떡이면서도 심해의 깊은 폐활량이 느껴진다. 질문의 화살촉이 너른 시간의 과녁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신의 공의를 공리적 전통으로 구현한 영국인답게 그는 21통의 편지로 자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어긋난 균형을 맞추고, 생활인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반듯하게 교정해준다.
몇 개의 챕터는 그 타이틀만으로도 깔끔한 선언이다.
‘인간은 관리되어야 하는 인적 자원이 아니다’ ‘부품이 되지 않는 곳에서 일하라’ ‘이제 ‘은퇴’라는 단어를 은퇴시켜라’ ‘셀 수 없는 것이 셀 수 있는 것보다 강하다’.
그는 기술혁명이 일어나도 사람의 지혜는 변하지 않는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아내와 페르시아 유적지를 여행하며, 키루스 대왕의 담대한 관용과 위임이 오늘날 다국적 기업의 표본임을 깨닫는다.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에는 네 명 내외의 친구를 초대해야 발언권이 보장된다는 충고도 곁들이며.
일터의 현자는 ‘워라밸’이라는 조어도 지적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삶과 더 적은 일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일들을 더 적절하게 조합하는 것이라고. 핸디 부부는 노년에 이르렀을 때, 1년을 절반으로 나눠 6개월은 남편이 사진가인 아내의 전시회를 돕고, 6개월은 아내가 남편의 강연 매니저로 일했다.
호기심과 자제력을 갖춘 예술가 아내 덕에, 그는 경이로울 정도로 균형 잡힌 삶을 살았다.
핸디는 다국적 석유 회사의 임원을 지냈고 런던경영대학원에 MBA 과정을 창립하고 가르쳤다. 시대를 꿰뚫는 혜안과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2000년)을 받았다.
세기의 경영사상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90세의 인생 구루(Guru)는 생의 마지막 몇 달을 남겨둔 채로,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아들 스콧 핸디가 아버지의 육성을 정리한 기나긴 녹취록을 보내왔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사랑과 뜨거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침대에 누워 명상하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지금 저는 인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책임도 고통도 느끼지 않고 평화롭게 누워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끝이 이렇게 좋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놀라울 정도로 행복했고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거의 성취했습니다.
얼마 전엔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찰스 핸디 교수 앞’이라고 적힌 편지 한 통도 받았어요. 반송 주소도 서명도 없었죠. 단지 “찰스 핸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만 쓰여 있었어요. 제가 느끼는 건 하나예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는 것.”
-등대지기였던 외조부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생각하십니까?
“아일랜드 전역의 등대를 관리하셨던 외조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그분께 듣고 싶었던 것을 손주들에게 전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바쁘더군요. 운동 시합과 시험 결과에 집중하느라, 제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책을 썼죠. 그 애들이 자기 일을 갖고, 직장 생활을 할 즈음이면 ‘할아버지의 생각’이 궁금해질 테니까요. 쓰다 보면 알게 돼요.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이 무엇인지.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거든요.”
-우리는 비슷한 갑남을녀이면서도 각자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삽니다. 같아서 안심하고 달라서 기대를 품지요. 선생이 보기에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나요?
“우여곡절, 예측불허의 반전, 실수, 놀랍고 짜릿한 성공… 이 모든 게 포진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죠. 같은 사건에도 나와 당신은 완전히 다르게 반응하죠. 그 차이를 헤아리는 게 배움입니다. 그 다름을 충돌 없이 표현하는 상태가 지성이지요.”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인가요?
“인생은 배움의 여정입니다. 코너를 돌면 뭐가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배움이라는 보상이 따르지요.”
-선생이 경험한 행복은 어떤 상태였나요?
“할 일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있고, 기대할 것이 있는 상태입니다. 내 삶의 모토였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단연코 ‘사랑할 사람’이지요. ‘좋은 친구’는 ‘연인’만큼 좋습니다. 어떤 연인은 이기적이라 당신에게 돌려주는 것을 싫어합니다(웃음). 운 좋게도 제 아내 엘리자베스는 저의 최고의 친구였어요. 배움과 위로를 주는 ‘베프’였죠. 아내는 신중했고 적정한 선을 지켰습니다. 저를 비판했지만 동시에 “당신이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라고 일깨웠어요.”
찰스 핸디와 아내 엘리자베스 핸디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서를 세 번 갱신했다. 첫 번째는 그가 쉰 살에 직장을 은퇴하고 독립 강연자가 되었을 때, 아내는 그의 에이전시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아내가 쉰 살에 본격적인 사진작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가 조력자로 나섰다.
부부는 20년간, 6개월을 주기로 번갈아 상대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세 번째, 75살부터 아내가 죽기 전까지 그들은 함께 봉사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아침 식사에 초대해 그들의 시간을 나눠주었다.
-관계의 황금분할을 만드는 비법이 궁금합니다.
“기업이든 인간관계든 양쪽이 다 공정하다고 느껴야 거래가 지속됩니다. 서로가 원하는 걸 얻어야죠. 인생은 위험의 연속이기에, 급격한 코너를 돌 때마다 “걱정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기회를 보자. 웃자”고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 관계는 다 ‘양방향’입니다.
당신이 맞닥뜨린 행과 불행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상대에게, 당신도 합당한 ‘관심’과 ‘염려’를 돌려주세요. 공생에 무임승차는 없습니다. ‘기대치의 균형’은 투명한 계약이죠. 상대가 원할 때, 그들의 삶에 나를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진짜 조언자를 삶에 초대할까요?
“아내와 저는 인생 전반에 걸쳐 두 명의 친구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점심도 함께하며 자주 어울렸죠. 난처한 직장 문제를 의논하고, 서로가 처한 곤경에 조언했어요. 당신을 돕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진짜 친구예요. 그들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구하세요.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의 조언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당신 틀렸어요”라는 아내의 말을 저는 순순히 수용했어요. 혹 당신이 팀원들의 조언자가 되려거든 당신이 그들 편이라는 걸 먼저 납득시키세요. ‘비난이 아니라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진심을. 경험상 직장 상사는 나를 돕기보다 이용하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인간은 관리되어야 하는 자원이 아니라는 말도 충격이었어요. 나는 ‘인적 자원’이 아니라고요.
“사람은 자원이 아닙니다. 일하는 인간은 욕구와 자율성을 지닌 독특한 주체예요. 사물은 관리되어야 하지만, 사람은 격려와 용기로 움직입니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면, 사람은 물건처럼 행동하게 되죠.
단어가 중요해요. 많은 인사 담당자들이 자신을 인적 자원의 관리자(HR)라고 여기는데, 하루빨리 관리자에서 조력자로 인식을 전환하기 바랍니다. 리더십은 적절한 사람을 뽑아 잘 해낼 수 있는 조건과 이해할만한 기준을 제시하고, 성취한 경우 보상하는 행위예요.”
-돈 문제에서는 언제부터 자유로워졌습니까?
“저는 여러 번 직업을 바꿨어요. 석유회사 간부에서 교수로, 프리랜서 작가로. 직업을 바꿀수록 즐거움은 커지는 대신 소득이 줄더군요. 하지만 아내와 저는 만족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소득에 맞게 생활 수준을 조절하는 훈련이 되어있었어요. 물건은 수리하며 오래 사용했고, 부족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돈에 초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라는 거죠.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고, 원치 않는 일을 계속하면, 영혼이 망가집니다.”
-‘각자도생’과 ‘머니러시’의 날들이 길어지다 보니,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일보다 돈이 되는 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하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직업은 일종의 징역형 선고처럼 평생 여러분을 쫓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하지만 일 이상의 존재예요. 내가 석유회사에서 일할 때 경리 부서의 한 젊은 여성 직원이 그러더군요. “언젠가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의 일부인 날이 오면 좋겠어요.” 수년 후 그 여성은 등반대를 이끄는 산악인이 됐어요.
파티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신을 텔레비전 각본가라고 소개했습니다. 한 편도 제작된 적 없지만, 주중에 그 일을 하려고, 일요일엔 생계를 위해 달걀 포장을 한다더군요. ‘일요일의 달걀 포장’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일인 거죠.
인간은 늦더라도 자기가 진정 원하던 일을 찾아가게 돼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맞습니다. ‘타인을 위해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 저도 강연을 잘 마치고 손뼉 치는 사람들과 눈맞춤할 때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꼈죠.”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재능의 황금 씨앗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중, 작게라도 타인을 도울 바를 생각해 보세요. 잘 들어주는 것이든, 책을 쓰는 것이든, 춤을 추는 것이든 상관없어요. 그게 당신만의 아름다운 쓸모예요. 못 찾았다면, 어머니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세요. 그분은 긴 시간 동안 당신을 사랑으로 관찰한 사람이니까요. 다만 아버지에겐 물어보지 마세요. 아버지는 자신을 기준으로 얘기할 거예요(웃음).
여건이 허락되면 친구들도 좋습니다. 책에서 언급했듯이, 홍보 회사 임원으로 재직했던 제 친구는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너무 일찍 은퇴한 것은 아닌지, 홍보 말고 뭘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그에게 말해줬어요. “열 명의 지인들에게 ‘네가 뭘 잘하는지’ 물어봐.”
2주 후 친구는 그의 지인들이 발견해준 20가지 재능 리스트를 가져왔어요. 애정 있는 주변인의 도움으로 자기 재능을 꺼냈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갔어요. 친구들이 당신의 훌륭한 코치가 될 수 있어요. 당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기술의 변화에는 차분히 대처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등잔으로 불을 밝혔고 디젤 엔진으로 우물의 물을 퍼 올렸어요. 저 또한 들불처럼 일어나는 기술 혁명을 목격했지만, 삶의 근원적인 질문은 바뀌지 않더군요. 무엇이 공정한가? 친구는 누구인가? 사랑과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에 대한 답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배웠어요.
통상 새 기술이 일상이 되는 데는 30년이 필요해요. 자율주행차가 그 예죠. 본격적인 AI시대가 되면 많은 인간이 IA(Individual Assistant 인공지능의 개인 보좌관)가 될 거예요. 인간의 역할은 3C-창작가(Creatives), 간병인(Carers), 관리인(Custodians) 으로 국한될 거라고도 합니다.
어떤 범주에 속하든 기술과 실업에 대한 해답은, 다양한 형태의 자기 고용입니다. 노동이 계속되려면 노동의 형태가 달라져야죠. 저는 일찍부터 ‘포트폴리오 라이프’라는 대안을 얘기했어요. 어떤 기술로 남에게 도움을 줄지 미리부터 탐구하고 설계하세요. 보수를 받는 구체적인 일과 무보수지만 유익한 일을 적절히 배치하면서요.”
-피터 드러커는 당신을 ‘천재적인 통찰력을 현실에 구현한 사람’이라고 극찬했지요. 두 사람은 어떤 점이 닮았습니까?
“피터 드러커는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나도 그도 ‘조직’’을 좋아했죠.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안타깝지만 지금 이 말을 하는 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어요. 이제 우크라이나인들도 제 각자, 속한 조직에서 힘을 모아 저항할 것이고, 그것은 강렬한 경험으로 남을 겁니다.”
-당신은 베트남 전을 사망자의 숫자로만 파악했던 미 국방장관 맥나마라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것이 강하다고 강조하면서요. 하지만 요즘처럼 숫자와 데이터가 중요한 시절이 없고, 사람들은 SNS의 ‘좋아요’ 숫자에 일희일비합니다. 당신이 숫자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뭐죠?
“저는 SNS를 하지 않아요. ‘좋아요’ 개수에 신경 쓰지도 않고, 그것으로 제 인생에 점수를 매기지도 않죠. 그러나 저는 오랜 세월, 돈으로 저 자신을 점수 매긴 삶을 살아왔어요. 그건 멍청한 짓이었어요.
숫자에 관해 얘기해 보지요. 책을 쓸 때 저는 ‘하루에 최소 천 개의 단어를 쓰자’라고 목표를 세웠어요. 쓰다 보면 단어 천 개를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형편없는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요. 그럴 땐 단어를 지우고 문장을 수정하는 데 온 정신을 쏟지요. 숫자는 질이 아니라 양을 측정할 뿐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받은 ‘좋아요’가 정말 당신을 좋아한다는 뜻일까요? 하루는 아들이 제게 자랑하더군요. “아버지, 500명의 사람으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어요.” 제가 대답했죠. “아들아. 넌 500개의 컴퓨터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은 거란다. 알고리즘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도록 유도한 거지. 그 숫자는 셀 필요가 없었어. 삶의 진짜 모습이 아니거든.”
-숫자로 셀 수 없으면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늠합니까? 좌표를 모르면 무엇으로 불안을 다스리나요?
“내가 센 단어의 수가 내 문장의 퀄리티를 보증하지 못했어요. 책의 판매 부수도 그 책이 당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말해주지 않죠.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의 추천을 신뢰하듯 나 또한 독자 한 명에게서 온 편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독자)는 숫자가 아니라 온기가 있는 사람이지요.
국방 장관이었던 맥나마라는 숫자만 믿고 전쟁을 계속했고, 베트남전은 통제 불능으로 치달았어요. 숫자와 통계는 쉽게 왜곡되고 조작됩니다. 그러니 컴퓨터를 믿지 말고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보세요.
숫자는 인간 세계 바깥의 것입니다. 컴퓨터가 다스리는 세계죠. 실재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진짜 사람에게 찾아가 당신 작업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누가 당신 편인지 물으십시오. 세상은 등수도 액수도 아닌 튼튼한 우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언제 그걸 깨달았나요?
“저도 점수 매기는 걸 좋아했어요. 아내와 테니스를 칠 때 점수판이 안 보이면 게임이 무의미하다고 했죠. 그렇게 매사 돈의 액수, 경기의 점수에만 집착하자 아내가 화를 냈어요. 내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거죠. 그 숫자들이 게임의 즐거움을 훼손하도록 두면 안 된다고요. 아내 덕분에 조금씩 태도를 수정해 갔어요.”
-숫자를 떠올리면 무엇이 연상됩니까?
“회초리로 매 맞을 때가 생각나요. 어린 시절, 우리가 뭔가 잘못하면 교장 선생님은 회초리로 열다섯 대를 때리셨어요. 저는 숫자가 얼른 멈추기만을 바랬습니다. 아! 그러니 더 이상의 숫자는 필요 없어요. 인생엔 오롯이 좋은 감정만으로 충분합니다. 당신도 저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계산을 멈추고 감정을 보세요. 행복은 계산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경영사상가로서 선생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요?
“경영 사상가로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친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강한 힘이 느껴지는 전성기 시절이나, 지금의 저처럼 움직일 수 없는 마지막 때나. 당신을 찾아오는 친구에게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하세요.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우선하면, 이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이익을 먼저 챙기면 주변 사람들부터 떠날 거예요. 일터에서 신뢰할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자유를 주세요. 놀라운 충성심과 혁신을 보게 될 겁니다. 지금이라도 그런 싹이 보이는 사람을 만나거든, 애정의 끈으로 묶어두세요. 비용이 든다면 지불하세요. ‘정직한 친구’는 최고의 투자처예요.”
-친구가 내 장례식의 추도 연설을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효과가 있나요?
“좋은 기억의 순서를 알 수 있죠. “찰스 핸디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로 시작되겠지요. 어떤 업적을 남겼나보다 손주들과 아이처럼 놀고, 아내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아픈 이웃에게 좋은 친구였다는 점이 떠오를 거예요.
성공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저는 진심으로 조언해요. 살아가는 것의 대부분은 거의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돈과 사회적 지위보다 좋은 친구가 곁에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 친구 입장에서 추도문을 상상하면, 인생은 결국 관계라는 걸 알게 돼요. 좋은 기억과 좋은 기분의 하모니라는 걸.”
-사회 갈등과 펜데믹으로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제가 받은 최고의 선물을 나눌게요. 잠비아의 어느 학교 학생들이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이죠. 가슴팍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어요.
I will do my best at what I’m best at for the benefit of others.
여러분도 ‘타인을 위해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세요!’ 저는 진심으로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
-인생의 마지막 쿼터에 이르러 정말 한 줌의 아쉬움도 없으신가요?
“아쉬움이라니요! 제겐 더 이상의 책임도 지불할 청구서도 없어요. 자녀들에 대한 걱정이나 집, 보험, 그리고 제 일에 대한 염려도 없죠. 오로지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떨까? 꿈 없이 빠져드는 달콤한 숙면 같은 것이라고 기대하면서요.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생의 좋았던 시간만 떠오릅니다. 세상엔 내가 누린 좋았던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아요. 새소리, 봄에 피는 꽃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나무들... 기쁨은 절대 셀 수 없는 것들이죠. 숫자가 없으니 정말로 멋진 기분입니다. 천국이 이런 곳이 아닐까요.”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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