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높이세요!"라는 위험한 소리
면역체계서 중요한 건 균형·조화
퓰리처상 NYT 기자가 취재한 자가면역질환의 모든 것
"면역계 과열로 통제불능 되면 그 어떤 외부 질병보다도 위험"
우아한 방어|맷 릭텔 지음|홍경탁 옮김|북라이프|504쪽|2만원
"면역력을 높이세요!"
여기저기 광고에서 떠들어댄다. 저자는 단언한다. "틀렸다." 면역계에 관한 가장 널리 알려진 오해는 초강력 면역계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진두지휘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앤서니 파우치(이 책에선 '앤서니 포시'라 표기) 미국 알레르기 및 전염병 연구소 소장은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제약회사 광고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웃을 뻔했지요. 무엇보다도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건방진 소리입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만일 면역력을 높이는 데 성공한다면, 나쁜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면역 치료를 통해 암을 치료하여 매우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임상시험에서는 아주 끔찍한 부작용이 나타나거든요. 면역 치료는 암을 억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을 잔뜩 집어넣습니다."
때로 방패가 창이 된다. 면역계가 자기 세포나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이 이 책의 주제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2010년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는 지난해 출간한 이 책에서 말한다. "우리의 면역계는 과열을 조심해야 한다. 마치 통제에서 벗어난 경찰국가처럼, 방치된 면역계는 부지런히 성장하여 그 어떤 외부의 질병보다도 위험해진다." 질병은 자리를 잡고 성장한 다음 자신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면역계를 속인다. 면역계가 전체 방어 체계를 기만하여 질병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미국 인구의 무려 20%, 즉 5000만명이 자가면역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중 75%가 여성이며 류머티즘성 관절염과 낭창, 크론병, 과민대장증후군(IBS)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 자가면역은 미국에서 심혈관 장애와 암 다음으로 많은 질병이다.
면역이 지나치게 강하면 외부의 질병보다 더 위험하다. 면역계가 과열되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은 심혈관 장애와 암 다음으로 많은 질병이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저자의 죽마고우 제이슨도 자가면역 질환자다. 제이슨은 2010년 면역계에 림프종이 생기는 호지킨병 진단을 받았다. 제이슨의 몸은 면역계를 이용해 암을 마치 소중하고 건강한 새 조직인 것처럼 보호하게 했다.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종양과 싸우며 고통받던 제이슨은 2015년 최신 면역 치료제를 사용해 억제된 몸의 면역계를 풀어주는 면역 치료를 받았다. 처음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7㎏에 달했던 종양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병은 곧 재발했고 등뼈가 부러지는 등의 합병증이 제이슨을 덮쳤다. 저자는 "면역 치료로 균형에서 벗어난 몸이 '과잉 보상'을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제이슨이 여생을 신장 투석을 하며 살거나 장기 손상으로 죽을 것이란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그는 세상을 떠난다. 친구의 부고 기사를 쓰면서 저자는 생각한다. "어쨌든 면역 치료 덕분에 제이슨은 1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그가 죽은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이슨, 류머티즘성 관절염 환자인 린다, 루푸스를 앓는 메러디스, HIV에 걸린 밥 등 자가면역 질환자 네 사람의 사례를 치밀하게 취재해 들려주며 저자는 "면역계라는 '우아한 방어'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약은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한 정교한 균형을 유지하게 하려는 관점에서 사용되어야지, 약을 이용해 면역계를 의도적으로 억제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젊은 코로나 환자들의 주요 사망 요인으로 추정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대표적인 예다. 2006년 제약회사 테네게로가 실시한 면역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한 건강한 여섯 명이 여덟 시간 만에 모두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면역계가 활성화돼 면역계에 신호를 보내는 단백질 사이토카인이 급속히 배출되면서 염증 반응 등으로 인체가 급격하게 공격당했기 때문이다.
백신도 성급하게 만들 일이 아니다. 잘못된 조합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대신 죽일 위험을 수반한다. 1930년대 소아마비 백신 초기 테스트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한 어린이 300명이 마비된 사례가 있다. 저자는 말한다. "혁신이 우리의 '우아한 방어'망에 날개를 달아줄 때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험은 우리에게 위험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우리 자신이 면역계를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탄탄한 취재와 유려한 내러티브가 지식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백신·투약 등 역병의 시대, 우리 모두의 고민을 곱씹게 한다. 면역학의 역사를 다룬 부분도 흥미롭다. 친구의 병 때문에 면역학에 천착하게 된 저자는 면역계가 '배신'을 일삼는 이유를 이렇게 결론 내린다. "면역계가 우리를 개별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역계는 우리의 유전형질과 종을 전반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했다. 면역계는 우리가 재생산을 하여 자손을 돌볼 때까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특별한 일을 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치워버리는 더 좋은 일을 한다." 원제 An Elegant Defense.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 입력 2020.05.23
청결의 역습, 미생물과 같이 살아야 더 건강한 집
집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 질병 퇴치하려 세균 몰아낸 후 알 수 없는 병에 더 쉽게 노출
집에 화분을 들여놓거나 김치·치즈·빵 먹으면 도움돼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롭 던 지음|홍주연 옮김|까치|368쪽|1만7000원
오늘날 미국 아이들은 하루의 93%를 집이나 차 안에서 보낸다.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한 호모 인도루스(Homo indoorus·실내 인간)의 삶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생태학자인 저자가 집 생태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집이 건강하지 않으면 그 속에 사는 사람도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집엔 적어도 20만종의 생명체가 우글거린다. 그런데 과학 발달로 100종 내외인 병원균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인류는 살균 강박증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벌레를 죽이고, 소독을 하고, 꽃가루를 없앴다. 멸균은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짐승과 벌레, 세균을 몰아낼수록 우리는 전에 앓지 않던 병에 더 자주 노출되고 있다. 생명 다양성을 허문 대가로 면역 기능이 무너지고, 살충제를 남발하면서 내성을 지닌 괴물을 불러낸 결과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러시아와 핀란드가 분할 점령한 북유럽 카렐리야다. 언어와 혈통이 동일한데도 도시화한 핀란드 쪽 주민들의 천식·비염·습진 발병률이 러시아 쪽 동포의 최고 10배나 된다.
깨끗한 물에 대한 잘못된 갈망도 예상치 못한 질병을 초대한다. 깨끗한 물은 멸균된 물이 아니라 병원체나 독소가 적거나 없는 물이다. 깨끗한 물을 넘어 좋은 물이 되려면 그 안에 다양한 생물종이 살면서 병원균을 잡아먹어야 한다. 살충 성분을 쓰지 않아 작은 갑각류가 종종 발견되는 덴마크 수돗물이 대표적인 좋은 물이다. 미국 상수도에는 질병을 일으키는 미코 박테리아가 대수층에서 끌어올린 우물물보다 두 배나 많다. 수돗물을 쓰는 가정의 샤워 꼭지에 사는 세균의 90%가 이 박테리아다. 저자는 수돗물 오염은 미코 박테리아가 염소 성분에 저항력을 갖게 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실내에 정원을 꾸민 엄마와 아들이 거실에서 화분 분갈이를 하고 있다. 실내 원예는 집의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나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는 야생을 조금만 회복시켜도 된다고 말한다.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무와 꽃을 심을 형편이 안 되면, 아파트 거실에 화분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화분 속 흙엔 우리 가족의 피를 건강하게 지켜줄 토양 미생물이 풍성하다. 알레르기 반응을 줄여주는 감마프로테오박테리아도 그 안에 산다.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타며, 경운기 대신 인간 손으로 씨 뿌리고 소의 힘으로 밭 가는 미국 아미시 젊은이들은 병균에 노출됐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덜 일으킨다. 천식을 유발하는 달걀 단백질을 아미시 아이들 침실에 떠다니는 먼지와 섞어 실험용 쥐에게 뿌렸더니 아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집 안 생태의 균형을 되찾는 손쉬운 방법으로 저자는 발효 음식을 주목한다. 특히 김치의 '손맛'을 꼽는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집마다 김치맛이 다른 이유는 김치를 담그는 손에 사는 미생물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는 미생물의 '집맛'까지 더해져서 '세균종 다양성'을 갖춘 김치가 탄생한다고 찬미한다.
몸에 좋은 미생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양한 인생 덕목을 만난다. 후춧가루를 뿌린 물에서 세균을 찾아내 세균학의 문을 연 17세기 네덜란드 학자 레이우엔훅은 평생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찾아다녔다. 그의 집념에서 소명의식과 헌신의 거룩함을 읽는다. 미국 가정집에 10억 마리나 있다는 징그러운 벌레 알락꼽등이 몸에 기생하는 세균은 맹독성 폐기물인 흑액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든다. 내장 건강을 잃은 이가 남의 대변을 이식받아 소생하고, 쓸모없는 잡균인 줄 알았더니 강력한 항생 효능을 발휘했다. 그러니 매사 섣부르게 예단하지 말고 겸손해지자고 다짐한다. 세상은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고, 발밑의 벌레, 흙 속 세균과도 어울려 공존해야 할 모두의 터전이란 점도 알겠다.
조선일보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입력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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