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바둑은 정신의 수련장이자 안식처 돌 잡는 순간 속세의 모든것 잊어”

해암도 2016. 12. 30. 05:49

유영욱 연세대 음대 교수 

28일 기자와의 대국에서 돌을 쥔 채 고민하고있는 유영욱 교수.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인터뷰 전 가볍게 두자던 바둑이 무려 1시간 반이 지나서야 끝났다. 무엇보다 중앙에서 대마 난전이 벌어지며 서로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러나 계가해 보니 흑 33집 대 백 32집으로 1집 차에 불과했다. 흑으로 두 점을 놓았던 유영욱 연세대 음대 교수(39)의 승리였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 ‘오로’에서 4단이라는 그는 예상보다 ‘펀치’가 강했고 기세가 살아 있는 바둑을 뒀다.  

 그는 10세 때 작품 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1998년 스페인 산탄데르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 베토벤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심사위원단은 “베토벤이 다시 태어나 피아노를 친다면 유영욱처럼 쳤을 것”이라는 찬사를 안겼다.  

 “뉴욕 유학 때 체스를 배우니 재밌더라고요. 바둑은 더 재밌겠다 싶어 독학으로 도전했죠. 그런데 주위에 바둑 둘 사람이 없었어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기원에선 주로 내기 바둑을 둬서 음악 하는 어린 학생과는 잘 둬주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기다렸다 간신히 한 판 두곤 했죠. ‘동냥 바둑’으로 키운 실력이에요.” 

 2009년 그는 각광받던 전문 연주자의 길을 접고 연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귀국했다.  “제가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자칭 ‘르네상스 맨’이에요. 전문 연주자는 그런 생활을 하기 힘들어요. 또 어린 학생들 실력이 느는 걸 보는 게 더 즐거웠고요.” 
 그는 최근 월간바둑 2017년 1월호에 국내 기전이 사라지고 중국에 밀리는 바둑계의 침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기고를 했다.

 “바둑은 인류 정신문화의 뛰어난 유산이에요. 바둑 스폰서에게 홍보 효과를 내세우는 것은 바둑의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클래식 미술 등 문화예술 쪽이나 박물관 분야에서 활용하는 전략을 써야 합니다.” 

 그의 논지는 후원자에게 광고 효과 등을 내세울 게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표현으로 보답하는 방식의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것.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9단 등 유명 기사가 나서 후원자와 교류하며 설득하고, 후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전 유치에만 목을 매지 말고 프로기사 진흥기금을 모으자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10여 년 전 누군가 예일대 음대에 익명으로 1억 달러를 기부해 화제가 됐죠. 음대 학장이 친분이 있던 미디어 기업 회장을 설득한 거죠. 바둑계도 이런 기금을 모아 대국료를 지급한다든지 해서 프로기사 생활을 안정시키면 유능한 인재들이 대번에 몰려올 겁니다.”

 그는 프로기사들을 클래식 작곡가에 비교해 특성을 표현했다. “이창호 박정환 9단은 한 치의 빈틈이 없는 바둑을 둔다는 점에서 바흐를 닮았고요, 이세돌 9단은 자유분방한 리스트와 비슷해요.” 

 그에게 바둑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정신의 수련장이자 안식처”라고 답했다. “바둑을 접하면 모든 속세의 것이 사라집니다. 오직 수읽기와 형세 판단만 남죠. 정말 완벽한 휴식처가 돼요.” 
  
●나의 한수○

‘재능을성급하게단정하지마라’


제자들을 가르칠 때 지금 당장 못한다고 재능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이다. 항상 모든 사람에게 재능이 있다는 가정 아래 다양한 발전 방안을 찾아본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입력 20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