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알파고에 60전 全敗한 인간고수들, AI 이길 방법 없는가

해암도 2017. 1. 10. 09:54

1년새 더 강해진 알파고… 速棋·1대1로는 인간이 못 이겨

최고 멤버로 팀 구성하고 충분한 제한 시간 주면 해볼만

"인간은 이제 평범한 대국 규칙으론 컴퓨터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연말연시 인터넷 괴물에 집단으로 수모를 당한 국내 프로 기사들이 내린 자체 진단이다. 가상공간의 비공식 '바둑 쇼'였지만 한·중·일 초일류들의 '60전 전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괴물의 정체가 1년 전 이세돌을 꺾었던 구글 딥마인드 AI(인공지능) 알파고란 사실에 또 한 번 충격받아야 했다.

하지만 냉정히 보면 인간 쪽의 완패는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번 시리즈는 제한 시간 1분을 다 쓰면 30초 초읽기 3회만으로 끝을 봐야 하는 초속기 방식이었다(65세의 고령 녜웨이핑만 1분에 60초 초읽기 3회). 한큐바둑 하영훈 이사는 "알파고는 모든 판, 모든 수를 7초 만에 두어치웠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세돌은 각자 2시간, 60초 초읽기 3회 조건으로도 5판 중 1승에 그쳤다. 1년 사이 눈부시게 개선된 알파고에 승리는 '식은 죽 먹기'였다는 것.

자신들의 등판에 앞서 동료 기사가 알파고와 대국하는 모습을 함께 관전하고 있는 천야오예(왼쪽)와 멍타이링. 이 바둑은 특별히 중국 바둑TV 스튜디오서 진행됐다.
자신들의 등판에 앞서 동료 기사가 알파고와 대국하는 모습을 함께 관전하고 있는 천야오예(왼쪽)와 멍타이링. 이 바둑은 특별히 중국 바둑TV 스튜디오서 진행됐다. /유튜브

인간은 이제 기계와 어떤 룰로 싸워야 할까. 프로들이 제시한 '알파고에 그나마 버텨볼 만한 규칙' 1호는 충분한 제한 시간이다. 김성룡 9단은 "3시간 이내면 전혀 승산이 없다"는 입장이고. 김영삼 9단과 국가대표 안성준 7단은 각각 5, 4시간을 하한선으로 봤다. 그러나 박영훈 9단은 "지금으로선 이틀 거리 바둑으로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계산 바둑 1인자로 불리는 그는 "계산까지 가기 전 형세가 벌써 기울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1년 만에 '환속'한 알파고는 깊은 수읽기를 바탕 삼아 철저한 선 실리, 후 타개 전법으로 변신했다. 과거 종종 보이던 실수도 거의 사라졌다. 대표팀 목진석 감독은 "유일하게 끝내기 때 가끔 차선의 수를 두지만, 안정적 마무리 방법일 수도 있어 실수로 단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시간에 쫓기며 실수가 빈발했던 프로 기사들 측에서 내놓은 둘째 카드는 '상담 바둑'이다.

상담 바둑이란 쌍방, 또는 어느 한쪽이 2~3명으로 연합 팀을 짜 출전하는 방식이다. 팀플레이가 관건이지만 실수를 예방하고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크다. 넉넉한 제한 시간이 제공된 가운데 최고 멤버로 팀을 꾸려 싸우는 것이 현재 인간에게 가장 유력한 알파고 상대 경기 규칙이라는 데 많은 기사가 공감하고 있다.

흉내 바둑이 유력한 AI 격파법으로 지목되던 때가 있었다. 똑같이 두어가다 상대가 완착을 범하는 순간부터 자기 바둑으로 전환하면 우위에 선다는 게 흉내 바둑 이론이다. 커제(柯潔)가 60번기 중 알파고에 3판을 내리 진 뒤 "비장의 무기를 못 썼다"며 아쉬워했던 무기가 흉내 바둑이란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 중 딱 한 판 나온 흉내 바둑이 실패로 끝나면서 이 전법도 힘을 잃었다. 대만의 강자 저우쥔쉰(周俊勳)이 알파고를 상대로 1착을 천원에 놓고 70수까지 따라 두었지만 완패한 것.

알파고와 인간 고수의 현재 간격은 이미 호선(互先·맞바둑)은 물론 정선(定先)도 넘어서 '선둘(정선과 2점 사이)' 치수(置數)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2점이 멀지 않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국산 싱톈(刑天), 일본산 딥젠고 등도 인간을 추월했거나 막 스쳐 지나가는 중이다. 차디찬 쇳덩이에 불과한 인공지능 숲 속에서 인간 고수들이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입력 : 2017.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