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흙으로 그리는 작가 채성필

해암도 2016. 6. 18. 21:23

채성필은 최근 미술계에서 핫한 이름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흙이라는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얼마 전 해외 경매시장에서 연이어 최고가 기록을 남겼다. 전시회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작가의 경기도 광주 작업실을 찾았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작업에 매진하는 채성필 작가의 이름이 미술계에서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해외 경매시장에서 연이어 거래되며 주목을 받은 것이다. 프랑스 파리 드루오 리슐리의 경매에 출품된 그의 작품 <원시향>이 4만 유로(약 5천2백만원)에 낙찰되면서 최고가 기록을 남겼으며, 이보다 앞선 지난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익명의 땅> 작품이 7만3천8백 달러(약 8천6백만원)에 거래됐다. 뿐만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아랍 왕실 등에서 그의 작품 3백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채성필 작가의 한국 작업실. 햇살이 잘 드는 경기도 광주 작업실은 작년에 마련됐다. 몇 차례 전시를 열어 인연이 있던 영은미술관의 작업실을 사용하다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단다. 컬렉터의 도움도 있었고, 다른 작가를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전시가 있을 때만 한국을 찾기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는 매일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하느라 며칠 동안 말을 안 했었는데 오랜만에 말할 자리가 생겼다며 반갑게 기자 일행을 맞았다.

단순한 소재를 뛰어넘는 흙
작업실에는 <원시향>, <달항아리> 시리즈 등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깔끔하게 놓여 있다. 그동안 영상이나 인쇄물에서 만났던 것보다 훨씬 섬세하고 흡입력이 있다. 모든 오리지널 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의 감동은 매체를 통하는 것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채성필 작가의 작품은 유독 그 갭이 컸다. 흙으로 만들어진 섬세한 터치가 한참 동안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에게 흙은 그림을 그리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제 청소년기와 유년시절을 대표하는 하나의 물질이에요. 외국생활을 오래 하고 있다 보니 고국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고요. 단순한 물감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제 삶을 가져오게 한 하나의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채성필 작가는 시골에서 자랐다. 진도에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살다가 1986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시골 뒷동산에서 뛰어노는 유년시절을 보내던 청소년의 눈에 비친 서울은 먼지와 공사로 가득한 악몽 같은 풍경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 본인도 모르게 자연스레 흙이라는 물질을 만지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흙은 만질수록 제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감당해내기 불가능할 정도로 가능성과 변수를 지니고 있어요. 옛말에 개울만 건너도 흙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흙은 가는 곳마다 색깔, 점성, 냄새가 달라요. 보이는 색과 섞여 있는 색이 다르고, 프랑스처럼 석회질이 많아서 젖어 있는 색과 말라 있는 색이 달라요.”

프랑스에서 작업할 때면 한국의 흙을 받아서 작업한다. 특별히 좋아하는 흙은 전남 고창, 해남 지역의 흙이다. 특별한 흙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지역의 흙이 색감이나 점성이 좋다. 흙 기다리는 날은 마치 어머니를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해외 컬렉터들이 먼저 관심
“작가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까요. 가끔 전시장에 나가면, 문득 제 그림을 좋게 아껴주는 분들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제가 옆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작품 이야기를 나누실 때, 들으면 재미있어요.”

유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첫 개인전을 열었던 때가 2004년, 그때 그의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 됐다. 유럽의 컬렉터들은 그의 작업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한 컬렉터의 집에 피카소, 샤갈의 작품과 함께 본인의 작품이 걸린 것을 보고 아티스트로서 벅찬 행복을 느낀 경험도 있고, 젊은 여성 컬렉터가 작품 구입을 위해서 자동차를 팔았던 사연 역시 그를 감동하게 한 에피소드다.

“외국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마인드는 확실히 국내와 다른 것 같아요. 작가로서 행복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국내 컬렉터들 사이에서도 그의 작품은 인기가 많다. 배용준, 유호정, 김남주 등 그의 작품을 소장한 연예인도 꽤 된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다. 살다 보면 기분 좋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고, 우울하고 슬플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그 감정 그대로 그림을 그리라는 은사 선생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어서다. 화판과 연애하듯 작업을 하라는 어린 시절 들었던 한 마디 말이, 그를 꾸준한 작업을 하는 작가로 이끌었다. 

“저는 그림을 안 그리고 있을 때 오히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막상 그림 작업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작업이라는 행위를 시작하기 전에 내게 채워진 어떤 것들이 작업에 대한 모든 것들이고, 붓을 들었을 때는 그저 담아내는 시간이에요. 어떻게 보면 실제 작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그림을 안 그리는 시간이에요. 패러독스라는 이야기죠.”

채성필 작가는 작가의 길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다가 결국에는 못 가고 마무리하는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고 있느냐,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안 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그림을 모두 완성하고 그것을 바라볼 때 행복함을 느낄 뿐이다. 그는 세계적인 거장 고흐의 무덤이 있는 오베르 지역에 살고 있다. 아내, 아들과 함께 작업실을 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채성필 작가는 9월 오페라 갤러리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 여름에 프랑스에 갔다가 전시에 맞춰서 다시 들어올 예정이다.  본인의 길을 열심히 걸은 작가의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면 날짜를 기록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