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신비의 영역 중앙 두터움, 알파고는 계산했다

해암도 2016. 3. 1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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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팀원들이 10일 대국이 끝난 뒤 열린 이세돌 9단의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알파고가 5000년간 이어져 온 바둑 원리를 근본부터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 핵심은 중앙 공략이다. 일찍이 인간이 ‘두터움’이라 명명하며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던 공간을 알파고는 마침내 정밀한 계산력으로 정복해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보인 알파고
행마?포석 등 책에 없는 수 구사
5000년 바둑의 정석 뒤집어


2국은 1국과 달랐다. 대국 내내 이세돌 9단은 침착하고 유연하며 때론 과감했다. 별다른 실착도 없었다. 오히려 알파고가 무리수와 엉뚱수를 연발했다. 막판 바꿔치기 대목은 대형 착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였다. 인공지능의 문법은 달랐다.

중원 운영력에서 알파고는 월등했다. 초·중반 알파고가 우변에 37을 두었을 때, 관전실은 웅성거렸다. 이희성 9단은 “책엔 없는 수”라고 했다. 알파고가 5선에서 어깨를 짚었기 때문이다.

통상 바둑에서 3선은 실리선, 4선은 세력선이라 불린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4선에 집을 짓게끔 하는 건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 알파고가 5선에 돌을 두면서 오히려 이 9단의 4선 집짓기를 허용한 꼴이었다. 홍민표 9단은 “연수생 시절에 이런 수를 구사했다면 당장 혼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기존 상식으론 설명할 수 없는 수를 알파고는 이후에도 빈번하게 구사했다. 중반 형세의 불리함을 감지한 이 9단이 상변에 과감하게 침투했을 때는 이에 대응하지 않고 무심한 듯 좌변을 착수했다. 초·중반 패석에 가까운 돌들을 굳이 살려내 중앙 쪽으로 끌고 갈 땐 아마추어처럼 보였다.

고수의 트레이드 마크인 ‘뒷맛’(국면을 결정짓지 않고 여운을 두어 후일을 도모하는 것)도 없었다. 때론 자충수도 서슴없었다. 부분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승전보를 올린 건 늘 이 9단이었지만 안개가 걷힌 후 국면을 따져보면 균형을 이루거나 미세하나마 알파고의 우세였다. 귀신에 홀린 듯했다.

이에 대해 김성룡 9단은 “알파고는 중앙의 두터움을 계산할 줄 아는 것 같다”고 평했다. 5000년 바둑사(史)에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란 귀-변-중앙 순으로 돌을 놓는다는 점이다. 그 순서대로 집을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 부분은 대개 감각에만 의존하기에 귀와 변이 다 정리된 뒤 두어지는, 일종의 공동구역이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초반부터 스스럼없이 중앙 부분을 착점하고는 어느샌가 후반엔 이를 서서히 집으로 탈바꿈시켜 나갔다. 어디 하나 쓸모없는 돌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설계도를 그려놓고는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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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는 “프로기사도 중앙에 두는 것을 주저하는 건 자신이 놓는 수가 얼마인지, 어떤 값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두텁다고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를 다 수치화할 수 있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바둑만의 전유물처럼 존재해 왔던 기세·승부호흡·판단력 등 인간의 직관력을 알파고가 수학적 능력으로 무너뜨리는 순간이었다. 그러기에 인간의 바둑으론 이해할 수 없는 변칙수가 나오는 것이다. 행마·포석·수순 등 인간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아온 바둑의 방식 역시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지 모른다. 김효정 2단은 “알파고의 바둑은 기존 관념으론 설명이 안 된다.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6.03.11




“알파고, 이젠 인간이 도전해야 할 ‘바둑의 神’으로”

[인공지능, 겁없는 진화]프로기사 10명이 본 ‘알파고 기력’

씁쓸한 복기 이세돌 9단(오른쪽)이 대국을 마친 뒤 동료인 홍민표 9단 등과 함께 복기를 하고 있다. 보통 복기는 대국 상대와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알파고와는 할 수 없다. 한국기원 제공
한때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던 대만 린하이펑(林海峰) 9단은 1970년대 그의 전성기 시절 “바둑의 신(神)과 바둑을 둔다면 석 점 정도는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세계 정상급 프로 기사들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1, 2국 대결에서 잇달아 승리하자 “알파고가 사실상 바둑의 신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0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검토실에서 만난 바둑 관계자들은 2국을 지켜보며 “대국 결과가 충격적이다” “불과 5개월 만에 달라진 알파고의 기력 변화가 무섭다”며 입을 모았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도전했지만 이번 대국 이후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알파고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날 취재한 프로 기사 10명 또한 대체로 “알파고의 실력이 이미 세계 최정상”이라며 “지금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사실상 바둑의 신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동윤 9단은 “1국 때는 다소 허술하다고 판단했는데 2국에서 중후반부는 알파고가 대국을 이끌어 갔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가 대국 초반부까지 유리하게 끌고 갈 프로그래밍을 탑재하게 된다면 인간이 알파고를 공략할 틈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한승 9단은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의 대결 때만 해도 알파고가 이 9단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선보인 수준은 놀랍다”며 “최고수로 평가받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석 9단은 “바둑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이 바둑에서 경지에 이르기는 힘들지만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향후 대국에 대해서도 알파고의 ‘완승’에 무게를 실었다. 2국까지 본 기사들은 대체로 ‘끝났다’는 반응이다. 

박정상 최철한 9단을 뺀 8명 모두 알파고의 손을 들어줬다. 박승철 8단은 “사실상 진검승부를 벌인 2국에서도 알파고에 패배한 만큼 이 9단이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영훈 9단도 “이날까지 패배해 심리적으로도 수세에 몰린 만큼 이세돌 9단의 완패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박정상 9단은 “알파고가 생각보다 강한 기량을 보이고 있어 ‘경외심’이 생기기도 한다”며 “그래도 나머지 대국은 이 9단이 가져가길 바란다”는 희망 섞인 응원을 했다.

알파고와 대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기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현욱 8단은 “이 9단이 경기 후 혼자 쓸쓸히 복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컴퓨터와의 대결은 외로운 싸움이라는 걸 느꼈다”며 “(인간) 고수라면 상대하고 싶겠지만 알파고와의 대결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머지 기사들은 모두 승부사답게 기회가 온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혜연 9단은 “알파고가 판후이 2단과 대결 이후 바로 세계 최강과 대결해 중간이 없어진 듯한 아쉬움이 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목진석 9단은 “겪어보지 않으면 실력을 알 수 없다”며 “강한 상대라도 겨뤄보고 싶고 (진다고 해도) 한 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승부사들에게 알파고는 이미 도전자가 아니라 도전해야 할 바둑의 신으로 바뀌고 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입력 2016-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