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우리에게 매우 ‘종교적인’ 모습으로 다가 온다.
불교나 기독교에서는 세속을 포기하고 뭔가 더 큰 것, 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세상을 등진다. 결혼을 ‘포기’하고 머리를 깎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미움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불교는 성불(成佛)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 그 어떤 집착도 남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반대로 세속의 세상은 포기하지 않는 게 최선인 것으로 홍보한다. 책방에 가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성취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기계발서가 주류다. ‘포기하라’는 비주류다.
발명왕 에디슨은 다음과 같이 그런 ‘포기불가론’을 아주 잘 요약한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포기하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번 더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면 죽는다’는 관념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중독 때문에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외침을 포함해 모든 포기권고안은 세상물정 모르는 뭔가 순진한, 아니면 뭔가 검은 꼼수가 있는 술책의 산물로 평가되기 쉽다.
물론 포기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또 좋은 포기, 나쁜 포기가 있을 것이다. 고지가 저기인데 지금 여기서 포기하는 것은 나쁜 포기, 불필요한 포기일 것이다. 또 사람마다 체험의 세계가 다르니, 포기해서 낭패 본 경우, 포기해서 더 좋게 된 경우 등··· 개인의 삶과 포기의 만남은 아주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기자의 경우 토플(TOEFL) 시험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포기 체험을 했다. 리스닝에서 문제를 놓치면 그 문제는 깨끗이 포기하고 다음 문제를 푸는 게 이익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못들은 문제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집착하다 보면 다음 문제들까지 주르륵 틀렸다.
포기 안 하고 못하는 게 포기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종교는 포기를 가르치지만 성직자들마저도 세상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속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문제, 재산문제로 매스컴을 타는 경우도 있다.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포기가 답인 경우가 많다. 북한은 핵을 포기해야 북미수교나 평화협정, 투자 같은 선물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독도를 포기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독도를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독도 망언을 일삼는 일본이 우리의 민족주의적 증오심을 자극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한류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독도를 포기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형제국’처럼 지내며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를 위해 협업할 수 있지 않을까.
포기로 성공한 선례들이 많다.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한 결과 G2가 됐다.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강대국이 됐다. 베트남을 포기한 미국은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냉전에서 승리했다. 지나친 음주·흡연, 음식 과다 섭취를 포기하면 건강이 좋아진다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포기의 유형은 ‘기득권 포기’와 관련된 것이다. 뉴스 사이트에서 ‘새누리 기득권 포기’ ‘새정치민주연합 기득권 포기’ ‘불교 기득권 포기’ ‘기독교 기득권 포기’를 검색해보면 정치권이나 종교계 문제의 핵심은 ‘기득권 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포기 당한다. 포기하면 살고 포기하지 않으면 죽는다. ‘기득권 포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당이나 종교는 결국 외면을 당하게 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주권이나 민주주의의 가치, 신앙 경우처럼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구조적으로 포기가 난감한 상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소하다. 투입된 노력과 시간을 아까워하는 ‘본전’ 생각, ‘포기는 나쁘다’는 문화 환경, 자존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앞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앞으로 더 들어가야 할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는다.
‘포기하면 죽는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야 산다’는 이미 충분히 실천해봤다. 그 결과는
사회적·개인적 정체와 퇴보다. 이제는 ‘포기=성공’이라는 등식이 맞는 것은 아닌지 시도해봐야 할 때다. ‘포기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성공적인
포기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한 성공 사례는 결국 ‘지도자의 지도력’에서 나온다.
스스로 포기할 줄 알고, 남이 포기하도록 잘 설득하는 지도자가 유능한 지도자다.
입력 2015-05-24

현 중앙일보 심의실장 겸 논설위원, 외교통상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초빙교수ㅡ전 한경대 겸임교수, TOEIC 위원회 테스트개발실 부장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 편집장English Netzine(시사영어연구) 편집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스탠퍼드대 정치학박사, 중남미학석사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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