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균 사장/조선일보DB
하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는 상황이 급속하게 달라졌습니다. 기대했던 ‘갤럭시S5’가 터져주지 않으면서 스마트폰 실적이 빠른 속도로 나빠졌습니다. 결국 작년 연말에는 그가 휴대폰 사업부 사장에서 교체될 것이란 소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까지도 “신 사장이 물러나고 휴대폰 사업을 윤부근 사장이 맡을 것”이라고 보도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작년 연말 삼성 그룹에선 대대적 문책 인사가 있었지만, 신 사장은 건재했습니다. 그는 올해도 이상 없이 삼성의 휴대폰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삼성은 신 사장에 대해 “삼성전자가 휴대폰 사업에서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서는데 많은 기여를 한 분”이라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약간 곁가지 얘기입니다만, 외국 언론이 한국 특정 기업의 실정을 자세히 아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마찬가지로 한국 기자가 미국 기업 상황을 정확히 알기도 어렵습니다. 언어 소통의 문제도 있고, 또 외국 기자의 경우 기업들만 취재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정치·사회·문화 등 여러 영역을 혼자서 동시에 커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다고 한국 기자들에게도 철통 보안을 추구하는 삼성전자가 외국 기자들에게 최고 경영진 인사 같은 극비 사항을 선물로 안겨주지도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는 결국 소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쨌든 업계 사람들이 신 사장의 건재에 많이들 놀라기는 했습니다. 평소 냉혹한 신상필벌 원칙을 강조하던 삼성이, 또 작년 말 인사에서 그 원칙을 냉혹하게 보여줬던 삼성이 신 사장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비쳐졌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놓고 여러 관측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 사장이 이전에 걸어왔던 길을 살펴보는 것이 해석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부터 최근까지 단속적으로 모두 7년 간 삼성전자를 취재해왔던 경험으로 보자면, 사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포함해서 신 사장은 이미 두 번이나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위기들을 이겨낸 저력이 지난해 그 살벌했던 인사 판에서 그의 서바이벌에 도움을 준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첫번째 위기는 2007년 초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이끄는 수장(首長)이 당시 이기태 사장에서 지금의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당시 사장)으로 바뀌었을 때입니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일반 휴대폰 시장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삼성 휴대폰 사업은 당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이리저리 팔려다니다 실체가 없어진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막강했던 미국 모토로라 등의 공격이 거셌습니다. 그로 인해 삼성 휴대폰의 2006년 판매량이 급격히 떨어졌던 것입니다.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전격적으로 휴대폰 사업부장 교체 결정을 내렸는데, 그 발표를 들은 업계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시절 삼성 휴대폰 사업에서 이기태 사장의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워낙에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용단을 내렸고 그 자리에 삼성 TV를 세계 1위로 올려 놓은 최지성 당시 사장(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선 최지성 사장은 압도적인 추진력과 판단력을 발휘, 모토로라를 멀찌감치 따돌리는 것은 물론 그 당시 업계 1위이자 절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핀란드의 노키아까지 따라 잡으며 세계 휴대폰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한데 여기서 굳이 8년 전 얘기를 꺼내는 것은, 오늘의 주인공 신종균 사장이 바로 그 시절 이기태 사장 아래서 휴대폰 개발을 총 책임졌던 개발실장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들 아시듯 기업에서 사장이 바뀌면 주요 보직 임원들도 덩달아 교체되는 피바람이 붑니다. 새로운 사장 입장에서는 자기가 실력을 인정하거나 취향에 맞는 사람들로 새 임원진을 꾸리고 싶을 테고, 또 회사 입장에서도 실적 부진으로 사장을 바꾸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그 밑에 있던 임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 당시에도 사장이 바뀌면서 많은 임원들이 옷을 벗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기태 사장을 보좌하면서 휴대폰 개발을 책임졌던 신 사장(당시 개발실장)에게도 그렇게 화살이 겨냥되는가 싶었습니다.
한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 사장은 신 사장에게 계속 휴대폰 개발실장을 맡겼습니다. 의외의 신 사장 중용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당시 최 사장이 휴대폰 사업부 부임 직후 휴대폰 사업부에 대한 회사의 감사(삼성에서는 ‘경영진단’이라고 표현합니다)를 자청할 정도로 이전까지의 휴대폰 사업부 분위기를 일신하려고 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최 사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외부로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신 사장의 전문성 외에 우직함과 성실함이 높이 평가됐던 것 아닌가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와 같이 일을 해본 삼성전자 인사들에 따르면, 인하공전과 광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신 사장은 말 그대로 엔지니어라고 합니다. 본래 곁눈질 안 하는 성격이었던데다 임원이 되고 나서도 정치색을 띄지 않고 오로지 제품 개발에만 매진했다는 것이지요. 몇 년 전 신 사장이 사보에 게재했던 내용을 보면 그는 부장 시절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주말에 쉬는 날 사무실이 있는 수원 공장(지금의 ‘삼성 디지털시티’)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것을 가장 큰 취미로 여겼다고 합니다.
아무튼 신 사장은 최 사장의 중용에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성적으로 보답을 합니다. 당시 최지성 사장이 휴대폰 사업부를 맡은 이후 임원들에게 ‘노키아를 잡자’라는 말을 했는데, 나중에 이 말이 외부에 알려지자 업계 사람들은 비웃으며 농담거리로 삼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삼성전자의 연간 휴대폰 판매대수가 8000만대였는데, 그때 노키아는 한 해에 4억대의 휴대폰을 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 실장과 신 사장은 투혼을 발휘, 결국 2012년 스마트폰 부문서 노키아를 제치고 1위, 2013년에는 모든 휴대폰 부문 통틀어서 노키아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노키아는 그후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신제품을 발표하고 있는 신종균 사장./조선일보DB
하지만 신 사장은 이 위기에서 다시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뒤늦게 걸린 발동이지만 무서운 속도, 믿기지 않을 괴력으로 신제품을 개발해 냈습니다. 현재 갤럭시S5까지 나와있는 ‘갤럭시S’시리즈가 그렇게 해서 탄생됐습니다. 물론 많은 직원들의 헌신적 노력도 뒤따랐습니다. 2010년 그렇게 공고할 것 같기만 하던 애플의 스마트폰 시장은 2011년 하반기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삼성에 정상의 자리를 내주게 됐습니다.
그러나 2014년 들어 애플은 다시 더욱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왔고, 최근에는 그저 변방업체로만 여겼던 중국업체들까지 첨단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면서 삼성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사업에서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걸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는 일부 경영학자들과는 달리 사업 현장은 말 그대로 한 순간 한 순간이 피 말리는 전투라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읍니다. 때문에 삼성이 신 사장을 계속 중용키로 한 것도, 과거 그의 공을 높이 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가 숱한 산전수전을 겪으며 맞닥뜨린 위기들을 스스로 돌파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신 사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이번 위기도 멋지게 탈출한다면, 세 번이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화를 쓰게 되는 셈이지만, 실제 여지껏 그런 기업인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 도전은 성실함이나 투혼 같은 이전의 가치와는 다른 새로운 경쟁력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바로 포화가 될 대로 된 스마트폰 시장의 대체 수요를 일으킬 수 있는 혁신적 신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답은 오로지 열심히 해서만은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 고민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 말 기사회생한 그가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