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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격차는 공산주의 때문이 아니다

해암도 2026. 9. 20. 20:54

 

잡다한 사회과학 책에서 오래 기억에 남은 한 문장을 다시 꺼내 읽고, 그 문장이 던지는 질문을 따라 함께 삶과 세상을 사색하고 성찰하려는 연재입니다.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발목을 잡는 착취적 정치 제도를 기반으로 착취적 경제 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제도의 선택, 즉 제도의 정치가 국가의 성패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는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지(실패하는지) 그 원인을 설명하려는 책이다. 저자는 MIT 경제학과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제임스 로빈슨 교수. 2012년 출간했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나 문화, 민족성이 아니라 ‘제도(institutions)’라는 게 핵심 주장이다. 애스모글루는 MIT 경영대학원 사이먼 존슨 교수와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라는 책도 썼는데, 여기선 기술 발전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간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세 학자는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같이 받기도 했다.

 

☞애스모글루는 지난 2014년에 조선일보 WEEKLY BIZ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北美 번영, 南美 쇠락… 무엇이 운명 갈랐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국가의 제도를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s)’와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s)’라는 두 유형으로 나눈다.

포용적 제도는 재산권 보호, 법치, 공정한 경쟁, 정치 참여가 보장되는 체제이며,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창의성이 보상되고, 기업가 정신과 혁신이 촉진되기 때문에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장기 번영이 가능해진다.

반면 착취적 제도는 정치·경제 권력이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사회의 부와 기회가 특정 집단에 독점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노력해도 성과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와 혁신이 위축되고 경제 발전도 정체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역사 사례를 제시하는데, 로마 제국의 제도 변화, 식민지 시대 라틴아메리카와 북미의 다른 발전 경로, 산업혁명기 영국, 그리고 남북한 경제 격차 등을 비교한다.

 

애스모글루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한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걸은 연원은 분명하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양측 모두 중앙 집권화 역사를 통해 성장이 가능했지만, 원래 그런 권력이란 좋게도 쓰이지만 나쁘게도 쓰이는 법이다.

 

남한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수출과 혁신을 장려하고 공공재를 제공했지만,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해 권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한국은 재능과 혁신, 창의성에 보답하는 경제를 수립한 덕분에 제조업 부문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남한은 ‘경제 기적’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경제 재앙’을 초래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모두 안다고 할 수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어마어마한 제도적 차이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죄다 공산주의 체제를 따르는 것은 아니며, 언뜻 보기와 달리 북한이 가난한 것도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지리나 문화가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분배되고 제도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느냐이다.”

“착취적 제도가 지속되는 이유는 엘리트가 그것으로 이익을 얻기 때문이며 강력한 엘리트는 자신의 이익을 위협하는 변화를 막을 수 있다.”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 제도다.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상호작용이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우리가 제시하는 세계 불평등 이론의 골자다.”

 

반론도 적지 않다. 경제 발전을 설명할 때 지리와 자연환경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등은 열대 기후, 질병 환경, 농업 생산성, 해안 접근성 같은 요소가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또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한 원인을 영국의 포용적 제도로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역사학자들은 산업혁명이 단순히 정치 제도 결과가 아니라 석탄과 같은 자원 조건, 대서양 무역과 식민지 시장, 과학 혁명과 기술 축적, 금융 혁신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한 복합적 역사 과정이라고 반박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포용적 제도가 약한 국가가 성장하기도 하고, 권력이 집중된 국가가 산업화를 이루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 논쟁 사례는 중국이다. 저자들은 중국 정치 체제가 권력이 집중된 착취적 정치 제도에 가깝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적 혁신 기반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성장은 기술 모방과 투자 확대 중심의 ‘따라잡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창의적 파괴가 필요한 혁신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제도적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봤지만, 책이 출간된 2012년 이후에도 중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rchive)에서 이 책 영문 원서를 PDF로 내려받을 수 있다.

대런 아세모글루 미국 MIT 교수. /터키과학아카데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