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영의 '내 몸속 시계' 되돌리는 법]
'정상 수치' 뒤에서도 암세포는 활동
몸은 강처럼 흐른다, 그걸 관찰하라

사진=조선디자인랩·Midjourney
“혈액검사 결과 괜찮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병원에서 자주 오가는 대화다. 수치가 정상이라면 안심하고, 이상이 있다면 걱정한다. 그러나 이 익숙한 반응 뒤에는 놓치기 쉬운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혈액검사는 정확하고 유용한 도구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몸의 가장 이른 변화를 잡아내는 신호등은 아니다. 대부분의 혈액 수치는 장기 기능이 꽤 떨어진 뒤에야 변화한다. 혈액검사가 나쁘면 정말 어떤 문제적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지만, 정상이라고 그 ‘나쁜’ 알고리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노년내과 전문의 장일영 교수가 오늘은 무시하면 안되는 '몸의 신호'에 대해 설명합니다. 병원에서 받은 수치가 정상범위라고 안심하면 안된다는 지적입니다. 조선멤버십에 가입하시면 더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2024년 4월, 세계적인 의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는 이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영국 UK 바이오뱅크 자료를 기반으로, 4만4000여 명 혈액 단백질을 분석하고 12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연구진은 107개 단백질 수치가 암 진단 7년 전부터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총 618개 단백질과 암 연관성이 밝혀졌고, 그중 상당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질병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는 우리가 “수치가 정상이라 다행이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 몸속에서는 이미 병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가 매년 받는 건강검진은 완벽한 예방이 아니라, 병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싸움의 일부일 뿐이다.
수치는 늦다… 몸이 먼저 알려준다
의학적으로 혈액 검사는 신뢰도 높은 지표다. 간 수치(AST, ALT), 혈당, 콜레스테롤, 종양 표지자 같은 수치는 질병의 진행을 수치화해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가 있다. 대부분 수치는 이미 변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수치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몸속 세포들이 이미 오랜 시간 병에 저항하다가 더는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 수치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혈당이 90㎎/dL이라면 정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선 이미 인슐린 저항성이 서서히 시작됐을 수 있다. 이 시기엔 췌장이 인슐린을 과다 분비해 억지로 혈당을 눌러놓고 있어 수치만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또 간 수치(AST 28, ALT 32)가 정상이어도 간세포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 있다. 실제로는 지방간이 진행 중이고, 간세포가 파괴되기 전까지는 수치는 변하지 않는다.
콜레스테롤이 정상이더라도 혈관 내벽에서는 염증과 플라크 축적이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결국 혈액 검사는 지금까지 벌어진 변화의 결과표이지, 변화의 시작점은 아니다. 병이 몸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우리는 ‘정상’이라는 말에 안심하며 그 신호를 지나치는 셈이다.
개그맨 박미선 씨가 전한 ‘몸의 말’
유방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개그우먼 박미선 씨는 유퀴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암이 생기기 전에 몸에 신호가 왔어요. 너무 피곤해서 촬영 중에 졸았어요. 그런 적은 처음이었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이 짧은 고백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 몸은 수치보다 먼저, 미묘한 증상으로 조용한 알람을 울린다는 것을 완벽히 체험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건강 세계관’이라는 슬로건으로 끊임없이 강조했던, ‘몸이 내는 목소리를 잘 들으라’는 바로 그 지점이다.
단순 피로감, 집중력 저하, 수면의 질 변화, 소화 불량 같은 ‘애매한’ 증상은 대개 “바쁘니까”, “나이 들어서”라고 넘기기 쉬우나 이런 증상들은 반드시 일련의 과정이 있었으며 대사 기능, 호르몬, 에너지 시스템 전반의 미세한 이상이 일어났다는 조기 신호일 수 있다. 암뿐만 아니라 당뇨, 고혈압, 심장병, 치매, 심지어 파킨슨병까지 그 미세한 조기 메커니즘의 연구 결과가 동일한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조용히 오는 병… 몸은 조용히 알려준다
우리 몸은 절대로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질병은 긴 시간 동안 미세한 경고를 반복하며 축적된 결과다. 그 경고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나 근육량 감소는 반드시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야 할 중요한 신호다. 이는 단순한 다이어트 결과가 아니라, 몸의 대사 기능과 에너지 생산력이 떨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간 기능 저하, 호르몬 변화, 암세포의 미세한 활동이 그 원인일 수 있고, 이는 혈액 수치가 뒤늦게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수치보다 흐름, 단면보다 방향을 읽자
혈액검사는 정확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면(snapshot)을 보여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상태는 잘라서 보여주지만, 그 변화가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즉, 벡터(방향성)를 알기 위해선 반복 추적과 시간 흐름에 따른 비교가 필요하다.
그래서 병원에서 “재검해보자” “3개월 후 다시 보자”는 말은 상술이 아니라, 포착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한 의료진의 전략적 제안이다. 환자가 “정상인데 왜 또 해요?”라고 받아치면, 진짜 조기 발견의 기회를 흘려보내게 된다. 건강은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건강은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한 번의 수치로는 읽을 수 없다.
건강을 지키는 5가지 실천 수칙
- ‘정상’이라는 말에 안심하지 말자. 평균은 내 몸의 최적 상태와 다를 수 있다.
- 몸이 보내는 신호-피로, 수면, 체중, 근육량 변화 등-를 기록하자. 숫자보다 먼저 나타나는 신호다.
- 체중·근육 변화는 반드시 검사를 받자. 의도하지 않은 변화는 단순한 노화나 다이어트가 아닐 수 있다.
- 혈액검사는 단면이다. 방향성을 보려면 반드시 정기적인 추적이 필요하다.
- 전문가가 재검을 권유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자. 재검은 의심이 아니라 기회다. 진짜 조기 발견은 그때 가능하다.
우리 몸은 수치보다 먼저 이야기한다. 단지 우리가 듣지 못했을 뿐, 몸은 여러 차례, 수십 차례 방어 기회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가 지금일 수도 있다. 정상이라는 말에 머물지 말고, 내 몸의 흐름을 읽자.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 중이었다. 그것을 알아채고, 조기에 방향을 바꿔야 진짜 예방이 시작된다. 암 연구에서는 무려 7년 이상 잠복 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장일영교수 조선일보 입력 2025.11.18
| 장일영 |
| 노인내과학 대표 주자로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시절 풍부한 고령 환자 진료 경험을 쌓았다. 성균관대 삼성융합의과학원 건강노화연구실 겸임 교수이면서 추내과 부원장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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