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외식전문가가 뽑은
대전 칼국수 베스트 10

대전의 칼국수 사랑은 유별나다. 성심당 때문에 ‘빵의 도시’로 알려졌지만, 끼니로는 칼국수를 훨씬 많이 먹는다. 성심당을 운영하는 ‘로쏘’의 임선 이사는 “일주일에 2~3번은 칼국수를 먹는다”고 했다. “제 주변 대전 사람들은 다 그래요.”
대전이 ‘칼국수의 도시’라는 건 통계로 입증된다. 대전세종연구원이 전국 칼국수·빵 가게 숫자를 조사한 결과, 2023년 말 기준 대전의 칼국숫집은 700개가 넘는다. 인구 1만명당 5개꼴로, 서울(3개)·부산(3.9개)·대구(4.5개) 등 7개 특별시·광역시 중 가장 많다. 대전에는 일반 음식점이나 분식집도 칼국수를 팔아 실제 칼국수 외식업장은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칼국숫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는 답을 듣기 힘들다. 먹을 만한 칼국숫집이 동네마다 두세 곳은 있다 보니 굳이 멀리 찾아 먹으러 다니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이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그래서 ‘아무튼, 주말’이 2025년 6월 현재 대전 최고 칼국숫집을 찾아봤다. 음식·외식업계 전문가 8명에게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대전 칼국숫집을 10곳씩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본인과 관련된 곳은 배제했다. 1등부터 10등까지 10점부터 1점까지 매겨 합산했다. ‘평양냉면 베스트 1′<2024년 7월 20일자 B3면 기사 참조>과 ‘부산 돼지국밥 베스트 10’<1월 11일자 B6~7면 기사 참조>처럼, 잘하는 칼국숫집이 너무 많고 스타일 차이도 커 선정이 쉽지 않았다.

◇‘대전 칼국수 원조’ 두 곳이 1·2위
전문가들이 꼽은 대전 최고 칼국숫집은 ‘대선칼국수’였다. 대전역 앞 정동 ‘신도칼국수’가 근소한 차이로 2위. 두 가게는 대전 칼국수 역사의 출발점이자 대전 칼국수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신도는 사골을 추가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식당 모두 멸치를 육수의 기본으로 삼는다. 국물이 심심하달 정도로 담백하면서 짙고 구수한 멸치 향이 치고 올라온다.
대선칼국수는 현존하는 대전 칼국숫집 중 가장 오래됐다. 71년이나 칼국수를 끓여 팔고 있다. 1954년 대전역 앞에서 시작해 대흥동을 거쳐 2001년 현재 둔산동으로 옮겨왔다.
아버지 고(故) 오영환 창업주와 큰오빠 고 오도생씨에 이어 대선칼국수를 1990년부터 운영해 온 오세정 대표는 “아버지가 대전역 앞에서 기다란 나무 의자를 놓고 포장마차처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전에서 간판을 걸고 칼국숫집을 연 곳은 처음일 거예요.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국수는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었죠. 일용직 노동자부터 머리에 짐을 진 아낙네까지 칼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1961년 창업한 ‘신도칼국수’는 대선과 함께 대전 칼국수의 원조로 꼽힌다. 냉면집을 하던 고 김상분 할머니가 대전역 앞 짐꾼과 마차꾼을 배불리 먹일 음식을 고민하다 칼국수로 업종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커다란 양푼 냄비에 찰랑거릴 정도로 가득 담긴 칼국수 1인분을 30원에 팔았다. 2025년 6월 현재 7000원으로 여전히 대전 칼국숫집 중에서 저렴한 축에 속한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세대에게는 국수가 목숨을 이어온 핵심 음식이었을 것이다. 대전에 칼국숫집이 많은 건 6·25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53년 휴전하자 미국은 구호물자로 밀가루 무상 원조를 시작했고, 경부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교통 중심지 대전에서 전국으로 배분됐다. 그래서 대전에 밀가루가 흔했고, 칼국수 등 분식을 즐기게 됐다고 한다.
1960~1970년대 서해안 간척 사업 등 굵직한 국가 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에게 노임 대신 밀가루가 지급되며 대전이 밀가루 유통의 중심지가 됐다는 설도 있다. 노동자들이 받은 밀가루를 대전역 주변에서 되팔며 자연스럽게 대전에 밀가루가 퍼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얼큰이·동죽·김치… 다양한 스타일
대전 칼국수는 종류도 다양하다. 멸치와 사골 국물에 끓여 내는 칼국수 외에도 바지락, 팥, 어죽, 밴댕이, 매생이, 김치, 옹심이 칼국수 등 20여 가지가 넘는다.
이번에 3위에 오른 ‘스마일칼국수’는 디포리로 흔히 알려진 밴댕이를 끓인 시원한 국물에 자가 제면한 꼬들꼬들한 면이 담겨 나온다. 4위 ‘오씨칼국수’는 동죽 조개로 육수를 낸다. 동죽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우러난 국물이 직접 반죽해 뽑은 쫄깃한 면발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동죽이 숨을 쉬며 물을 뿜는 게 물총을 쏘는 것 같다고 해서 ‘물총 칼국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전에는 얼얼하게 매운 ‘얼큰이칼국수’를 내는 집이 많다. 그 출발은 1974년 대흥동에 문 연 ‘공주분식’이다. ‘대전 칼국수는 공주분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 집이다. 멸치 육수에 고춧가루와 간장 등을 배합한 양념장을 푼 얼큰한 국물로 대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고명으로 쑥갓을 잔뜩 올려주는 것도 이 가게가 유행시켰다.
공주분식이 대박을 내자 주변에 칼국숫집이 속속 들어서면서 대흥동 칼국수 거리가 형성되기도 했다. 2009년 재개발로 칼국수 거리는 흩어졌다. 공주분식도 문을 닫았지만, 7위에 오른 ‘괴정동공주칼국수’를 포함 ‘공주’가 상호에 들어간 여러 얼큰이칼국수 가게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대선칼국수를 비롯해 대전 칼국숫집에는 비빔칼국수도 두 가지라는 점이 독특하다. 하나는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갑게 씻은 칼국수면을 고추장 양념에 비벼 먹는 스타일이고, 다른 하나는 삶아서 건져낸 칼국수면을 씻지 않고 그대로 양념에 비빈 따뜻한 스타일이다.
◇두루치기·김밥·돈가스도 팔아요
또 다른 특징은 칼국수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함께 판다는 점이다. 물론 평양냉면집들도 냉면 외에 수육·제육이나 만두, 어복쟁반 따위 음식을 낸다. 하지만 대전 칼국숫집들처럼 다양하거나 칼국수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음식을 두루 수용하지는 않는다.
대선칼국수는 ‘수육 먹으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돼지 수육의 명성이 칼국수에 버금간다. 정문 카운터 옆에 수육 써는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썰어서 낸다. 냄새가 전혀 없으면서 껍질과 지방은 쫄깃하고 살은 보드랍다. 오 대표는 “얼리지 않은 냉장 국산 돼지고기만 쓰는 데다, 삶는 물에 들어가는 양념이 잡내를 잡아내는데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스마일칼국수에 가 보니 테이블마다 칼국수와 함께 김밥을 먹고 있었다. 얼핏 평범한 김밥 같은데, 먹어보면 밥부터 속 재료까지 간이 딱 맞는다. 유부는 간장에 조렸고, 소시지도 그냥 넣지 않고 볶아서 쓴 성의가 합해져 이뤄낸 결과. 시식에 참여한 한 패널은 “밖에서 사 먹는 김밥 같지 않고 집에서 손맛 좋은 엄마가 만든 김밥 맛”이라고 평가했다.
5위에 오른 ‘시민칼국수’와 10위 ‘삼미손칼국수’는 돈가스, 8위 ‘칼국수만드는사람들’은 낙지볶음으로 이름났다. 신도칼국수와 6위 ‘동원칼국수’ 등 대부분의 칼국숫집은 대전을 대표하는 또 다른 음식인 두루치기를 낸다. 괴정동공주칼국수에서는 얼큰이칼국수를 먹다가 국수를 건져 주꾸미볶음에 비벼 먹는 손님이 많았다.

1위부터 10위까지 점수 차이가 크지 않고, 순위권에 들지 않은 곳이 많이 언급됐다는 점도 대전 칼국수 베스트 10 조사의 특징이다. 권순우 대전 ‘오백돈’ 대표는 “그만큼 대전 칼국숫집들은 솜씨가 상향 평준화돼 있고,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10위권 밖으로 ‘옥수숯불구이’(11위), ‘밥하기싫은날 후루룩손칼국수’(12위), ‘3대째전통칼국수’(13위), ‘참맛있는칼국수’(14위), ‘호지칼국수’와 ‘다올칼국수’(공동 15위), ‘김화칼국수’(17위), ‘오시오칼국수’와 용문동 ‘공주칼국수’(공동 18위), ‘밀밭칼국수’(20위), ‘여기가’ ‘부추해물칼국수’ ‘황부자칼국수’(공동 21위)가 꼽혔다.
대전=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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