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부모님 치매 이렇게 늦췄다” 정신과 의사의 ‘뇌 펌핑’ 비법

해암도 2025. 3. 28. 06:50

치매 환자 100만 명 시대, 주위를 둘러보면 부모님이 치매에 걸려 간병을 하고 있거나, 치매로 장례를 치른 집이 참 많습니다. 내 차례는 언제 올까 점점 불안해지고요. 치매는 정말 예방할 수 없는 불치병일까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전문가를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1994년부터 노인정신장애, 경도인지장애, 우울증 등 노인정신질환을 연구하고 있는 김성윤(65)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입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김 교수는 의자에 앉는 대신 꼿꼿이 선 채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요. 자세히 보니 책상 아래 워킹패드(걷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운동 기구)를 놓고 가볍게 걷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걸으면서 일하시냐”고 묻자 김 교수는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책을 봐야 할 때처럼, 눈으로 일할 때는 웬만하면 걷는다”고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워킹패드 위를 걷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윤 교수. 김종호 기자

그러면서 “이렇게 매일 운동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치매는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운동으로 치매를 막을 수 있다’니, 기자는 의아한 마음으로 되물었습니다. “운동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될까요?” 김 교수는 확신에 찬 얼굴로 이렇게 답했습니다. “치매는 유전이 아니에요.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련하면 치매를 막을 수 있고, 늦출 수 있습니다.”

김 교수의 부모 역시 치매를 앓았는데요. 그는 “두 분의 치매가 더 일찍 시작될 수 있었지만, 운동을 하면서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40년 이상 매일 특별한 운동을 하며 코어 근육을 단련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더, 마음’에서는 운동과 치매의 관계를 파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해야 뇌 건강에 좋을까요?


김성윤 교수는 운동하면 이미 치매에 걸린 뇌도 좋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 치매 걸린 아버지와 태극권
📌 운동하면 치매 걸린 뇌도 회복된다?
📌 ‘근육량’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
📌 위고비는 치매를 막아줄까
📌 뇌 건강을 위한 세 가지 운동 축

📌치매 걸린 아버지와 태극권
그동안 많은 치매 환자를 진료하셨죠. 운동으로 치매가 호전된 사례가 있었나요?
치매 초기 단계의 70대 할머니가 오셨는데요. 인지능력이 약간 떨어진 상태였고, 뇌가 위축돼 있었습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거든요. 2~3개월마다 약을 처방해 드리면서 경과를 봤는데요.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어요. 혼자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다 시골에서 연배가 비슷한 고모가 오셨어요. 극단적으로 활발하고, 깔끔한 분이었어요. 계속 청소하고 운동하고 돌아다닌 거예요. 할머니와 함께 산에도 가고, 남대문시장·올림픽공원에 자주 갔다고 해요. 두 분이 함께 매일 걷는 운동을 한 셈이죠.

어떻게 달라졌나요?  
1년 사이에 할머니 얼굴이 까맣게 탔어요.

체중도 꽤 줄었고요. 중요한 건 눈빛이 총명하게 변했다는 겁니다. 인지 기능 검사를 해보니까 점수가 올라갔어요. 그때 느꼈죠. 이게 약으로 치료하는 게 아니구나. 치매에서 약은 보조적인 조치고, 뇌를 회복시키는 건 근육을 쓰는 운동과 생활습관이구나. 거기에 사회적 관계까지 더해져서 할머니를 완전히 바꿨죠.

교수님의 부모님도 치매셨다고요.  
아버지는 치매를 앓다가 2년 전에 94세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92)는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시고요. 두 분 다 80대 후반에 치매 판정을 받았는데, 거의 직전까지 운동하셨어요. 두 분이 40년 정도 태극권을 함께 하셨어요. 전국 태극권대회에서 금메달도 따셨죠. 노년층에서 80세 이상 부부가 거의 없다 보니 받으셨던 것 같기도 해요.(웃음)

태극권이 치매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됐을까요?
물론입니다. 태극권은 동작을 천천히 해야 하는데요.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정신건강에 좋아요.

또 상체 근육은 힘을 빼고, 하체 근육과 코어 근육을 주로 사용합니다. 급격한 움직임이 없다 보니 연세 드신 분들이 하기에 굉장히 좋은 운동이에요. 치매에 걸리면 인지기능이 떨어지면서 신체기능도 나빠지거든요. 보행이 어려워 넘어지기도 하고요. 아버지는 치매로 뇌 기능이 떨어졌으나, 신체기능을 늦게까지 유지하셨어요. 그런 점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봅니다. 어쩌면 치매가 더 일찍 왔을 수도 있는데, 운동을 오래 하셨기 때문에 늦출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태극권 하는 사람들. 사진 unsplash

운동하면 치매 걸린 뇌도 회복된다?  
치매에 걸리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되나요?
일단 뇌의 크기가 쪼그라듭니다. 노화가 진행되면 뇌의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가 감소해요. 그러면 세포 기능이 크게 떨어지면서 치매가 오는데요. 특히 단기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라는 부위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죠.

운동하면 뇌가 어떻게 바뀔까요?
운동하면 뇌 혈액순환이 좋아집니다. 해마에서 신경세포도 새로 생성되고요. 새로운 세포는 다른 세포와 연결되면서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줍니다. 또 뇌 크기가 커지는데요. 특히 피질(뇌를 둘러싼 껍데기) 두께가 두꺼워집니다. 피질에는 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가 시냅스로 연결돼 모여 있어요. 운동하면 시냅스가 늘어나면서 피질이 두꺼워집니다. 그러면 뇌가 커지고,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어요.

2021년 신경과학 학술지인 ‘프론트에이징 뉴로사이언스’에 관련 연구가 있어요. 연구팀은 신체운동을 한 그룹과 운동을 안 한 그룹을 6개월 동안 관찰했어요. 운동을 한 그룹은 뇌 피질이 더 두꺼워졌습니다. 게다가 뇌 혈액순환이 저하되는 ‘백질병변’도 개선됐어요. 백질변병은 세포들을 연결해 정보를 전달하는 뇌백질이 손상된 건데요. 뇌 혈액순환이 좋아지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미 치매에 걸린 환자도 운동으로 뇌를 키울 수 있나요?
있습니다. 짧게 3개월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뇌 부피에 변화가 있거든요. 물론 3개월 안 하면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 정도로 변화가 빠릅니다. 뇌가 커지고 작아지는 건 근육의 펌핑과 똑같아요. 운동하면 즉시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걸 펌핑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운동을 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운동으로 치매 환자가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나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2021년 국제노인의학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① 약물치료만 한 그룹과 ② 약물치료와 운동을 병행한 그룹을 비교했는데요. 후자가 훨씬 치매 진행 속도가 느렸습니다. 약물로 아세틸콜린(기억과 사고 능력에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 분해되는 걸 억제했고, 운동을 통해 BDNF(‘두뇌 비료’로 불리는 뇌 유래 신경 영양 인자) 등이 생성되면서 인지와 기억 능력이 좋아지는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죠.

근육량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

김성윤 교수는 "근육 손실은 치매 위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호 기자

근육량과 치매의 상관관계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근육량을 통해 치매 위험도를 조사한 연구가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에서 1300만 명의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를 분석했는데요. 근육량이 1㎏ 증가할 때 남성은 30%, 여성은 41%까지 치매 위험이 감소했습니다. 근육과 치매의 상관관계가 데이터를 통해 나타난 거죠.

근육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가요?
알츠하이머성 치매 원인 중 하나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축적을 꼽는데요. 이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뇌에 많이 쌓이면 신경세포 손상을 일으킵니다. 세포들의 연결을 끊어요. 환자들의 뇌를 보면 100% 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여 있죠.

완전히 막는 방법은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근육이 대사활동을 돕잖아요. 근육량이 적을수록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근육량이 많으면 축적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물론 근육량이 많다는 것에는 그 사람의 운동, 식단, 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반대로 근육량이 줄면 치매 위험률이 높아질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근육 손실은 치매 위험 요인이 됩니다. 많은 분이 다이어트를 이유로 굶잖아요. 나이가 많을수록 지방만 빼야 하는데, 근육이 같이 빠지면 정말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비만약을 먹으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알츠하이머협회 국제 학술대회(AAIC)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위고비, 삭센다 등 최근 다양한 다이어트 약이 나왔는데요. 식욕을 억제하는 방식의 약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약들에 관해 축적된 혈압, 당뇨, 치매 관련 장기 데이터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방이 빠지니까요.

다만 그 약의 취지를 치매 예방으로 둘 수는 없습니다. 위고비는 고도비만을 위한 약이거든요. 고도비만은 고혈압, 당뇨 같은 대사증후군, 무호흡증, 코골이 같은 수면 장애 등을 유발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위고비를 통해 나아지는 것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취지에 벗어나게 약을 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근육을 어떻게 단련하면 좋을까요?  
근육은 크게 지근과 속근으로 구분됩니다. 지근은 느린 근육이어서 지구력에 필요하고요. 속근은 강한 힘을 써야 할 때 필요하죠. 달리기는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서 산소 공급이 많이 필요하죠. 이런 유산소운동은 지근을 키울 수 있고요. 무거운 덤벨을 드는 건 무산소운동인데요. 속근이 커집니다. 숨이 차는 운동과 숨이 차지 않는 운동을 골고루 해주세요. 근육 중 한 부위를 고르라면, 코어 근육(척추, 골반, 복부를 지탱하는 근육)입니다. 필라테스할 때 많이 쓰는 근육이죠. 나이 드신 분들께 더 추천합니다.


필라테스는 코어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이다. 사진 pexels

뇌 건강을 위한 세 가지 운동 축
교수님은 어떤 운동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30년 정도 태극권을 했습니다. 요즘은 자주 못하지만, 매일 태극권 자세를 응용한 느리게 걷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태극권 보법 중에 상삼보(上三步)라는 것이 있는데요. 입신중정(立身中正), 즉 몸을 바르게 세우고 상체가 움직이지 않게 천천히 걷는 방식입니다. 앞으로 내딛는 발에 몸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두는 게 중요합니다.

연구실에 있는 워킹패드 위에서 걷는 거죠?  
맞습니다. 이건 당근에서 중고거래했습니다(웃음). 워킹패드는 속도가 많이 안 나거든요. 빨라야 4km/h. 저는 0.5km/h 정도로 느리고 낮은 자세로 걸어요. 이러면 하체 근육을 더 쓸 수 있어요. 평소보다 보폭을 5cm 정도 넓혀서 걷습니다. 한 번에 30분 정도 매일 걷는데, 20분만 지나도 땀이 날 정도로 강도가 있어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곤 합니다.

이제 운동을 시작하려는 분들께 조언한다면요?
뇌 건강을 위한 운동에는 세 가지 축이 있는데요. 먼저 전신을 모두 사용하는 신체 활동이 좋습니다. 둘째는 뇌를 사용하는 지적 활동, 셋째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사회 활동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뇌세포 활성화에 도움을 줍니다.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매일 운동하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어요.

치매를 걱정하는 분들께 어떤 운동을 추천하나요?
근력과 심폐 기능에 도움이 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추천하는데요. 등산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등산이 힘든 분들은 천천히 달리기도 좋습니다, 전신을 사용하는 요가나 태극권도 권장합니다. 여러 운동을 해보고 재미있는 걸 찾으세요. 재미가 있으면 꾸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운동 목적을 치매 예방에만 두지 마세요. 우리가 치매에 안 걸리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운동하면 집중력과 생각의 지구력이 강해집니다. 융통성도 생기고요. 운동의 효과가 정말 많습니다.

정신건강도 좋아질까요? 
저는 운동 효과 중 긍정적인 마인드를 길러주는 게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통해 ‘오늘 하루가 참 좋았다’는 생각이 매일 쌓이면 그 자체로 좋은 인생 아닌가요? 소중하게 보낸 1시간이 쌓여서 소중한 하루가 되잖아요. 그런 날이 1년 내내 쌓이면 “올 한 해 잘 보냈다”고 말할 수 있죠. 운동은 소중한 하루를 위한 선물이에요. 그래서 매일 운동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운동은 아프지 않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운동이 뇌 건강을 넘어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중앙일보    발행일시   2025.03.28   에디터   이성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