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궁궁통통2
세상에 문제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습니다.
#궁궁통1
신학생들에게
가장 만나고 싶은 목회자를
꼽으라는
설문 조사를 하면
종종
‘이재철 목사’가
1위로 꼽혔습니다.
'기독교 영성가'로 꼽히는 이재철 목사가 서울 양화진의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서 있다. 중앙포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왜 그랬을까.
목회자를 지망하는
젊디젊은
신학생들이
왜
그를 가장
만나고 싶어 했을까.
저는 그게
‘남다른 영성’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재철 목사의 대답에서는
내면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울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울림 속에는
어김없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의 대답 속에
왜
그런 길이
놓여 있었을까.
그건
이 목사가
몸소 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궁궁통2
11년 전이었습니다.
이재철 목사는
갑상선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성 종양으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검사였습니다.
마음을 졸이는
시기였겠지요.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병원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입니다.
12군데 조직 검사 중
11군데서
암세포가 나왔습니다.”
이재철 목사는 조직 검사 결과 암이라는 의사 통보를 받고서도 그걸 감사함으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그런 치환이 가능했을까. 중앙포토
누구라도
이 말을 들으면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요.
“하나님,
왜 저에게
하필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제가
이런 일을 당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이렇게
기도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재철 목사는
달랐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12군데 중 11군데서
암세포가 나왔다는
의사의 통보 앞에서
이 목사는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
그런 대답이
가능했을까요.
#궁궁통3
인터뷰에서
저는 이 목사에게
그걸
물었습니다.
이 목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암이란 게 뭔가.
그건
내 삶의 길벗이더군요.”
저는
의아했습니다.
암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는데,
암이
내 삶의 길벗이라니
이게 무슨 뜻이지.
이 목사는
그런 저의 표정을
읽었을까요.
그는 차분하게
답을 이어갔습니다.
빛 속에도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다. 무엇을 보는가는 자신의 눈에 달렸다. 신의 섭리, 우주의 이치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눈이 열린다.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보게 된다. 중앙포토
“암에 걸렸다는 게
뭘까.
그건 죽음의 길벗을
내 몸에 넣고
사는 것이더군요.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저는 더 겸허하게
살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답을 듣고서
놀랐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도 있고,
기쁨과 즐거움도 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슬픔은 슬픔으로,
고통은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을 기쁨으로,
또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치환의 힘’이 있더군요.
저는 그날
이 목사에게서
그런 힘을
보았습니다.
그건 단지
“나쁜 일을 좋게 생각하자”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치환의 힘 밑에는
깊은 영성이
깔려 있었습니다.
#궁궁통4
이 목사는
또렷한 눈으로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은
퇴장인 동시에
새로운 등장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어둠도 역사합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비칩니다.
검은 칠판이라야
하얀 백묵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은퇴 후 산골로 내려간 이재철 목사의 자택에 놓여 있는 나무 십자가. 이 목사의 영성에는 늘 십자가에 대한 깊은 묵상이 깔려 있다. 중앙포토
삶에는
어둠과 밝음이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우리는
그 어둠에 갇히고
맙니다.
힘들어하고,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어둠 속에서
어둠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는
달랐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어둠만 보지 않더군요.
빛을 함께 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그 어둠을
‘빛을 위한 어둠’으로
치환해 버리더군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삶의 끝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재철 목사는
그런 시각도
치환해 버렸습니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죽음은
퇴장인 동시에
새로운 등장이라고
봤습니다.
삶의
어둠과 빛에 대한
그런
강력한 치환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건
이재철 목사가
신의 섭리,
신의 이치 속에서
온전히 머물며
사유하고,
묵상하며,
그런 눈을 길어 올렸기
때문입니다.
이재철 목사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고 했다. 퇴장인 동시에 새로운 등장이라고 했다. 중앙포토
그래서
그의 치환은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이치와 함께
흐르기 때문입니다.
신의 섭리와 함께
흐르기 때문입니다.
#궁궁통5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분은 특별하니까,
그런 게 가능하겠지.
우리 같은 범부는
그게 되겠어?
그건 비범한
일부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야.”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재철 목사의 말처럼
하나님은
빛도 역사하지만,
어둠 역시
역사합니다.
은퇴 후 지방의 산골로 내려가 살고 있는 이재철 목사. 인터뷰할 때마다 그의 대답 속에 깃든 오랜 묵상의 시간을 보게 된다. 중앙포토
그러니
빛 속에도
신의 섭리가 있지만,
어둠 속에도
똑같이
신의 섭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빛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도 있지만,
어둠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거지요.
그리 보면
빛과 어둠의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집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이 한 마디!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어둠도 역사합니다.”
사람들은
둘로 쪼개는
이분법적 사고에
무척 익숙합니다.
에고를 기준점으로
좋고 싫고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재철 목사는
신의 섭리는
어둠도 역사한다고
말했습니다.
불교에도
이와 비슷한 선문답이
있습니다.
“지옥에도
부처가 있는가?”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지옥에 과연
부처가 있을까요.
극락과 지옥이라는,
선과 악이라는,
빛과 어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면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경계를 무너뜨리면
이 문제가 풀립니다.
기독교식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면
이 문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그 경계를
무너뜨릴 때,
우리에게는
깨달음이 옵니다.
아하!
어둠 속에도
신이 있고,
빛 속에도
신이 있구나.
아하!
지옥에
부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지옥 자체가 부처구나.
그럴 때
우리는
더 큰 하나님을
만나고,
더 큰 부처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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