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최대 수명 115~150세, 인공장기, 인공혈액으로 수명 120세까지
기네스북이 공인한 역대 세계 최고령자는 프랑스 여성 잔 칼망이다. 조선이 개항하기도 전인 1875년에 태어났는데, 1997년 122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 여성은 85세부터 펜싱을 배웠고, 100세에도 자전거를 탈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시력과 청력을 잃은 상태였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칼망처럼 11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을 가리켜 ‘수퍼센티네리언(Supercentenarian)’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수퍼센티네리언은 건강한 몸을 타고난 극소수의 얘기였지만, 현대 과학은 이제 범인들의 ‘수퍼센티네리언 시대’에 도전한다.
과학자들은 돌파구를 찾고 있다. 생명공학 연구는 노화를 늦추는 것을 넘어 회춘을 의미하는 ‘역(逆)노화’를 꿈꾸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현대판 불로초(不老草)를 찾기 위해 인간보다 긴 수명을 자랑하는 동물 연구에 나서는가 하면, 줄기세포를 기반으로 만든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organoid)로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고, 동물에서 키워낸 장기를 이식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회춘만 한다면 금(千金)이 아까울까. 회춘 산업은 그야말로 노다지 산업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장수 관련 산업은 2020년 251억달러 규모에서 2030년 442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WEEKLY BIZ는 회춘 산업의 가능성을 엿보고자 인간 수명 연장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과학자와 관련 연구에 투자하는 벤처 투자자를 포함한 전문가 열 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수명 연장 기술 관련 대표적인 벤처 투자자인 세르게이 영 장수 비전 펀드 창립자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현재 구현 가능한 기술과 10년 내 개발될 기술만 잘 활용해도 인간 수명을 120세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질병의 어머니’ 노화를 극복하라”
늙음은 모든 생명이 부여받은 숙명 같은 것이란 인식에도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연구자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 천수(天壽)를 누리는 최장 한계 수명은 짧게는 115년에서 최장 150년 수준으로 추정된다. 유엔 인구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사람들의 평균 기대 수명은 73.2세로 1950년(46.4세)보다 20년 이상 늘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이 격차를 벌리는 근본 원인이 바로 늙어감, 노화다. 영 창립자는 “개인적으로 노화는 질병의 하나로 분류해야 한다고 본다”며 “적어도 암이나 심장 질환 같은 질환을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위험 요인”이라고 했다. 니르 바르질라이 앨버트 아인슈타인대 노화연구소장은 “노화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심혈관 질환, 암, 치매 등을 일으키는 ‘질환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했다. 거꾸로 말해 노화라는 병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 찾아오는 치명적 질환도 함께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진시황이 애타게 찾던 불로초는 오늘날에도 발굴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게 체내 성장 호르몬을 조절해 노화를 억제하는 연구다. 바르질라이 교수는 “‘IGF-1(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1)’이라는 성장 호르몬은 50세 이전까지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 이후로는 이 호르몬의 농도가 낮은 사람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며 “제약사들이 이러한 원리를 활용해 노화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오브리 드 그레이 노화탈출속도 재단 이사장은 “지난 7월에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인 인터루킨-11(IL-11)을 억제하면 쥐의 수명이 20%가량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며 “노화 억제 연구에 큰 성과”라고 했다.
만성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약품들이 노화 방지 효과란 ‘깜짝 부작용’을 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바르질라이 교수는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 SGLT-2(나트륨-포도당 공동 수송체-2) 억제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유사체와 골다공증 치료제인 비스포스포네이트, 면역 억제제인 라파마이신 등이 ‘노화 치료제’로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늙어감을 부여잡는 것을 넘어서 되레 젊어지는 ‘역노화 혁명’도 진행 중이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교수가 진행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그는 “생명체의 모든 세포에는 젊음에 대한 정보를 백업해둔 ‘옵서버(Observer)’라는 물질이 존재하며, 이를 이용하면 마치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것처럼 젊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며 “관련 연구진들은 이미 쥐나 원숭이에서 일정 수준의 역노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고 했다. 싱클레어 교수 연구팀은 빠르면 내년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시작, 역노화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는 유전자나 화학물질을 찾을 계획이다.
◇수명 연장의 비밀 열쇠, 장수 동물
긴 수명을 자랑하는 동물에 대한 연구도 장수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바다 물고기인 볼락류(rockfish) 가운데엔 수명이 200년이 넘는 어종도 있다. 이를 연구하면 인간의 수명 연장의 비밀을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볼락을 연구하는 스테판 트리스터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박사는 “볼락류가 가지고 있는 인슐린 신호와 플라보노이드 대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볼락의 긴 수명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표적(유전자)들은 인간의 건강 개선과 수명 연장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불사(不死) 해파리라고도 불리는 ‘투리톱시스 도르니’도 역노화, 즉 회춘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해파리는 성체 단계에서 고온이나 먹이 부족, 치명적인 상처로 죽을 위기에 처하면 어린 개체인 ‘폴립’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세포 역분화가 이뤄진다. 천적에게 잡혀 먹지 않는다면 매우 오래 생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사 해파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리아 미글리에타 텍사스 A&M대 교수는 “세포 역분화는 몸에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던 세포가 미분화 세포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 이러한 세포는 나중에 다시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며 “우리 연구팀은 무척추동물인 해파리가 척추동물 등에서도 수명 연장과 DNA 손상 복구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 네트워크를 조작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쉽게 말해 나이 들고 말고를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얘기다.
암에 걸리지 않는 벌거숭이두더지쥐 역시 중요한 실험 대상이다. 드 그레이 이사장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보유한 독특한 형태의 히알루론산이 암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인공 장기·인공 혈액으로 수명 연장
뇌나 심장처럼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장기가 손상됐을 때 이를 회복시키거나 새로운 장기로 대체하는 기술 역시 수퍼센티네리언 시대를 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은 ‘미니 장기’로도 불리는 오가노이드에 주목하고 있다. 오가노이드란 인체 유래 줄기 세포를 배양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3차원 장기를 뜻한다.
현재는 손상된 장기의 일부분을 오가노이드로 대체해 기능을 회복하는 수준의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마틴 수네만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세포군의 일부를 오가노이드로 대체해 뇌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연구 등이 진행 중”이라며 “뇌졸중이나 척수의 물리적 손상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오가노이드를 활용하려는 연구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 뇌는 물론 심장 오가노이드 이식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잉 메이 미국 클렘슨대 교수는 “면역 반응을 적게 유발하는 ‘기성품’ 심장 오가노이드를 개발 중”이라며 “손상된 심장 부위를 대체해 심장 기능을 회복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심혈관계 질환이 전 세계적으로 주요 사망 요인인 만큼 심장 오가노이드 이식으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면 평균 수명 연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뇌나 심장 외에도 폐, 간, 신장, 췌장의 베타세포(인슐린 분비) 등도 ‘오가노이드’ 이식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오가노이드로 ‘풀 사이즈’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기까지는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이식한 오가노이드가 암과 같은 구조로 발달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은 동물의 몸에서 키워낸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 간 장기 이식’이 망가진 장기를 대체하는 핵심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난 3월 미국에서 60대 환자가 생명공학 기업 ‘e제네시스’가 개발한 유전자 조작 돼지 신장을 이식받았고, 4월 두 번째 돼지 신장 이식이 이뤄졌다. 데이비드 쿠퍼 하버드대 메디컬스쿨 교수는 “분자생물학 기술을 활용해 돼지 세포 내에서 일부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인간 유전자를 삽입하면 이식 시 거부 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기술이 발전하면 간, 췌장, 각막 등 더 많은 장기를 이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 혈액은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사카이 히로미 일본 나라의대 교수는 일본 적십자사에서 폐기한 혈액을 기증받아 이를 바탕으로 인공 혈액을 만들었다. 이번에 개발된 인공 혈액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기능만 대체할 수 있다. 혈액에서 정제한 헤모글로빈(산소 운반 물질)을 세포막으로 포장해 인공 적혈구를 만든 것이다. 인공 혈액은 여러 장점이 있다. 헌혈로 확보한 적혈구는 5~6주까지만 보관할 수 있지만 인공 혈액은 수년간 보관이 가능하다. 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동아줄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카이 교수는 “인공 적혈구는 실제 적혈구보다 작기 때문에 좁아진 혈관을 잘 통과할 수 있다”며 “뇌졸중 등으로 조직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산소를 더 잘 배달해 줄 수 있다”고 했다.
◇367조달러 장수 배당, 수명 연장의 축복
노화와 장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명 연장이 사회경제적으로도 마이너스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마틴 엘리슨 옥스퍼드대 교수와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서 기대 수명을 10년 연장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367조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위 ‘장수 배당(longevity dividend)’ 효과다. 일찍 사망하거나 병상에 누워 있는 대신 경제 활동을 한다면 엄청난 수준의 경제적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늘어나면 해당 국가 경제는 인구 배당(demographic dividend)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 노동력이 풍부하고, 상대적으로 고령층 부양 부담이 적으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이 늘어나는 고령화에 대해서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노화 방지 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10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단명하는 사람들보다 사망 직전까지도 건강을 잘 유지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르질라이 소장은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100세 이상 생존하는 사람이 사망 직전 2년간 지출하는 의료비는 70대 때 사망하는 사람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노화 방지 기술을 통해 시민들이 건강해지면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지만, 의료비 지출이 감소하면서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장수 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사는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영 창립자는 “장수 관련 기술 투자를 통해 내 자신이 얻고 싶은 목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게 아니라 더 오래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론 25세의 건강 상태로 200세까지 사는 시대가 열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장수 배당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얻어지는 경제적 효과.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의료비를 덜 쓰고, 더 오래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이익을 일컫는다.
☞오가노이드
사람의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해 만든 인공 장기. 원래는 개발 중인 신약 효과를 검증하는 도구로 활용되지만, 최근에는 오가노이드를 이식해 손상된 장기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