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팔순 앞둔 다이슨 창업자, 한국에 ‘장영실 방’ 만든 이유

해암도 2023. 12. 8. 10:22

‘Dyson’ 창업자 다이슨 인터뷰
“AI가 제품 디자인? 인간 창의성 못 따라온다”

 
 

영국 런던 인근 소도시 맘즈버리에 있는 가전 기업 다이슨 연구소.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76)의 집무실 앞 벽 전체를 도배한 글귀가 눈길을 붙잡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지나친 문제를 해결한다. 그냥 해결하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하는 게 중요하다.’

 

사훈(社訓)이나 다름없는 이 말을 실천하듯 다이슨은 1993년 창업 이후 먼지 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머리카락 손상을 줄인 헤어드라이어 등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히트작을 성공시켰다. 지난해 매출은 65억파운드(약 11조원), 순이익 13억파운드를 기록했다. 냉장고·TV 등 중대형 가전 없이 혁신의 힘으로 일군 성공이다.

영국 가전 기업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76세 나이에도 2030대 기술자들과 수시로 신제품에 대해 토론한다. 그는 "같은 엔지니어로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와 특별히 나이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은 그가 개발한 헤어 드라이어 '슈퍼 소닉'을 들고 있는 모습. /다이슨
 

창업자 다이슨의 실패와 성공, 발명 인생을 담은 자서전 ‘제임스 다이슨’ 출간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맘즈버리 연구소에서 다이슨을 만났다. 지난해 영미권에서 먼저 나온 자서전 원제는 ‘Invention(발명)’.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수석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여전히 20·30대 직원들과 함께 손에 기름때 묻혀가며 시제품을 만드는 전통 개발 방식을 고수한다. 그는 “발명가, 엔지니어를 존중하는 의미로 한국 지사의 가장 큰 회의실 이름을 장영실 이름을 딴 ‘장(Jang)’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래픽=백형선
 

-책 부제가 ‘5126차례 실패에서 배운 삶’이다.

“40년 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시제품을 만든 횟수다. 무엇이든지 시간을 들여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2016년 출시한 슈퍼 소닉 헤어드라이어 성능 테스트를 위해 나를 포함해 많은 남성 엔지니어가 머리를 길렀다. 그런데 모두 오랫동안 가족들에게 그 이유를 말하지 못했다. 비밀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웃음).”

 

-제품 디자인, 마케팅 전략까지 만들어주는 생성형 AI가 나왔다. 다이슨 제품 개발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할 텐데.

“생성형 AI처럼 뚝딱 제품 도안이 나오고 코딩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새롭고 다른 것, 더 나은 것을 생각하는 면에서 AI보다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AI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내게서 모든 창의성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2년 전 영국에서 다이슨이 재배한 딸기를 출시했다. 가전 기업이 농장을 운영하는 게 이색적이다.

“다이슨의 공기 청정, 로봇 기술을 동원해 농업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의 식량 자급을 끌어올리고 미래 에너지, 지속 가능성 문제도 해결하고 싶다.”

다이슨은 내놓는 제품마다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20년 그는 야심 차게 추진하던 전기차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5억파운드가 들어간 대형 프로젝트가 좌초된 것이다. 자서전에서도 한 장(章)을 할애해 전기차 포기 과정을 다뤘다.

 

-왜 포기할 수밖에 없었나.

“다이슨은 2014년 진공청소기 조립 라인이 있던 곳에 우수한 인력을 모아 전기차(모델명 N526) 개발을 시작했다. 좋은 전기차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자동차 신생 업체인 우리에게 부품 업체들이 더 많은 비용을 요구했다. 상업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정말 끔찍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래픽=백형선
 

-상황이 바뀌면 다시 전기차 개발할 계획은 없나.

“전기차는 상업적인 실패이지, 다이슨 기술의 실패는 아니다. 차 개발 과정에서 배터리, 로봇 공학, 공기 정화, 조명을 포함해 많은 것을 배웠다. 궁극적으로 제품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 방법을 배웠다. 모두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것이었다.”

 

-평소 실패를 강조한다.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눈앞에서 실험이 실패하는 걸 더 좋아한다. 그걸 통해 배울 수 있으니까. 내가 설립한 다이슨기술공대(DIET)에서도 실패를 더 강조한다. 학교나 대학에선 정답만 알려주지만, 사회에 나가보면 직접 부딪치고 실험하면서 답을 알아간다. 기업도 인생도 다 그렇지 않은가.”

 

다이슨은 고령에도 여전히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30분까지 연구·개발에 몰두한다. 그는 발명하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다음 신제품이 뭐냐고 묻자 웃음을 지었다. “음… 기밀 사항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맘즈버리(영국)=최인준 기자       입력 2023.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