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종교전문기자
9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최원영(68) 작가를 만났다. 그는 2년 전 『예수의 할아버지』라는 장편 소설을 내놓으며 화제가 됐다. 신학계에서 치열하게 오갔던 논쟁을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과감하게 제시했다. 당시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하느님과 교회를 교리로부터 해방시켜서 현세의 생활 속에서 살아 있게 한다”고 평할 정도였다.
최근 최 작가가 두 번째 소설 『예수님의 폭소』(좋은땅)를 내놓았다. ‘예수’와 ‘폭소’를 합한 제목. ‘예수의 할아버지’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제목이다. 이유부터 물었다.
최원영 작가는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우는 대목은 나오는데, 웃으시는 대목은 안 나온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뜻밖의 제목이다. 왜 ‘예수님의 폭소’인가.
“늘 궁금했다. 성경에는 왜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대목은 하나도 없을까. 우셨다는 대목은 세 번 나온다. 베다니의 나사로 무덤 앞,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였다. 그런데 왜 웃으시는 장면은 없을까. 오래전에 목사님에게 그걸 물어본 적이 있다.”
목사님의 대답은 어땠나.
“예수님이 한 번도 안 웃으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거룩하신 분이고, 엄숙하신 분이라고 했다. 목사님은 그렇게 쉽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흔쾌하지 않았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항상 어린아이들을 좋아하고,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으니까. 그때마다 예수님은 웃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목을 ‘예수님의 폭소’로 정했다. 예수님은 언제 가장 크게 웃었을까. 그런 오래된 생각의 씨앗이 소설의 시작이 됐다.”
예수님의 폭소. 예수님이 가장 좋아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다섯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지만 책은 쉼 없이 그걸 찾아간다. 예수께서 가장 크게 웃는 순간, 그건 예수님이 이 땅에 온 이유와 닿아 있을 테니 말이다.
『예수의 할아버지』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며 개혁을 꿈꾸는 젊은 목사의 외침을 다룬 장편소설이었다. 반면 『예수님의 폭소』는 다섯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우화적인 느낌을 준다. 이유가 있나.
“기독교를 향해 질문과 대답을 자유롭게 던지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간 제약 없이 베드로와 도마도 등장해 문답을 주고받는다. 종교 이야기다. 너무 심각하고 엄숙한 쪽보다 자연스럽고 유머가 있는 쪽을 택했다. 그걸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좀 더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수의 할아버지'에 이어 최원영 작가가 두 번째로 내놓은 단편소설집 '예수님의 폭소'. 사진 좋은땅
최 작가는 원래 모태신앙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를 다녔다. 중학생 때는 주일학교 학생회장을 하며, 등사기로 교회 주보도 만들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당시 제가 알던 신앙은 이랬다. ‘하늘 높은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분은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안 믿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 저는 어쩐지 하나님이 하나님답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라면 좀 더 통이 크고,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큰 지진과 해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어떤 목사님은 ‘그 나라는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른 교회를 다녀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강원용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됐다. “놀라웠다. 제게는 충격이었다. 강 목사님은 ‘예수 믿어서 천당 가는 것’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점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이 미국 유니언 신학대에서 세계적 신학자 폴 틸리히에게 배우셨더라.”
책에서는 한국 교회의 ‘묻지마 신앙’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대개 ‘묻지마 신앙’이 훌륭한 신앙으로 생각된다. 저는 그게 답답했다. 한번 뿐인 우리의 삶에는 진정성이라는 게 있다. 종교의 ‘종(宗)’자는 근원, 즉 뿌리를 뜻한다. 종교는 자기 삶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여기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면 결국 해결이 되겠나. 그게 중세 때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나. 종교에도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
최원영 작가는 '묻지마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성숙한 기독교인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금의 시대정신은 뭔가.
“기독교의 모태에 해당하는 유대교에는 원죄(原罪) 개념이 없다. 구약성경에도 원죄라는 용어는 없다.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 기독교의 원죄 개념은 4세기에 성 오거스틴(354~430)이 만들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는 대속(代贖)의 개념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당시 시대적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본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또 다르다. 2021년 작고한 존 쉘비스퐁 주교(미국 성공회)는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기독교, 어떻게 변해야 하나.
“기독교가 처음 등장한 1~3세기는 ‘신앙의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느냐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느냐를 중시했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다. 예수의 신성, 원죄, 삼위일체 등의 교리가 생겨났고,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믿음의 시대’가 열렸다. 4~20세기는 그런 믿음의 시대가 공고히 진행됐다. 지금은 21세기다.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소설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
깨달음의 시대가 왜 필요한가.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답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의 틀.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뜻을 깨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철이 든다. 깨달음을 통할 때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
『예수님의 폭소』에 담겨 있는 마지막 단편의 제목이 도전적이다. ‘끝장토론 : 하나님은 있는가?’. 과학자와 신학자가 TV에 나와서 김동근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하는 뜨거운 논쟁이다. 그렇다고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의 기계적이고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니다.
소설 속 신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하나님을 독특한 방식으로 인류에 나타내셨지요. 동시에 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습니다. ”
과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보험을 들듯이 하나님 믿고 교회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삶의 목표는 오직 세상에서 잘 되고, 죽어서는 천당 가는 것이다. 이 땅에 널려 있는 ‘밑져야 본전 교회’와 ‘순보험 교회’를 다니면서 귀중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결단이다. 자기 삶의 진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원영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종교에 대한 성숙한 태도"라고 말했다. 권혁재 기자
‘끝장토론’에서는 시종일관 종교에 대한 성숙함을 강조한다. 이유가 뭔가.
“‘묻지마 신앙’과 문자주의에 갇혀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면 대화와 상생이 어렵다. 반면 종교를 바라보는 성숙함이 있으면 달라진다. 성숙한 유신론자와 성숙한 무신론자는 서로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생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종교에 대한 성숙한 태도라고 본다. 소설을 통해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최원영=고려대에서 경영학,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음악대학원 기악학 석사, 직접 창작한 가곡도 여러 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원 국제외교학 석사, 뉴카슬 대학원 정치학 박사. 동아그룹 사장과 예음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고전음악 감상실 ‘필하모니’를 만들고, 음악공연예술지 ‘객석’과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을 창간했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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