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애리조나, 한국계 쿼터백 머리와 5년 계약하며 조건 달아
“내가 공부를 안 한다니, 웃기는 얘기다.”
NFL(미 프로풋볼)의 한국계 쿼터백인 카일러 머리(25·애리조나 카디널스)는 2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주 구단과 5년간(2024~2028시즌) 최대 2억3050만 달러(약 2992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연장 계약을 맺었는데, 여기엔 특이한 추가 조항이 들어 있다.
팀이 제공하는 ‘전략 영상 자료’를 매주 4시간 동안 반드시 시청해야 하며, 교육 시간에 TV를 보거나 비디오 게임을 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경우 계약 불이행으로 간주해 연봉 일부를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프로 선수 계약으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요구 사항이다.
구단이 무슨 의도로 이런 항목을 삽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머리가 평소 얼마나 경기 준비를 하지 않았길래 구단이 의무 교육 조항을 넣었겠느냐”며 비판했다. 앞서 머리가 “앉아서 몇 시간이나 영상을 보는 건 지루하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의구심에 더 힘이 실렸다.
머리는 억측이 계속 불거지자 “게임을 학습하지 않고 NFL에서 주전 쿼터백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무례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 정도 사이즈(체격)로 준비나 진지한 자세 없이 경기에 나갈 수 있다고 여러분이 생각하다니 우쭐해해진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을 돌려 말한 것이었다.
한국인 외할머니를 둔 머리는 현 NFL 쿼터백 중 덩치(키 178㎝, 몸무게 94㎏)가 가장 작은 축에 든다. 대신 육상 단거리 선수 수준의 스피드를 살려 직접 공을 들고 달리거나, 패스하기 좋은 위치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플레이가 강점이다.
머리는 자신이 NFL에서 얼마나 ‘별종’인지 잘 안다. 연장 계약 직후 인스타그램에 “나는 플레이 스타일이 비전형적인 키 5피트 10인치(178㎝)짜리이며, NFL 최초의 흑인 겸 아시안(KR) 쿼터백”이라며 “내 생김새와 플레이가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혐오와 부정적 시선이 따른다”라고 밝혔다. ‘KR’은 코리아(한국)를 의미한다.
주전급 쿼터백 중 백인이 60%가량인 NFL에서 소수 인종인 머리는 최정상급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세 시즌 동안 46경기에 나서 70차례 터치다운 패스(성공률 66.9%), 러시 터치다운 20회, 평균 3800 패싱 야드와 600 러싱 야드 등을 기록하며 주가를 높였다.
머리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대학 최고 선수에게 돌아가는 하인즈먼 트로피를 오클라호마대 졸업반 때 차지했고, 2019년 NFL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와 2018 MLB(미 프로야구) 전체 9순위(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외야수) 지명을 받았다. 데뷔 시즌에 NFL 공격 부문 신인왕을 수상했다. 대학 시절 쿼터백이었던 아버지 케빈 머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메이저리그에서 외야수로 뛰었던 삼촌 캘빈 머리의 재능을 타고 났다. 체스에 열심인 이유도 더 영리한 풋볼 선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평소 말수가 적고 겸손한 머리지만 이날만큼은 자신의 업적을 열거하면서 “올바른 방법으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나는 지름길을 택할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시간과 피, 땀, 눈물을 쏟아가며 노력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이를 수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머리는 구단 측이 ‘동영상 교육’ 조항을 넣은 점이 언짢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경기를 준비하거나, 영상 자료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나는 동료, 코치들과 경기를 보는 과정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말로 입장을 정리했다.
성진혁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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