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푸딩같은 두부로 미쉐린, 힌트는 일본 두부였다 [결정적 메뉴]

해암도 2022. 7. 24. 13:31

출판사 사장이 낸 두부집, 푸딩같은 두부
미쉐린 빕구르망과 그린스타에 등재
“설탕 넣었냐” 오해도
비결은 소백산 콩에 적정한 간수 #사장의 맛

 

콩물을 끓이다 간수를 붓고 몽글몽글한 상태로 먹으면 순두부, 조금 눌러 먹으면 연두부, 더 오랜 시간 강하게 누르면 두부가 된다. 대두(大豆), 물, 간수 3가지 재료만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두부를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은 ‘질감’에도 예민하다. 덩어리가 겨우 만들어지는 단계부터 꽤 단단한 두부까지 돌아가면서 즐긴다.

황금콩밭의 생두부. /박정배제공

 

◇푸딩 같은 두부로 미슐렝 빕구르망에 오르다

 

10여년 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작은 한옥에서 기존의 한국 두부와는 다른 질감과 맛 향을 지닌 두부가 만들어졌다. 백태의 노란색을 이름으로 한 ‘황금 콩밭’이다. 이곳 두부는 푸딩처럼 부드럽다. 설탕을 넣었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단맛과 감칠맛이 난다.

 

이 덕에 2018년 미쉐린 빕 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과 2022년 미쉐린 그린 스타(가스트로노미와 지속가능성)에 동시에 오르면서 ‘새로운 두부’의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참고로, 미쉐린 가이드에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은 서초동의 두부 전문점 ‘백년옥’이다.

 

동네 재개발로 2020년 멀지 않은 곳으로 가게를 옮겼지만, 일과는 여전하다. 매일 아침 6~7시면 일과를 시작한다. 콩은 전날부터 불리는데, 겨울에는 20시간, 여름에는 6~8시간을 불린다.

 

점심용 두부는 전날 만들어 놓은 콩물로 만드는데, 진한 맛이 강하다. 아침에 만든 콩물로는 저녁 장사용 두부를 만든다. 점심용 두부에 비해 풋풋한 콩 맛이 더 나는 편이다.

 

콩은 한번에 갈아내지 않고 두 개의 다른 기계로 두 번 갈아 쓴다. 처음 기계는 콩을 거칠게 갈면서 물이 콩에 고루 베도록 하고, 두번째 기계는 세밀하게 갈면서 비지와 두유를 분리한다. 콩을 갈 때 원칙은 두유의 농도를 높이고 섬세하게 갈아내는 것이다. 물이 적게 들어간 두유는 콩 속 지방에서 나오는 거품이 많이 보이고 두유처럼 흐른다.

 

두유를 팔팔 끓는 물에 넣어, 15분 정도 익힌 뒤 80도~85도로 열기를 내린다. 간수를 넣었을 때 가장 응고가 잘 되는 온도라고 한다. 간수는 직접 만든 정제 간수를 사용한다. ‘간수를 최소화한다’는 게 이 집 원칙. 간수를 많이 넣으면, 두부 양이 늘지만 고소함과 당도가 낮아져 두부 고유의 맛과 향이 약해진다.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순두부. 고소하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바닷물을 간수로 쓴다. /조선DB

 

간수를 적게 넣어 순두부가 나오면, 젓지 않고 그대로 살포시 떠서 성형을 시작한다. 휘저어서 만들면 두부가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두부의 부드러움은 누르는 정도보다는 휘젓기 여부로 결정된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두부에 관한 취향

 

콩은 한반도와 만주를 기원으로 하는 유일한 작물이자, 밀과 쌀, 옥수수와 더불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이다. 두부를 두고도 취향이 엇갈린다.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단단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조선시대에도 두 가지 형태 두부가 병존했다.

 

두부는 한나라 회남왕 (淮南王, 재임기간 B.C 202~196년)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유목민의 치즈 제작 기술이 두부 제조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최근의 학설이다. 두부는 치즈처럼 연성으로 만들어 바로 먹거나, 말려서 원거리 여행에도 들고가는 식품이었다.

 

조선 미식가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 1611년)에서 ‘(한양) 창의문 밖의 두부가 말할 수 없이 부드럽다’고 했다. 허균의 아버지의 고향인 강릉에서는 아버지 허엽의 호를 따서 ‘초당 두부’라 불리는 순두부 문화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박호인이 딱딱한 두부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두부에 맞으면 사람이 죽을 정도’라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도 ‘간기(唐人) 두부’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두부를 주제로 한 책 '요즘X두부'에 소개된 다양한 두부의 모습. 아랫쪽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부드럽다. /수작걸다

 

◇좋은 콩, 모든 두부의 결정적 요인

 

좋은 두부의 시작은 역시 콩이다. 윤태현 황금콩밭 대표는 “봄에 심어 늦가을에 걷는 콩은 수분이 많은 그 해 겨울보다 다음 해 봄~초여름에 먹는 게 가장 맛있다”며 “수분이 빠지고 저온 숙성된 봄 콩의 맛과 향은 정말 좋다”고 했다.

 

황금콩밭과 이웃한 자매점 ‘밀밭정원’, 두 군데 모두 영주 소백산 지역의 콩을 주로 쓴다. 재래종을 개량한 ‘부석태’가 두부 만들기에는 좋지만 생산량이 적다. ‘부석태’는 ‘밀밭정원’에서 콩국수를 만들 때 쓰고, 두부는 같은 지역의 대원 종자로 키운 ‘특백태’를 주로 사용한다. 수매가 기준으로 미국산은 kg 당 750~800원, 특백태는 4,000~7,000원, 부석태는 만원이 넘는다.

식당 황금콩밭에서 쓰는 콩. 경북 영주 부석사 인근에서 키운 콩을 주로 쓴다. 왼쪽은 두부용 특백태, 오른쪽은 부석태. /박정배

 

왜 소백산 콩일까. “콩은 일조량이 많고, 밤낮 기온 차가 크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자란 게 좋습니다. 처음에는 파주 장단콩 등 유명하다는 걸 써봤는데, 제게는 소백산의 콩이 가장 잘 맞더군요.”

 
 

영주 소백산에는 한우 연구소도 있다. 소고기도 지대가 높고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자란 소의 것이 맛있다. 고급 쌀도 역시 산에서 나는 것들이 같은 이유로 맛이 좋다.

 

윤 대표가 특백태와 부석태를 보여줬다. 부석태가 특백태보다 1.5배 이상 크다. ‘왕태’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커다란 부석태 군데군데 멍든 것처럼 보라색이 보인다. 윤 대표는 “보라색은 서리 맞은 잘 익은 콩에서 나타나는 영광의 반점”이라고 했다.

 

불리지 않은 콩을 먹어 보았다. 콩의 상태가 말랑말랑 씹힌다. 콩=딱딱한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분쇄된다. 부석태는 감칠맛이 도드라지고, 특백태는 단맛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황금콩밭에서는 11월에 수확한 이들 콩을 저온 창고에서 10도 이하로 보관하다가 열흘~보름 간격으로 서울로 실어온다.

 

◇치즈같이 고소하고 부드러운 두부의 탄생

 

꽁지머리를 한 윤태현 대표는 방송 드라마 작가 출신으로 한 대 출판사를 운영했었다. 농진청에서 취직해 농부들 스토리를 취재해 알리는 일도 했다. 2010년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 직장을 관두면서 식당 창업을 생각했다. 출판사가 있던 아현동 오래된 한옥을 식당으로 바꿨다. 집안 어른들이 자주 만들던 두부로 아이템을 정했다.

 

경북 의성 출신의 윤 대표에게 콩은 잔칫날이면 먹는 감칠맛 나고, 부드러운 음식이었다. 할머니 솜씨가 좋았고, 작은 아버지는 영덕에서 해수를 가져다 간수로 쓸 정도로 두부 만들기에 열성적이었다. 그 때 먹었던 ‘추억의 두부’가 지금 황금콩밭 레시피의 씨알이 됐다.

 

식당 차릴 마음을 먹고, 첫 2개월은 일본이나 중국 등 두부 음식이 다양한 외국으로 벤치마킹을 다녔다. 국내 유명 식당도 섭렵했다. 두부를 만들어 동네 할머니들과도 나눠 먹고 피드백을 얻었다. 책과 유튜브도 봤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가장 어려운 건, 간수 쓰기와 두부에 달라붙는 면포를 어쩔 것인가였다. 연두부가 맛있게 잘 만들어져 그 맛과 식감을 살리고 싶었지만 간수를 적게 쓰면 두부의 모양이 잘 잡히지 않았다. 성형 과정에서 씌운 면포에 두부가 달라 붙는 것도 문제였다. 간수를 차게도 해보고, 뜨겁게도 해봤다.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황금콩밭 윤대현 사장. /박정배

 

◇간수가 결정하는 두부의 상태

 

간수를 얼마나 쓸 것인가는 어떤 두부를 원하는가에 달렸다. 또 콩 상태에 따라 간수 양이 달라진다. 11월에 수확한 햇콩은 수분이 많고 색이 노랗다. 이듬해 봄이 되면 콩 속 당분이 표면으로 나온다. 마치 곶감처럼. 수분이 날아가 무게도 10%가 줄어든다. 이런 콩으로 두부를 만들 때는 간수를 30~40% 정도 더 사용한다.

 

영업 초기에는 매일 두부를 다섯판 정도 만들었다. 마지막 판은 실험용이었다. 콩 종류, 불림 정도, 간수 양과 온도를 달리해 다양하게 만들어봤다.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 아닌가. 두부 한판 망가지는 건데 무서울 게 뭐 있나.”

 

다다르고 싶었던 목표는 어릴 적 두부가 아닌 ‘사가현의 소쿠리 두부’였다. 소쿠리 두부는 치즈같이 부드러운 식감과 콩의 단맛과 구수함, 풋풋한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부로 유명하다. “소쿠리 두부가 정말 맛있었다. 같은 사람인데 나도 이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3년 3개월의 실험을 마치고, 8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독특한 맛으로 금방 입소문이 났다. 가을이 되자 “이런 두부 처음이에요”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일본 사가현의 두부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부드러운 질감의 소쿠리두부(자루두부). /川島豆腐店

 

◇풍미와 부드러움이 조화된 두부가 목표

 

예전 그가 시골집에서 먹던 두부는 단단하고 거칠었지만 풍미가 좋았다. 황금콩밭의 두부는 부드러운데다 콩도 적게 들어가 경제성도 높다. 콩 4kg에 두부 한판, 650g짜리 두부 20모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두부는 완성된 게 아니다. 지금의 부드러운 두부에 ‘추억의 두부’가 가진 풍미를 결합하는 게 그의 새로운 목표다. 두부는 당일 콩 상태 따라, 날씨 따라 맛이 다르다. “어제와 같은 두부는 없다”는 게 두부의 어려움이다. ‘큰 차이 없게’ 만드는 게 식당 주인의 목표다.

 

현재는 황금콩밭 2곳(아현동, 서초동), 밀밭정원까지 식당 3곳에서 하루 300인분의 두부가 나간다. 여러 메뉴가 있지만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건, 생두부다.

 

한국의 두부 문화는 단단한 모두부와 부드러운 순두부로 양분된 시장이었다. 황금콩밭은 부드러운 모두부라는 분야를 개척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황금콩밭과 밀밭 정원은 두부 외에도 메뉴가 여럿이다. 요즘은 콩국수 손님으로 붐빈다. 불고기와 홍어전, 육전 수육 같은 음식은 부드러운 두부와 잘 어울린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조선일보     입력 2022.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