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주례' 이야기]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홍콩으로…. 주례 매티슨(44·여) 씨의 인생은 공교롭게도 그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홍콩과 닮았다. 홍콩 사람들이 한때 중국과 영국 사이에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처럼, 매티슨 씨도 캐나다의 백인 사회에 적응하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매티슨 씨와 홍콩은 특정한 시점을 계기로 대격변을 맞이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매티슨 씨는 입양된 지 32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졌지만, 홍콩에서의 일상은 계속됐다. 매티슨 씨는 그의 인생을 한 번 더 흔들어 놓을 일이 5년 안에 닥쳐올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사연 전하는
팟캐스트 ‘어댑티드’에 푹 빠졌어요
마이헤리티지 등 유전자 분석 플랫폼에
DNA 정보 올려놓자 나온 결과
일치한 사람은 바로 남동생이었죠
결국 막내 남동생도 찾게 됐고
오빠의 존재도 알게 되었어요
한국 가족 찾기 노력 계속할 겁니다
■“입양아는 늘 감사해야”
주례는 캐나다에 있을 때도 한국 어딘가에 있을 엄마를 자주 생각했다. 주례는 아주 어렸을 때 본 것 같은 엄마의 희미한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엄마는 중간 길이의 파마 머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엄마의 이런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인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는 가족을 왜 진작 찾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주례는 자라면서 주변에서 늘 들었던 말이 있다. “너는 불쌍한 고아였어. 한국의 친부모가 너를 포기했고, 너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가족에게 선택받았지. 캐나다로 오게 된 것은 너에게 행운이고 그것을 감사해야 해.”
게다가 주례도 캐나다에서 ‘실제 가족’과 살고 있는 상황 속에 한국의 가족이 무척 궁금하더라도 직접 찾아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주례가 성인이었던 2000년대에 토론토에서 한국의 가족을 찾으려고 몇 차례 온라인 검색을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그의 한국 가족 찾기 시도가 헛수고로 느껴졌다.
2016년 9월 ‘AP통신’ 기자가 홍콩으로 연락하기 전까지 주례는 자신의 입양을 진행했던 기관이 어디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례는 이 언론사의 도움으로 대한사회복지회에 자신의 입양 서류를 요청했다. 그가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자신의 입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주례는 그해 연말 대한사회복지회 부산분실에서 작성된 자신의 입양서류를 받았다. 그는 서류를 단숨에 읽어 나갔다. 형제복지원이 주례를 일시적으로 보호하게 된 계기와 작명자, 덕성보육원 전원, 발육 상태, 성격 특성 등이 기록돼 있었다. “Name given by: The Director of Hyungjeiwon(작명자: 형제복지원 원장)” “얼굴이 매우 귀염성이 있고 항상 표정이 온화한, 성격이 좋은 아동입니다…양가에 가더라도 별문제 없이 쉽게 적응하리라 예상됩니다.” 주례는 이 3쪽짜리 입양서류에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형제복지원 정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복지원 운영 관계자와 아동들(왼쪽). 원내 식당에서 아동들이 간식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일보DB
■평행이론
주례가 부산 형제복지원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놨지만, 홍콩에서 그의 삶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홍콩 사회도 주례처럼 롤러코스터를 탔다. 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경찰과 대치했다. 2020년에는 홍콩에서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변화는 주례가 일하던 호텔 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주례는 특급 호텔의 영업부장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2021년 7월 주례는 우연히 홍콩 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60대 남성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남성은 유전자 분석 업체 ‘23앤드미’의 DNA 검사를 통해 자신의 홍콩 가족을 찾았고,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을 보기 위해 홍콩으로 왔다는 내용이었다.
주례는 생각했다. ‘나도 이걸 한 번 해 볼까.’ DNA 검사 과정은 간단했다. 우선 업체가 DNA 테스트 키트를 보내면, 키트에 있는 튜브에 타액을 충분히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밀봉한 뒤 다시 업체 연구소로 보내면 끝이다.
주례는 사실 진짜 가족을 찾으려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한 번 시도해 봤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결과는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 업체가 확보한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례의 DNA와 0.5% 일치하는 사람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의미 없는 결과였다. 다만 검사 결과 주례는 99.8%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주례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순혈(?) 한국인에 가깝다는 의미인가?’
그해 9월부터 주례는 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의 사연을 전하는 팟캐스트 ‘어댑티드(Adapted)’에 완전히 푹 빠져 버렸다. 백인 사회에서 힘겨운 적응, 정체성 상실, 인종차별, 화이트워싱(white washing·유색인종의 특성을 지우는 것)…주례는 다양한 입양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행이론(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두 사람의 운명이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처럼 지구 곳곳에서 그와 같은 운명의 패턴이 전개되고 있음을 느꼈다. 주례는 방송이 종료되면, 사연자의 SNS를 찾아 그들의 사진을 한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주례는 어댑티드에서 많은 입양인들이 자신의 DNA를 복수의 유전자 분석 플랫폼에 올려놨다는 내용을 자주 접했다. 주례도 이들처럼 자신의 DNA 정보를 ‘GED매치’ ‘패밀리트리DNA’ ‘마이헤리티지’에도 올려놨다. 이 또한 23앤드미에 DNA를 처음 제출할 때처럼 한국의 가족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큰 기대를 품고 한 것은 아니었다.
며칠 뒤 마이헤리티지가 주례에게 결과를 통보했다. “형제·이복형제·삼촌일 수 있는 가까운 가족 발견.” 주례는 그의 DNA와 일치하는 대상자의 프로필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전율했다.
■진실을 마주하다
주례와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그의 남동생 A 씨였다. A 씨는 막내 남동생 B 씨와 벨기에로 입양돼 한집에서 자랐다. 사실 A 씨도 재미 삼아 자신의 DNA를 마이헤리티지에 올려놨다고 한다. 그런데 마이헤리티지에서 계속 A 씨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내며 성가시게 하자 A 씨는 자신의 마이헤리티지 계정을 삭제할 마음까지 먹었다.
코로나19는 남매의 직접 상봉을 막았다. 주례는 어쩔 수 없이 동생 A 씨와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오후 줌(Zoom)을 통해 온라인에서 처음 만났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직접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주례에게 경외감을 선사했다. 가슴 벅찬 경험이기도 했다. 주례는 3시간 동안 동생과 어느 부분이 닮았는지 얘기했다. 또 서로의 성장 과정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올해 4월 동생 A 씨는 자신의 입양을 진행했던 홀트에서 입양 서류를 받았다. 주례와 A 씨는 입양 서류를 보면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A 씨와 B 씨는 1982년 8월에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서 발견돼 수원시 경동원으로 인계됐다. 주례가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기 3개월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이름은 이창근, 나이는 7세였다. 이창근 씨는 안양보육원에 입소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 씨의 존재를 이날 처음 알게 됐다.
다시 말하면 주례에게는 오빠 이창근과 남동생 2명이 있었다. 가족과 경기도 안양시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례는 어떻게 부산의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됐을까. 아마도 3형제가 동시에 사라지자 혼비백산한 주례의 부모는 아들 셋을 찾으러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주례 홀로 부산의 친적집에 맡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주례는 부산에서 친적집과 가까운 곳에 심부름을 가거나 길에서 놀고 있다가 경찰에 발견돼 형제복지원으로 넘겨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주례는 이번에는 반드시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자신의 추가 기록을 찾아야만 했다. 평소 다른 입양인에게 도움을 줬던 입양인 김유리 씨가 주례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주례는 입양기관의 입양 자료에 이어 아동권리보장원 등에서 형제복지원과 덕성보육원 자료까지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는 주례의 가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주례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가족을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주례는 부모님을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 아빠가 우리를 잃어버린 뒤 겪었을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아마도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무척 슬펐을 거예요. 제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황석하 기자(hsh03@busan.com)곽진석 기자(kwak@busan.com) 입력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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