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40년만에 엄마 만난 지적장애 아들 "어머니 이름 기억해요"

해암도 2022. 4. 26. 06:47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중앙일보 독자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여러분의 ‘인생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인연에 담긴 사연을 보내 주세요.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에 얽힌 어떠한 사연도 좋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사연도 귀하게 모시겠습니다.
아울러 지인을 추천해도 좋습니다.
추천한 지인에게 ‘인생 사진’이 남다른 선물이 될 겁니다.

‘인생 사진’은 대형 액자로 만들어 선물해드립니다.
아울러 사연과 사진을 중앙일보 사이트로 소개해 드립니다.
사연 보낼 곳: https://bbs.joongang.co.kr/lifepicture
               photostory@joongang.co.kr

주저하며 어렵사리 아들의 품에 든 엄마는 오래지않아 두손을 맞잡더니 아들을 꼬옥 보듬습니다. 그러면서 엄마는 기억해냈습니다. 어릴 때 젖을 물리면 아들이 울음을 그쳤다는 사실을요.

 

강원도 영월 지적장애인생활시설
예닮원의 원장입니다.

거주 식구 한 분의 사연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현수 님(46)은 지적장애 3등급으로,
질병력은 조현병입니다.

현수 님의시설 입소 당시 서류를 보면
보호자의 연락처가 비어있습니다.
생후 4개월 후 장애를 인지하였고,
중학교 중퇴와 이후 부친의 사망으로
무연고 입소한 것으로만 나와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가끔 조현병 증세가 나타나면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말하며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것 외에는
참 잘 생활하고 계십니다.

유난히도 서부영화와 총을 좋아하셔서
당신이 돌아가시면 ‘총나라’로 갈 것을
꿈꾸기도 하십니다.

그런 그에게 2020년 10월에 연락이 왔습니다.
어머니로부터입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던 겁니다.
대장암과 재생불량성 빈혈로 인해
용인의 서울시립영보정신요양원에
입소해 계신 어머니 임명순 님(70세)께서
하나 남은 아들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
세 번의 영상통화가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서로의 만남은
기약 없이 미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옷가지 몇 벌과
과자류가 들어있는 택배를 보내오셨습니다.

상자 안에는 어머니 글씨로
‘내 아들, 자장자장.
너를 만나면 자장자장 하고 싶었다.’라는
아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46세, 지금도 총을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저를 사랑하는 어머니, 생각이 나요.’

더는 만남을 미룰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시설의 원장님과 통화를 하여,
수술을 앞두고 계시지만,
만남을 이뤄 드리자는 동의를 받았습니다.
40년 만의 만남이자
어쩌면 마지막 만남이 될 수 있는 이 소중한 자리를
두 분의,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의
인생 사진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신청을 합니다.

함께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지적장애인생활시설 예닮원장 정택근 드림

아들이 우산을 받쳐 들었습니다. 빗속의 산책, 이들 모자에겐 또 하나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겁니다.

 

엄마를 만나 기전 아들부터 만났습니다.
영월에서 용인까지 달려온 아들은
엄마 이야기보다 영화 이야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엄마와의 추억을 묻는 말엔 시큰둥하거나
못 들은 척하면서
끊임없이 서부 영화 이야기로 주제를 돌렸습니다.
영화 이야기에만 열을 올리는 아들,
어쩌면 엄마와의 만남에
흥미가 없는 듯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엄마와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40년 만의 만남, 엄마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아들과 달리 엄마는 아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엄마의 기억에 있는 아들과 사뭇 다른 모습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들 앞에서 흠칫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데면데면한 아들을 염려했건만,
외려 엄마가 아들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했습니다.

거의 40년 만에 만난 아들이건만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를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기억 속 아들은
일곱 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흰머리에다
너무 커버린 아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아들을 만나 자장 자장해주고 싶었던 엄마는 당신의 생각보다 커버린 아들의 품속에 겨우 듭니다. 기적의 만남을 주선한 최숙자 원장과 연창순 생활지원과장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외려 엄마보다 아들이 적극적이었습니다.
다가선 아들의 포옹으로
엄마가 아들을 인정하는
40여년의 해후가 이루어졌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어머니 이름 기억해요. 임자 명자 순자.”
아들이 엄마에게 건넨 첫 마디입니다.

둘 만의 대화 시간, 아들은 띄엄띄엄 이지만 자신이 가진 기억의 모두를 어머니에게 털어놓습니다. 땅바닥만 바라보던 엄마의 답은 ″네″ 한마디가 다입니다.

 

엄마는 땅바닥만 보며 그저 웃을 뿐입니다.

아들은 엄마의 얼굴을 빤히 보며
띄엄띄엄 어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좋아해요.”

“군대 못 갔어요.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외할아버지 알아요.”

“어릴 때 업어 주셨잖아요.”

띄엄띄엄 한마디씩,
애써 기억을 떠올려 건네는 아들의 말에
엄마의 답은 고개 숙인 채
“네.” 한마디로만 이어집니다.

아들은 기억의 창고를 뒤지고 또 뒤지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애써 하나씩 뽑아 올리는 것만 같습니다.

아들은 엄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뽑아 올린 또 하나의 기억을 엄마에게 건넵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 김자 종자 필자 알아요.
누가 우리 아버지한테 ‘총리님 오셨어요’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며 아들이 한껏 웃습니다.

참 어렵사리 눈을 맞춘 엄마와 아들입니다. 그 눈 맞춤만으로도 둘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에 웃음이 터집니다.
드디어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 맞춤만으로도
둘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집니다.

활짝 웃으며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거의 40년 만의 만남,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엄마를 돌보며 아들 찾기에 나섰던
연창순 생활지원과장이 우여곡절을 들려줬습니다.

 

“어머니가 조현병에 망상이 좀 있어요. 그래서 정확하게 표현을 못 하시는데 갑자기 살던 주소를 정확히 말씀하셨어요. ‘강원도 영월 수주면 법흥 2리’라고요. 그리워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무연고 시설이나 고향 찾기 프로그램이 있어요. 가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우리 선생님들하고 같이 찾으러 갔어요. 가서 묻고 수소문하는 중에 마침 슈퍼에 계신 분이 먼 친척이더라고요. 현수 씨를 살펴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현수 씨를 돌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니까 면사무소에서 시설로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아쉽지만 그날은 이 소리만 듣고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이후에 영월 어디에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추적 끝에 예닮원이라는 곳에 전화했어요. 어떤 선생님하고 통화했는데 주민등록번호를 서로 물어보고 찾았죠.”

현수 씨를 돌보는 장명옥 생활지도원이 반가운 듯 말을 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너무 놀랐어요. 예닮원에 김현수라는 이름이 두 분 있거든요. 맞춰보니 ‘어린 왕자’로 불리는 현수 씨더라고요. 현수 씨는 자기가 엄마 닮아서 늘 잘 생겼다고 했거든요. 생각지도 못한 엄마를 찾은 거니 엄청 놀랐죠.”

둘의 만남을 있게 한 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왼쪽부터 영월 예닮원 장명옥 생활지도원, 정택근 원장, 김현수 씨, 임명순 씨, 서울시립영보정신요양원 남숙자 원장,연창순 생활지원과장입니다.

 

이 만남에는 여러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사실 엄마와 아들은 남다릅니다.
그러니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 못 합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살던 동네, 아들 이름,
일곱 살에 헤어진 사실만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실마리로 2019년에 10월에 찾기 시작하여
2020년 10월에야 아들을 찾아낸 겁니다.
이렇게 찾았지만 둘은 쉽사리 만나지 못했습니다.
코비드 19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들이 있는 두 곳 다 보호시설이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겁니다.
세상의 역병이 극성이니
모자의 만남이 미루어지고 또 미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예닮원의 정택근 원장과
영보정신요양원의남숙자 원장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모자의 만남을 성사시키자고 결심했습니다.

남숙자 원장이 밝힌 저간의 사정은 이러합니다.

 

“임명순 씨의 건강이 여의치 않습니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요. 더는 미룰 수 없었습니다. 시간도 그렇지만 엄마가 아들을 보면 힘을 좀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요. 어젯밤에 뛰어 올라가서 아들 온다며 이야기를 해줬더니 놀라서 눈을 동그랗고 뜨고 ‘현수가온다고요? 그 아기가 어떻게’라며 놀라더라고요. 그쪽 원장님과 함께 온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웃더라고요.”

사고, 지각, 기억에 장애가 있는 엄마기에
헤어졌을 적 일곱 살짜리 아들의 모습으로만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엄마 닮아서 잘생겼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들입니다. 실제 둘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아픔까지도요.

 

아들 또한 온전하지 못한 지각을 가졌지만
엄마에 대한 기억만큼은
오롯하게 품은 채 살아온 터입니다.

이렇게 만난 모자는 각자의 길로 가야 합니다.
40여년 만의 만남치고는 너무나 짧은 만남이지만,
그들이 처한 삶이 그렇습니다.
각자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떼야만 하는 겁니다.

엄마와 헤어져 돌아가던 아들 현수 씨가 고개를 돌려 손 인사를 건넵니다. 현수 씨의 표정이 더없이 밝은 터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더 아립니다.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중에
남숙자 원장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다음엔 우리가 임명순 씨를 모시고 아들에게로 갈게요.”

아들을 떠나보내는 엄마는 수줍은 듯 손을 흔듭니다. “다음에는 엄마를 데리고 영월로 갈게요”라고 말하는 남숙자 원장 또한 손 흔들어 인사를 건넵니다.

 

저 또한 이 만남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지기를 바라고 바라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둘이 처음 손잡고 나선 서울시립영보정신요양원에서의 꽃나들이, 어쩌면 이 나들이가 마지막 일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그만큼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부디 또 다른 만남과 나들이가 있기를 바랍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2.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