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가, 예술가의 예술가인 사람들이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그러한 작가 중 하나다. 작가들은 물론이고 매릴린 먼로, 더스틴 호프먼 같은 배우들까지 그를 우러러보았다.
가수인 레이디 가가는 아예 릴케의 말을 팔에 문신으로 새겼다. 사실 그의 문신은 릴케의 편지에 나오는 독일어 문구다. 그 편지의 어떤 점이 그를 홀리게 만든 걸까. 스물일곱 살의 젊은 시인이 쓴 편지가 얼마나 심오하기에 평생 지워지지 않게 문신을 한 걸까. “한밤중에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글을 못 쓰게 하면 죽을 것인지.” 그는 예술이 단순한 낭만이나 감상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릴케의 말에서 진정한 예술정신을 엿보았다.
그것은 릴케가 군사학교에 다니던 열아홉 살의 시인 지망생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답장하면서 했던 말이다. 시인 지망생은 기질적으로 군사학교에 맞지 않아 방황하고 있었다. 릴케도 전에 그랬다. 부모의 강요로 군사학교에 다녔지만 5년의 학교생활은 그에게 절망과 상처만 남겼다. 결국 그는 모든 걸 접고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인 지망생이 학교 선배인 릴케에게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것은 그래서 적절했다. 그러자 릴케는 시인이 되고 싶거든 죽기 살기로 해야 된다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시 아니면 죽음을 택할 결기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기를 꺾으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젊은 시인 릴케가 스스로를 향해서 하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죽기 살기로 2000편이 넘는 시를 썼다. 시가 곧 그의 실존이었다.
릴케가 시인 지망생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에게 보낸 열 통의 사적인 편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간되면서 공적인 편지가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 편지를 자기에게 온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 이유다. 레이디 가가도 그랬다. 그는 문신을 새기며 다짐했다. 릴케를 본받겠다고, “목소리가 곧 실존”이 되도록 치열하게 살겠다고.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동아일보 입력 2022-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