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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뽑은 新명의 열전/① ‘폐암’ -김태민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해암도 2022. 2. 8. 07:16

‘명의가 뽑은 新명의 열전’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신(新)명의’는 특정 진료 과목의 잘 알려진 명의들에게 “당신의 진료 과목에서 가장 뛰어난 차세대 명의는 누구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 추천받은 40대 중반~50대 초반의 실력 있는 의사들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병과 싸우고 있는 의사들입니다. 이들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쌓은 병에 대한 지식과 첨단 치유법을 전합니다.<편집자주>

 

 

 

폐암이 ‘국민 암’이라고 불리는 위암을 제치고 발생자 수 1위 암(갑상선암 제외)이 됐다. 작년 연말 발표된 암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폐암 환자는 2만9960명. 지난 10년 사이에 약 50% 급증한 숫자다. 남성에서 두 배 더 많이 발생했지만 여성 폐암 환자의 증가 속도가 남성에 비해 1.5배 가파르다. 여성 폐암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비흡연자 폐암 증가와 맞물려 있다.
   
   폐암은 사망자 수 1위의 암으로 악성도도 매우 높다. 2020년 한 해만 해도 1만8673명이 폐암으로 사망했다. 전체 암 사망자 중 22.5%에 이른다. 폐암 5년 생존율은 34.7%에 그친다. 4기(원격전이형)의 5년 생존율은 10%에 불과하다.
   
   글로벌 의약계가 총력을 다해 폐암 정복에 나서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싸움임은 분명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가 여러 암종 중 폐암 치료에서 특히 위력을 발휘하면서 장기생존율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폐암 임상에서 ‘차세대 리더’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태민 교수를 만나 폐암 진단과 치료, 현재의 연구 상황과 최신 동향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비흡연자 폐암, 표적 발굴, 표적항암제 내성 연구에 특히 열정을 쏟고 있다.
   
   일반적으로 폐암은 암세포 모양이 다양한 비소세포암과 암세포 크기가 작고 둥근 소세포암으로 나뉜다. 폐암의 85%를 차지하는 비소세포암은 다시 폐선암, 대세포암, 편평상피세포암 등으로 분류되며 암종에 따른 치료법도 다르다.
   
   - 폐암이 암 사망자 수에 이어 발생자 수에서도 1위 암이 됐다. 어떤 요인 때문인가. “고령사회에 접어들었고 흡연 인구는 줄고 있으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비흡연자 폐암이 늘고 있는 것이 요인으로 생각된다.”
   
   - 폐암 환자의 70%는 65세 이상 고령자인데 왜 고령자가 취약한가. “고령일수록 체세포 변이가 증가하고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비흡연자 폐암의 발생 추이는 어떤가. “비흡연자 폐암의 비율이 약 35%로 알려져 있고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흡연자 폐암의 50~60%를 차지하는 폐선암이 증가 추세다. 비흡연자 폐암의 원인으로 간접흡연, 음식물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나 실내공기오염, 대기오염, 라돈, 석면, 방사선, 기존 폐질환 등 여러 가설이 제시되고 있으나 여전히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 비흡연자 폐암은 흡연자 폐암과 무엇이 다른가. “폐암 유전체 연구에 따르면 DNA 복구 유전자의 변이, 간접흡연에 의한 유전자 변이, 활성산소에 의한 손상에 따른 유전자 변이가 관찰된다. 하지만 비흡연자 폐암의 발병 요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85%는 표적항암제 치료를 할 수 있는 EGFR(표피성장인자수용체), ALK(역형성림프종인산화효소), ROS1(로스전암유전자1) 암세포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데,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비율이 흡연자 폐암의 49.5%보다 더 많은 것이 특징이다.”
   
   - 암세포의 유전자 변이가 많은 만큼 치료하기가 더 수월한가. “표적항암치료는 암세포의 유전자 변이뿐만 아니라 종양억제유전자가 존재해야 가능하다. 흡연자 폐암은 유전자 변이는 더 많지만 종양억제유전자의 상당수가 망가져 있어서 실제로 표적항암치료를 할 수 있는 변이가 적다. 반면에 비흡연자 폐암은 종양억제유전자가 상대적으로 덜 망가져 있어서 표적항암제를 사용하기가 더 유리하다.”
   
   - 비흡연자 폐암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는데 요즘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비흡연자 폐암인 폐선암에서 가장 흔한 EGFR 돌연변이 폐암의 전체 유전체가 제3세대 표적항암제 치료 전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50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인데 올해 중·하반기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내성 발견과 새로운 표적항암제 개발에 의미 있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폐암 치료에는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암 크기가 작고 폐에만 머물러 있는 1기(절제가능형)와 암이 주변 림프절을 침범한 2기(경계성 절제가능형)는 5년 생존율이 75%다. 하지만 암세포가 중심부나 반대편 림프절까지 침범한 3기(국소진행형)의 경우 생존율이 27%로 뚝 떨어진다. 수술을 통한 절제가 가능한 1기, 2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완치되거나 장기 생존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1기, 2기 발견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폐암의 조기 발견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폐 안에는 감각신경이 없어 덩어리가 자라도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암의 크기가 커져 감각신경이 분포하는 흉벽, 뼈, 신경을 침범할 때에야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이때는 이미 3기, 4기로 진행된 경우가 많다. 또한 흉부엑스레이 촬영으로는 1㎝ 크기 내외의 조기 폐암을 발견하기 어렵다. 약 15%는 심장, 폐혈관, 갈비뼈, 횡격막 등이 가리는 사각지대에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 최근 폐암 조기 발견 증가에 기여한다고 평가받는 저선량흉부CT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나. “저선량흉부CT는 해상도가 매우 높아 2~3㎜ 크기의 작은 폐결절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일반흉부CT보다 방사선 피폭량이 5분의1~10분의1로 낮아 비교적 안전하다. 고위험군(흡연자와 55세 이상)에게는 정기적인 저선량흉부CT 촬영을 권고한다.”
   
   -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저선량흉부CT 촬영 등 정기적인 폐암 조기검진을 하는 것을 권하나. “현재까지 비흡연자에 대해서는 폐암 조기검진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 비흡연자 폐암 조기검진의 효과에 대한 대규모 연구가 나와야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비용 등 다른 요소를 배제한다면 50대 이상의 경우 비흡연자도 1~2년에 한 번 저선량흉부CT 검사를 하면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김 교수는 “폐암이 악성이긴 하지만 생존율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5년 생존율이 1995년 12.5%에서 2010년 20.3%, 2019년 34.7%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다양해지고 첨단화되고 있는 덕분이다. 첨단 무기의 핵심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표적·면역항암제는, 암세포를 포함하여 빠르게 성장하는 세포를 겨냥하는 세포독성항암제와 달리 암세포의 유전자나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는다. 면역항암제는 반응이 좋은 환자에게는 장기적인 치료 효과가 있고, 표적항암제는 잘 듣다가 내성이 발생하지만 2세대, 3세대 신약이 지속적으로 나오면서 생존율 증가를 이끌고 있다.
   
   - 장기생존율 증가는 어떤 병기(病期)에서 두드러지고 있나. “특히 4기 폐암에서 새로운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역할로 장기생존율이 증가하고 있다. 3기 폐암에서도 면역항암제 유지요법이 생존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 표적항암제는 어떤 기전이며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의 변이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는데,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대부분 경구로 복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암세포 변이 유전자는 EGFR, ALK, ROS1, BRAF(세린·트레오닌 단백질 키나아제) 등 다양한데, 특히 EGFR 및 ALK 억제제는 1세대부터 3세대까지 개발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이미 표준치료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3세대 표적항암제는 기존 1세대 표적항암제의 내성 기전을 극복하면서 뇌로 전이된 폐암에도 효능이 있어 주목하고 있다.”
   
   - 장기생존율 개선에는 어떻게 기여하고 있나. “국내외 권위 있는 연구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EGFR 돌연변이 4기 폐선암의 경우 3세대 표적항암제가 1차 요법으로 사용되면서 평균 생존기간이 3년을 상회하고 있다. ALK 폐선암의 경우도 2세대 표적항암제가 1차 요법으로 사용되면서 평균 생존기간이 5년을 초과하고 있다. 내성기전을 극복하는 치료법과 약제 개발로 생존기간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 면역항암제는 반응을 보이는 20%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떤 기전인가. “폐암 세포의 주변에는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와 이를 방해하는 면역세포가 함께 공존한다. 특히 암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와 암세포를 죽이지 못하는 면역관문소(immune checkpoint)가 존재하는데, 암세포 표면의 PD-L1(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하는 단백질)이 면역세포의 활동을 방해하는 신호를 발생시킨다. 면역항암제는 이 신호를 억제함으로써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죽일 수 있게 만드는 기전이다.”
   
   - 면역항암제는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다른 치료법과 병행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있는데. “4기 비소세포폐암에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는 기존 세포독성항암치료에 비교하여 중앙값 기준으로 생존기간을 18.3개월에서 30개월로 연장시켰고, 5년 생존율은 31.9%의 성적을 보였다. 3기 비소세포폐암에서 세포독성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시행한 후 암세포가 진행을 멈춘 경우에는 면역항암제 임핀지 유지요법을 통해 4년 생존율을 36.3%에서 49.6%로 증가시켰다. 또한 4기 비소세포폐암에서 세포독성항암제와 면역항암제 복합요법 치료를 한 결과, 생존기간이 약 20개월로 늘어났다. 세포독성항암제만 사용했을 때는 약 10개월이었다.”

 

 - 실제 진료 중인 환자 중에서도 생존기간이 대폭 개선된 사례가 있나. “제 환자 중에서도 3기, 4기 환자가 장기 생존하는 사례가 있다. 37세인 비흡연 여성 A씨는 2014년 2월 3기 폐선암 진단을 받았다. 세포독성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잘 조절되다가 3년 뒤에 뇌까지 암이 번져(4기로 악화) 2세대 ALK 표적항암제 치료를 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뇌전이 암의 크기가 50% 이상 줄어들었고, 발병 8년째인 현재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 지내고 있다.<사진> 흡연 경력이 있는 70세 남성 B씨는 2015년 2월 4기 폐선암 진단을 받았다. 세포독성항암치료 후 잘 반응하다가 2017년 11월 악화되어 2년간 면역항암치료를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종양 크기가 30% 줄어든 상태로 더 악화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
   
   - 기대되는 새로운 진단, 치료법은. “최근 분자진단의 개발과 더불어 한 번에 수백 개 이상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방법으로 암세포 내의 표적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하여 최근에는 1% 미만의 표적도 발굴하여 표적항암제 개발로 이어지고 있어 생존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면역항암제의 경우 반응을 잘할 수 있는 환자를 선택하여 치료를 하면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을 30%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새로운 면역항암제 표적도 계속 늘어나서 폐암 환자의 생존을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병원 종양임상시험실장이기도 한 김 교수는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실험과 연구를 지속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적인 의과학 정보 분석 기업인 ‘엘스비어’가 전 세계 암 연구자들의 연구 영향력 등을 조사한 결과, 김 교수는 연구 논문 수에서 국내 암 연구자 중 빅5 안에 들었다. 암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를 많이 했다는 의미다.
   
   김 교수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는 연구는 전장유전체분석(WGS·Whole-Genome Sequencing).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법을 활용해 방대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하는데, 암세포에서 전체 DNA 변화와 표적을 한꺼번에 95% 가까이 찾아낸다. 이를 통해 암세포의 치료 내성기전과 새로운 표적 발견을 한층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든 연구는 환자에게 제공받은 검체를 통해 이뤄지므로 환자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제게는 환자 한 분 한 분이 가장 큰 스승이다. 연구를 할 때마다 소중한 조직, 혈액 등을 제공하신 환자들을 생각하면 연구를 게을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폐암 또한 치료보다 예방이 먼저인데, 고위험군이 꼭 지켜야 할 수칙은. “폐암 고위험군인 30갑년(하루 피운 담배 갑수에 흡연 햇수를 곱한 값) 이상 흡연자와 55세 이상은 폐암 조기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흡연은 폐암 발생률을 10배 이상 증가시킨다. 금연 5년째부터 폐암 발생 위험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15년간 금연을 하면 위험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 비흡연자가 준수할 만한 예방 수칙은. “금연 외 다른 예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단 동물성 단백질을 고열 혹은 직화 조리를 할 경우 발암물질이 발생하므로 이들 음식을 섭취할 때는 삶거나 데쳐 먹는 것이 좋다.”
   
   - 폐암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의사 및 전문학회의 노력과 새로운 임상시험 등으로 폐암의 생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담당 의사와의 신뢰 관계를 이루면서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평균 생존기간을 훨씬 상회하여 장기 생존하는 4기 폐암 환자가 있기에 희망을 잃지 말고 긍정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하면 좋겠다.”

 

 

주간조선.    김공필  전 헬스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2022-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