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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폐암 ‘나사로의 기적’ 있다...

해암도 2021. 11. 14. 14:33

[명의를 찾아서] - 암을 당뇨처럼 관리하는 시대 올 것”

 

연세대 화학과 졸업한 후 같은 대 의대 진학
“폐암 진단 받은 환자 10명 중 6명이 말기인 4기”
“폐암은 수술이 최고의 치료법 아냐”
“환자에 맞는 치료제 쓰면 극적으로 회복되기도”

 

 
조병철 연세대 의대 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연세대 세브란스병스 폐암연구센터에는 ‘나사로 반응을 소망하며(Hope for Lazarus Response)’ 라는 글귀의 십자수 액자가 걸려 있다. 흰 바탕에 붉은색 실로 수놓은 이 액자는 출입구 정면에 있어서, 센터 방문자라면 한 번씩은 눈길이 간다.

 

‘나사로’는 성경에서 병으로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가 “나오라”고 하니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나사로가 부활하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에서 예수의 기적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주로 쓰인다. 그런데 ‘나사로 반응’이란 말은 처음 들었다.

 

연세대암병원 조병철 폐암센터장은 “폐암의 경우 치료제를 투여했을 때 환자의 반응이 극적으로 좋아질 때가 많아서 ‘나사로 반응’이라는 말을 쓴다”며 “나사로 반응은 폐암과 혈액암을 제외한 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미국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했다.

 

조 교수가 폐암 치료를 두고 ‘극적이다’라고 했지만, 폐암은 사망률이 86%에 이를 정도로 아주 고약한 암이다. 폐암 사망률이 86%라는 것은 첫 진단을 받은 10명 중 9명이 5년 안에 유명을 달리한다는 뜻이다. 15년 전 공익광고에서 ‘제발 담배를 끊어달라’고 호소한 코미디언 이주일씨도 폐암으로 사망했다.

 

조 교수는 폐암 사망률이 높은 것에 대해 “폐암의 생물학적 특징 때문이다”라고 했다. 폐암은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수술해도 재발이 흔하다. 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말랑말랑한 스펀지처럼 생겼는데, 폐암은 이런 폐 조직 틈새에 생기고 또 그 사이로 전이된다.

 

조 교수는 “수술로 암세포를 전부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부위로 전이가 돼 다시 병원에 오는 환자가 10명 중 9명이다”라고 했다. 폐암 세포가 미세 전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진단도 쉽지 않아서 폐암 환자 10명 중 6명은 첫 진단에서 이미 암이 폐 전체로 퍼진 ‘4기’일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 폐암연구센터 출입구에는 '나사로 반응을 기대하며'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김명지 기자

 

조 교수가 이끄는 연세대 폐암연구(임상)센터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폐암 치료제 신약 임상을 가장 많이 의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1월 현재 조 교수팀이 진행하는 폐암 신약 임상만 해도 100여개가 넘고, 임상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등록한 환자만 1500명이 넘는다. 국내 대학병원 중 연간 진료하는 폐암 환자가 1000명을 넘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인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국내 제약사인 유한양행이 미국 얀센과 공동개발한 폐암 신약인 ‘렉라자(레이저티닙)’의 임상 연구도 조 교수가 주도했다.

 

조 교수는 “폐암만큼은 수술이 최고의 치료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폐암 치료제 연구에 꽂힌 조 교수는 의사 학계에서 ‘괴짜’로 통한다. 조 교수는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의대에 다시 진학했다. 그는 폐암 치료제와 항암제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조 교수 진료실 앞에는 ‘신약 임상’ 참여를 원하는 폐암 환자와 가족이 늘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조 교수는 “매일 암환자 진료를 보고, 신약 임상 관련 서류 수백장을 결재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날 양해를 구하고 수면 안대를 잠깐씩 착용한 채 인터뷰를 했다.

 

ー 방금 진료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들었다. 신약 임상 시험에 대한 진료였나.

“방금까지 신약 임상에 참여하고 싶다는 환자의 가족을 만나고 왔다. 모든 환자가 신약 임상 대상이 되면 좋겠지만, 임상에는 ‘대상’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그동안 어떤 치료를 해 왔는지 본다. 예를 들어 ‘기존 치료제는 쓴 적이 없는 환자여야 한다’는 조건들이 있다. 그런데 신약 임상 지원으로 내원하는 국내 환자 대부분 더는 해 볼 방도가 없을 정도로 모든 치료를 다 받은 후에 오는 경우가 많다.”

 

ー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허가받은 기존 치료제를 모두 써 보고, 마지막 순간에 신약 임상에 참여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치료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암 치료제를 암과 싸우는 다양한 무기라고 보자. 구식 소총도 있을 수 있고, 최신 스텔스기도 초대형 군함도 있을 수 있다. 대신 레이저 총은 허가를 받지 않은 신약이다. 신약 임상이 없다면 소총으로만 암과 싸우는 것이다.

보험이 되는 승인된 약으로는 4개월밖에 못 버틸 것으로 보이는 폐암 4기 환자는 승인된 치료제를 언제든 쓸 수 있다. 승인을 받지 못한 강력한 레이저 총(신약)이 있고, 이 레이저 총을 지금 당장 써야지 소총 쏘고 나면 못 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나.”

 

ー 레이저 총이 오발탄일 수도 있지 않나. 예상치 못한 신약의 부작용으로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면 어떻게 하나.

“소총도 오발이 난다. 기존 치료제도 부작용이 있다. 기존 치료제를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존 치료제와 신약 임상을 적절히 배합해서 암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내도록 하는 게 의사가 하는 일이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은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4기 폐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오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4기 폐암 환자는 시간이 없다. 일단 4기로 진단받으면 남은 생존 기간을 보통 4개월로 본다. 단 4개월 안에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ー 결국 폐암 환자의 경우 새로운 치료에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는 뜻인가.

“지난 2014년에 국내에 면역항암제가 임상연구로 들어왔다. 그 당시 더는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없는 4기 폐암 환자가 면역항암제 임상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환자가 아직 살아있다. 생로병사의 비밀에도 소개된 분이다.

 

그런데 그 환자가 쓴 약이 미국 제약사 머크(MSD)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세계 1위 약인 ‘키트루다’다. 모든 혁신적인 신약은 다 임상 연구약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다. 키트루다 임상을 참여하신 분, 그 때야 무료로 썼지만, 지금은 이 약을 쓰려면 가격이 굉장히 비싸서 잘 쓰지도 못한다.”

(폐암 신약 약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가장 최근 개발된 표적치료제 중의 하나인 타그리소(3세대 표적치료제)는 월 약값이 680만원(급여시 본인 부담금 월 34만원)이다. 2차 치료제로 쓰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서 본인 부담금이 30만원 정도지만,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1년 약값만 8000만원이 든다.)

ー 키트루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면역항암제와 치료제는 어떻게 차이가 있나.

“표적치료제는 암세포를 찾아(표적)내서 없애는 역할이고, 면역 항암제는 암이 진행하는 것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두 약을 동시에 복용했더니 시너지보다는 부작용이 더 커서, 순차적으로 쓰게 된다.”

 

ー 환자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나.

“폐암의 단백질을 조사해서 암의 표적을 발견했다면 1차로 표적치료제를 쓰고, 더는 사용할 수 있는 표적치료제가 없을 때, 다음 단계로 면역 항암제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암 환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가 ‘폐암은 치료제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표적치료제를 쓸 수 없는 환자의 경우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약은 한두가지 밖에 없다.”

 

ー 폐암은 수술보다 치료제와 방사선치료 등 비수술 요법이 효과적이라는데, 사례가 혹시 있나.

“지난 2008년 화이자에서 ‘젤코리’라는 폐암 치료제가 나왔다. 지금에야 과거의 약인데, 그 당시에 폐암으로 숨지기 직전의 환자가 이 약을 먹고 살아났다. 이것을 ‘나사로 반응’이라고 부른다. 폐암은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극적일 때가 많다. 혈액암을 제외한 고형암 중에서 ‘나사로 반응’이라는 말을 쓰는 암은 폐암밖에 없다. 내가 만든 말이 아니라 미국에서 쓰이는 말이다.”

 

조병철 연세대 의대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김명지 기자

 

ー 연세암병원 폐암연구센터의 규모도 궁금하다. 세계 최대 규모로 들었다.

“미국에 있는 그 어떤 대학병원보다도 큰 것으로 안다. 120명이 넘는 임상연구진을 두고 있고, 100여개가 넘는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신약 임상에 매년 1500명이 넘는 환자가 등록한다. 이를 두고 기록적이라고 한다. 첫 진료를 받는 환자 숫자가 아니라 임상에 등록한 환자가 1500명이 넘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ー 요즘 임상 현장에서는 어떤 연구를 주로 하고 있나.

“기존에 표적치료제를 쓸 수 없는 폐암 환자에게 표적치료제를 쓸 수 있도록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것을 항체약물결합 요법이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헐투(HER2)라고 불리는 폐암세포 돌연변이의 경우 표적치료제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항체약물결합체로 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두 번째, 이중항체 치료제인 아미반타맙 등의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

 

ー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폐암 신약 연구에 열정을 쏟는데, 그 목표가 궁금하다.

“폐암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평생 관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런 시대가 올 거다. 그것이 신약 표적치료제가 될 수도 있고, 면역 항암제가 될 수도 있고, 방사선 치료도 될 수 있겠지만, 무엇이 됐든 이런 방법을 다 병용해서 최대한 암을 억제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무진행 생존기간(PFS)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다.”

 

(‘무진행 생존기간(PFS)’은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암이 내성이 생기는 시점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이는 암의 치료제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1세대 항암제는 오심, 구토 등 부작용도 크지만, 생존 기간 자체가 4~5개월로 짧았다. 그러나 3세대 표적치료제인 ‘타그리소’와 ‘렉라자’는 생존 기간이 각각 10개월, 14개월 정도로 길어졌다.)

 

ー 유한양행이 기술이전한 폐암 치료제 ‘렉라자’ 개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안다.

“렉라자는 EGFR(상피세포성장인자유전자) 표적치료제다. 동양인 폐암 환자의 30~40%가 EGFR 돌연변이가 발견되는데, 이 돌연변이는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4기 암환자에게 주로 나타났다. 또 이 돌연변이 폐암은 뇌로 전이가 잘 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기존 항암제는 뇌혈관 장벽(BBB)을 통과하지 못해 암이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렉라자’는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 뇌로 암이 퍼진 환자에게도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의 2세대 표적치료제는 길어야 10개월 정도 사용하면 내성이 생긴다. 이렇게 내성이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는 세포살상항암제 밖에 없었는데 이 항암제는 환자가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런 환자를 위한 신약이다. 현재 글로벌 임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ー 신약 연구, 폐암 환자 치료와 관련해 보건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암환자는 절박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신약 임상의 안전성을 강조하지만, 특히 말기 암환자에 대한 연구에서는 혁신적 임상 연구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경우에는 유전자 치료 연구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

 

ー 보건복지부에 하고 싶은 말은 혹시 없나.

“보건복지부는 국산 신약 개발에 좀 더 많은 연구비 지원을 했으면 좋겠다. 산학연병 공동중개 연구에 많은 연구비 투자가 돼야 한다. 그래야 국산 신약 개발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신약 개발 활성화되고 바이오텍 분야가 활성화되고 신약 강국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조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같은 건물에 있는 폐암 연구센터로 이동했다. 오후 6시 늦은 시간인데도 센터 안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조 교수는 신약 연구 임상에 사용하는 측정 기기를 소개하며 “여기 기계 한 대 값이 3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 35억5000만달러(약 4조1800억원)를 기부한 뉴스를 전하며 “우리나라도 돈 많은 분이 암과 같은 질환 극복에 기부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기부금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은 사립학교는 고려대였는데, 그 금액은 378억원이었다. 이는 4조1800억원의 0.9%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