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비트코인 전광판.photo 뉴시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방식으로 생성되고 운영되는 암호화폐이다. 곧 거래장부가 은행이라는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다수의 컴퓨터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따라서 암호화폐는 특정 주인이 없으며, 동시에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인 화폐다. 어느 특정 국가에 속박받지 않고, 누구도 임의로 화폐량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든지 어디서든지 활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이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다. 일례로 중국이 개발하고 있는 인민은행 디지털화폐는 인터넷이 없는 환경에서도 근거리 통신망만 있으면 휴대폰끼리 부딪치기 기능만으로도 결제와 거래가 될 예정이다. 사실 인터넷이야말로 탈(脫)중앙화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군의 중앙 서버가 핵공격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정보를 여러 곳에 분산화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게 인터넷이니 말이다.
정부가 계좌 동결시킨 키프로스 사태의 교훈
암호화폐는 정부의 통제가 없기 때문에 2013년 키프로스 구제금융 때 일어났던 사건처럼 정부가 국민들의 은행계좌를 마음대로 동결할 수 없다. 곧 정부가 손댈 수 없는 자산이다. 참고로 키프로스 사태를 좀 더 설명하면, 키프로스는 금융위기 여파로 국민들이 자신의 계좌에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를 우려해 국민들의 계좌를 동결시켰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정부와 은행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내가 가진 돈을 동결하거나 가져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해 초 20달러 수준이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키프로스 조치가 있던 4월 266달러로 13배나 뛰어올랐다.
국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 사건은 또 있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1933년 4월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는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국민들의 금 소지와 거래를 중단시켰다. 금본위제하의 금은 화폐와 같았으니 화폐 거래를 금지시킨 셈이다. 이후 미국 정부는 금 1온스당 20.67달러로 민간의 금을 모두 사들이고 민간인이 금을 소유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했다. 이를 어길 경우 1만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다.
유대인 모겐소가 재무장관에 취임한 1934년 1월에는 정화준비법(Gold Reserve Act)을 만들어 달러의 평가절하를 공식적으로 단행해 온스당 20.67달러였던 금값을 35달러로 끌어올렸다. 금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은 금으로 측정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짐을 뜻했다. 이로써 달러 가치는 하루아침에 69%나 떨어졌다.
당시 이 조치는 수출경쟁국들에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었다. 10~20%도 아니고 무려 69%의 평가절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주변국들의 손해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인근 궁핍화 전략’이었다. 이로써 수출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 나간 미국의 산업생산은 연간 10%씩 늘어났다.
이로부터 촉발된 각국의 평가절하 경쟁은 전 세계를 침체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나중에 세계 무역이 회복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루스벨트의 이러한 평가절하는 이후 선례가 되어 미국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이루어졌다. 이는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달러가 기축통화에 어울리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루스벨트는 금은복본위제를 운영하며 화폐발행량을 늘리기 위해 세계의 은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그 통에 은본위제 국가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중국의 장제스 정부는 은본위제 통화제도가 붕괴되어 사회 혼란이 극심해지면서 공산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1974년에야 국민들의 금 거래를 자유화했다. 자그마치 40년간을 정부가 국민들의 금 소유를 막아 재산권을 침해했다.
암호화폐는 정부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킨다는 장점 외에 사용자 간 거래가 개인과 개인 간 직접 연결되는 P2P 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은행 등의 중개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수수료가 낮고, 국제 간 송금도 며칠씩 기다릴 필요 없이 몇 분이면 완료된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90% 이상이 은행계좌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들이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누구나 사전 준비서류 없이 컴퓨터에 앉아서 성별, 사회적 지위, 과거의 이력과 상관없이 바로 계좌(지갑)를 만들 수 있다.
인플레이션 위험 없는 화폐
암호화폐 창시자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대단히 큰 그림이다. 암호화폐는 화폐량을 사전에 정해진 법칙에 따라 늘리게 되어 있어 중간에 임의적인 화폐발행량 증감이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금과 같이 인플레이션 위험이 없는 화폐이다.
또한 부분준비지급제도를 이용해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다른 고객에게 대출해주면서 없는 돈을 만들어내는 ‘신용창출’이 가능하지 않다. 이는 곧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초인플레이션 위험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서 가졌던 특권을 위협할 수 있는 화폐로마저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암호화폐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은 인터넷의 발명 이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이라 불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연구에 따르면 2027년에 세계 GDP의 10%가 블록체인으로 보관될 것이라 한다.
우리가 흔히 혼용해 쓰고 있는 가상화폐와 암호화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가상화폐(virtual currency)는 인터넷 등 가상공간에서 통용되는 디지털화폐를 말한다. 가상화폐는 온라인 게임에서 먼저 발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이를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 중 하나다.
1997년 한국에서는 ‘리니지’라는 게임에서 ‘아데나’라는 게임머니를 썼으며, 이 게임머니를 이용해 현실 세계에서 상품을 사기도 하면서 현실 화폐와 교환 가능한 가상화폐가 되었다. 심지어 게임머니로 자동차나 집을 산 사람조차 있다. 싸이월드에서 배경음악과 꾸미기 아이템을 살 때 썼던 도토리 또한 가상화폐이다. 2012년 당시 놀랍게도 이런 아이템의 시장규모는 약 1조5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암호화폐도 가상화폐의 일종이다. 하지만 특정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에서 국한되지 않고 기존 종이화폐처럼 범사회적으로 사용되도록 만들어진 특수한 형태의 가상화폐다. 특히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거래내역의 조작을 방지한다. 블록체인 기술에 ‘해시 함수’ ‘전자서명’ 등 암호화 기술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암호’화폐라 부른다.
가상화폐와 암호화폐의 차이
엘살바도르 우술루탄의 한 발전소에 설치된 비트코인 채굴 시설.photo 뉴시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이다. 그전에 디지캐시, 해시캐시, 비머니 등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매 시도마다 조금씩 더 가상화폐의 실현에 가까워졌지만, 이를 하나로 작동시키는 시스템으로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암호화폐를 만들려는 시도를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2008년 9월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관련 백서 ‘비트코인: 일대일 전자화폐 시스템’을 등록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는 이전 암호화폐 선구자들의 개념 가운데 전자서명과 작업검증 등을 차용했다. 사토시는 이를 활용해 공개원장으로 운영하고, P2P로 탈중앙화하여 인플레이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고안해 실세계에서 작동 가능한 암호화폐를 만들었다.
출시한 지 8년도 안 되어 비트코인은 140조원의 시가총액에 이르렀으며, 2017년 12월에는 400조원에 다다랐다. 이로써 비트코인은 암호화폐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해주었고 현재도 가장 영향력이 큰 암호화폐로 군림하고 있다. 2021년 12월 29일 기준, 총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은 2672조원에 달하는데 그중 비트코인의 점유율이 40.1%에 이른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의 구현에 있어서 비트코인만의 고유한 기술적 특징들이 있다. 비트코인의 총수량은 2100만개로 한정되어 있고, 블록체인에서 한 블록의 크기가 1MB을 넘지 못한다. 또 10분에 한 블록이 추가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블록이 추가될 때마다 그 블록을 추가한 채굴자에게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준다. 현재 존재하는 약 1900만개의 비트코인이 모두 다 이러한 방식으로 생성되었다. 차후에 생겨난 암호화폐들은 이러한 특징들에서 비트코인과 차별점이 있다.
오픈소스 구조, 제한된 공급량, 분산화된 원장관리 등으로 비트코인은 혁신적인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비트코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은 비트코인의 확장성이다. 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오늘날의 신용화폐처럼 사용하려 한다면 현재의 비트코인으로는 기술적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비트코인은 10분에 한 블록만 생성되며, 이 블록의 크기는 1MB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담길 수 있는 거래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현재 평균 초당 3개의 거래를 처리하는데 현 구조상 최대 7개를 넘기기 힘들다. 이는 비트코인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다.
참고로 이더리움은 평균 15초에 하나씩 블록이 생성되고, 리플은 4초, 대시는 거의 실시간으로 거래내역을 처리한다. 비자(VISA)는 현재 초당 1000~2000건의 거래를 수행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1초에 5만6000개까지 처리가능하다.
이러한 비트코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주장이 나왔다. 채굴 단계에서 거래 검증방법을 더 쉽게 바꾸는 방안, 한 블록에 들어가는 개별 거래의 정보량을 줄이는 방안(Segwit), 한 블록의 크기 제한을 더 키우는 방안(2x) 등이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오픈소스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시행하려면 커뮤니티에서 과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각 제안사항들이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인해 과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뉴햄프셔 세일럼에 설치된 비트코인 ATM기.photo 뉴시스
거래의 수가 한정돼 있다는 한계
결국 이러한 변화의 어려움 때문에 아예 비트코인 전체 시스템을 복제하여 원하는 변경사항을 반영하는 방안인 ‘하드포크(Hard Fork)’가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다. ‘
라이트코인(Litecoin)’ ‘비트코인캐시(Bitcoin Cash)’와 ‘비트코인골드(Bitcoin Gold)’가 그런 경우이다. 라이트코인은 블록 생성 시간을 기존 10분에서 2분30초로 단축한 것이며, 비트코인캐시는 블록 크기를 8배로 늘려 시간당 처리량을 8배로 늘렸다. 또 비트코인골드는 비트코인의 노드를 더 분산시켜 탈중앙화에 힘쓴 코인이다. 지금은 비트코인으로부터 하드포크된 코인만 70여개다.
아직 기술적 관문이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09년 1BTC은 약 50원에 거래가 되었지만 2011년에는 1000원, 2012년에는 1만원, 2013년에는 10만원, 2017년에 100만원을 넘었다. 그 뒤 2018년 1월 26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미국에서 비트코인 선물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급등락을 거듭하며 2018년 11월 300만원대까지 폭락했다. 선물시장에서 헤지펀드들의 왜그더독 현상(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보기 좋게 비트코인 현물시장의 개미들을 물 먹인 결과였다. 마치 은 선물시장을 조종해 은 현물을 싸게 매집하고 있는 제이피모건의 수법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후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비트코인 가격은 등락을 거듭하며 2021년 9월 8200만원을 돌파했다가 지금은 6000만원 언저리에서 조정받고 있다.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크기도 하지만 잦은 편이다. 그래서 화폐의 본원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성장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이러한 성장은 현실적인 여러 문제와 관문들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에 대한 본질적인 믿음이 담겨 있어 가능하다. 이런 비트코인이 있기에 세계는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이더리움을 필두로 다양한 알트코인의 세계가 펼쳐진다.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주간조선 입력202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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